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이 Jan 17. 2019

3-06. 물질이 먼저냐 마음이 먼저냐

마르크스의 변증법

마르크스는 헤겔의 이러한 생각을 초기에는 받아들였으나 곧 철회한다. 그것은 1차적으로 포이어바흐의 영향 때문이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을 결정 짓는 것은 절대적 이성이 아니라 인간의 욕구라고 생각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종교다. 종교야말로 인간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욕구의 결과물이라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그러한 포이어바흐의 생각을 종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적용한다. 인간의 법과 제도, 문화와 관습 등도 모두 인간 욕구의 발현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인간의 욕구가 무에서 생긴다거나 선천적 본성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의 욕구를 특정한 방향으로 형성시키는 것은 특정한 물질적 조건에 기반하며, 그 물질적 조건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변증법적으로 변한다고 보았다.


이 대목에서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역사 발전 과정을 살펴보자. 헤겔에게 역사의 발전은 ‘절대정신=이성’의 변증법에 의한 발전 과정이었지만, 마르크스에겐 전혀 아니었다. 그는 역사의 발전 과정을 ‘물질적 조건의 변화=자본의 소유 관계와 형식의 변화’의 관점에서 보았다. 누가 자본을 가지고 있는지, 자본을 어떻게 사용하고 그것으로 얻은 생산품이 어떤 방식으로 취급되는지 등이 그가 생각한 역사 발전의 주요 변수였다.


역사상 모든 사회에서 자본을 가진 자가 지배계층이고 그렇지 못한 자가 피지배계층이다. 고대 사회에 자본을 소유한 자는 가부장이었고 그 반대편에 평민과 노예가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봉건영주가 자본을 소유하고 농노들은 영주에 얽매인 존재였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부의 소유자는 부르주아(=자본가)이며 그들에게 의존하는 이들이 프롤레타리아(=노동자)다.


고대와 중세 및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다른 이유는 그들의 물질적 조건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거다.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 및 제도 등은 자본의 배분과 계급 관계에 입각하여 사후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게 마르크스의 생각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생각(관념)이 먼저고 그에 따라 물질 세계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여기곤 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태어기 전부터 이미 사회의 법과 윤리, 관습과 문화 등이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사람들을 사회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떤 사회도 영원히 지속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모든 사회에는 늘 계급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갈등은 처음엔 표출은커녕 인지되지도 못하다가 쌓이고 쌓여 종국에 터진다. 이것을 유식하게 표현하면 양적 축적의 질적 전화라 한다. 물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 100℃까지는 액체 형태를 유지하지만, 온도가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더 이상 액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기체가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요약하자면, 사회 변화의 원동력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아니다. 그 반대다. 사회적 조건이 변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는 것이다. 물질적 편중에 의한 계급 갈등이 다시 자본의 재분배를 가져오면 새로운 사회가 탄생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사후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헤겔의 변증법을 ‘인식→물질’이라는 차원에서 변증법적 관념론,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물질→인식’이라는 면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 부른다. 마르크스가 헤겔의 철학이 “물구나무 섰다”고 표현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를 반대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제 마르크스의 관심사는 분명해졌다.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관념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 사회의 물질적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와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가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자본이 어떤 식으로 운용되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은 생산물이 어떤 식으로 취급되는지를 봐야 한다.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가 주목한 건 이것이다. 생산물이 상품으로 취급되어 화폐를 매개로 거래되며, 그 과정에서 자본이 자가증식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르크스가 『자본론』의 첫 장을 상품 분석으로 시작한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3-05. 세계를 바꾸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