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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Jan 08. 2019

3-03. 화폐가 자본이 된 사연

자본이 먼저야 노동이 먼저야?

둘째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먼저 ‘화폐란 노동을 응고시킨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순환 논법의 오류다.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려면 화폐가 필요한데, 화폐가 존재하려면 그것을 응축시킬 노동이 전제돼야 한다. 이것은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쟁과 흡사하다. 무엇이 먼저일까.


마르크스는 화폐가 먼저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것이 처음부터 ‘화폐’의 형태였던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자본주의 사회였던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이전 형태의 사회가 아주 오랜 시간 존속했었다. 그 시절에도 (지금과 같은 화폐는 없었을지언정) ‘부’와 ‘소유’가 당연히 있었다.


농노가 영주를 위해 일해준 것과 농노 자신이 쌓은 부가 있었을 것이고, 수공업자들이 영주에게 바치고 얻거나 남은 부도 있을 것이다. 그 외 성 밖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쌓은 상인들의 부도 있다. 부의 대물림은 자본주의 사회만의 특징이 아니라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공통된 특징이다. 부자 부모의 자식은 부자가 되고, 가난한 부모의 자식은 빈자가 된다. 따분한 얘기지만 가장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이제 그 부를 ‘화폐’의 형태로 바꿔줄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국가의 탄생이다. 우리가 과거의 정치 공동체를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자기중심적 명명이다. 중세까지만 해도 국가라는 단체는 없었다. 중세에는 영주나 제후를 중심으로 성에 둘러싸인 도시가 하나의 공동체였다. 그 사회가 붕괴되면서 생긴 것이 지금과 같은 국가 형태의 공동체다.


맨 처음은 네덜란드였을 것이다. 국가를 형성한 새로운 우두머리는 강력한 귀족 집단 중 하나였다. 그들이 왕이다. 왕은 자신의 재산을 상인들에게 투자하였다. 그 당 상인들은 유럽 바깥에서 새로운 부의 원천을 탐색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이 바로 북·남미와 아프리카와 아시아다. 그곳에서 그들은 새로운 농지와 금광, 노예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탐색에 실패하거나 도중에 전원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성공해서 돌아오는 경우 상인들은 자신에 투자한 왕에게 막대한 재산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왕과 자본가·상인들 사이의 결탁은 공고해졌다.


바깥 세상에서 가져온 금과 은 등은 유럽 사회에서 화폐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그전에도 유럽 내에서 조금이지만 금을 캘 수 있었고 교역을 통해 금을 조금씩 들일 수 있었지만 상인들이 발굴해오는 금은 규모가 달랐다. 이제 왕들은 너도나도 자본가에게 투자하려 달려들었고 그것이 지금과 같은 형세의 유럽 국가들의 기원이 된다.


요약하자. 화폐는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진 부의 대물림과, 대항해시대 때 외부 세계에서 들여온 자원이 있었기에 형성 가능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화폐를 형성할 모든 준비는 이제 다 갖췄다’고 기뻐하기엔 이르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지배계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평민 이하 계층은 자급자족적 생활을 영위했다. 그들은 필요한 거의 모든 걸 스스로 자구하거나 이웃 및 친척들과 나누어 살았지 거래/매매를 통해 얻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아직 생산과 노동은 분리되지 않은, 합일된 행위였다.


그러므로 그 다음 수순은 노동을 생산에서 분리시키는 일이었다. 화폐가 자본이 되려면 화폐-상품-화폐-상품-…의 끝없는 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급자족이 아닌 소비 활동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농민들은 적은 면적이더라도 자기 소유의 땅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생산과 노동의 분리를 방해했다.


가장 치명적인 사건은 두 번에 걸친 인클로저 운동이었다. 자본가들은 플랑드르 지역에 양모를 수출하기 위해(당시 플랑드르의 양모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농민들의 땅을 빼앗고 그곳에 양을 길렀다. 처음에 국가는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본가들의 인클로저를 금지했지만 소용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가는 이내 자본가들과 손잡았기 때문이다.


이제 먹고살 길이 사라진 다수 농민들은 거지가 되거나 노숙자·부랑자가 되었다. 그런 그들을 다시 공장 노동자로 불러들인 건 자본가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다시 국가의 강제가 개입한다. 일하지 않고 게으름 피우는 거지나 부랑자들을 잡아다 국가가 고문하고 형벌을 준 것이다. 그것이 3번 누적되면 사형에 처했다. 거지가 된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공장에 소속돼 일해야 했다. 그것이 노동의 시작이다. 그들은 일한 대가로 임금(=화페)를 받고 그것으로 필요한 물품을 시장에서 구입해야 했다. 이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자본주의의 시작이라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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