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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이 May 26. 2020

<사냥의 시간>을 위한 변명

그동안 당신은 사육됐던 게 아닐까

1.
그동안의 영화들이 지나치게 친절했다. 상업/대중영화들의 경우, 중반부까지는 엄청 떡밥을 던진 후에 후반부에 가서는 사람들이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할까봐 초조해진 감독이, 인물들의 입을 통해 대사로 영화의 설정을 세심하게 알려주는 구성의 작품들이 많았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던진 떡밥은 회수되어야 한다는, 나름의 불문율이 머릿속에 자리잡았던 것도 같고. 하지만 꼭 떡밥이 다 회수되어야 한다는 건 누가 만든 법칙인지.

2.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들이 정해진 공식을 따라 연출되고 편집됐다는 점은 당시 이미 언급된 바 있고, 이제는 다 아는 상식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유명 감독이 아닌 이상은 제작사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졌고, 유명 감독의 경우도 국내 대기업의 압력과 자본의 논리를 벗어나 아예 해외에서 영화 찍는 게 현실이다. 물론 <사냥의 시간>도 공식에서 딱히 벗어난 영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에게 익숙한 정형화된 플롯의  법칙에서는 조금 벗어난 면이 있다. 감독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또 하나의 케이스가 아닐까.

3.
한국의 관객들은 어느 정도 반전에 중독된 면이 있다. 이제는 로맨스나 코미디 등의 가족영화에서도 반전이 없으면 안 될 정도이니, 때로는 반전이 없는 게 반전인 경우도 흔하다. <사냥의 시간>은, 설마 이게 끝이 아니겠지, 뭔가 더 있을 거야,에서 정말 그걸로 끝난 경우다. 2편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게 반전이라면 반전일까. 관객의 기대감에 대고, 한푼 더 줍쇼를 외쳤기에 배신감이 더 컸던 게 아닐까.

4.
한국영화의 경우 유독 스토리텔링에만 집중된 경향이 강하다. 가끔 이미지의 충돌을 꾀하거나(이명세 <M>의 경우) 영상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작품(임권택이나 이창동의 경우가 있겠는데 그 경우 탄탄한 내러티브가 있기에 그나마 성공적이었던 것)들의 경우 대중의 사랑을 받기 힘들다. 분명 영화는 이미지 영상 사운드 연기 편집 스토리 플롯 등 매우 다양한 요소들의 조합 혹은 충돌이 빚어내는 종합예술임에도, 관객들은 무엇보다 스토리와 연기를 절대적 우위에 두는 경향이 강하다. <사냥의 시간>의 경우 스토리텔링보다는 빛과 색감이 주는 모호한 공간의 창출과 그 속에서 죽음과 벌이는 사투, 일종의 VR 게임 같은 서바이벌 체험이 연출의 핵심이다. 이 영화에다 스토리의 정합성을 요구하는 건 고깃집에서 치즈케익 안 판다고 욕하는 느낌이랄까.

5.
제일 큰 한국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는 엔딩이 감동적이어야 한다는 거다. 러닝 타임 동안 모든 영화 속 사태들이 바로 마지막 순간의 감동을 향해 다 치달아야 한다는 어떤 강박이 있다. 한국의 천만영화를 보면 대강 알 것이다. 말못할 사연과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의 딜레마, 그럼에도 뭔지 모를 작은 희망을 제시하며 장중한 음악과 함께 페이드 아웃 되는 화면이 익숙하지 않은가. <사냥의 시간>은 그딴 게 하나도 없다. 엔딩씬에서 쾌감의 감도가 절정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게 아닌 거다. 하지만 <사냥의 시간>의 묘미는 말 그대로 쫓기는 과정에 대한 가상적 체험이라는 점에서 엔딩씬은 당연히 긴장이 풀릴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영화에 대한 변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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