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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1부.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

by 프리여니v

십 대의 나는 예쁨을 몰랐다.


십 대는 가만히만 있어도 예쁘다고, 나이 들면 그 말이 뭔지 다 알게 된다고 어른들은 종종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무리 되돌려 봐도 내 십 대 때의 외형으로는 그 말을 증명하긴 곤란할 것 같았다. 여드름 가득한 얼굴, 오직 곱슬머리를 가리기 위하여 무식하게 편 매직 머리, 빨간 뿔테 안경, 통통한 체형, 빼곡한 다리털… 이처럼 나는 너무도 거침없는 외형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런 것들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 나는 잘한다는 말이 어울리는 학생으로서 그에 합당한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일, 그림이며 글쓰기 대회에 나가 상을 타는 일, 그리고 평소에는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고, 과제를 열심히 해내는 일들로 그것을 해냈다. 그로써 선생님, 친구, 부모님의 신뢰를 한 몸에 받으며 언제나 잘하는 학생으로 남는 일. 십 대인 나의 관심사는 온통 그런 것들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취직한 회사는 내게 큰 기쁨을 줬다. 돈을 벌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게 불 보듯 뻔했기에, 돈에 쪼들려오던 이전과는 달리 앞으로 펼쳐질 인생은 조금은 더 순탄할 것 같아 감격에 겨웠기 때문이다. 매달 통장에 몇백만 원의 월급이 찍히는 삶은 확실히 달랐다.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고, 그 여유는 무엇보다 가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엄마가 아파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됐을 때 병원비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가장 먼저 그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알아 왔던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잘하는 학생 그리고 안정적인 직장인. 하지만 일곱 해를 다닌 직장을 떠나며, 나는 다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지 않을 걸 알았다. 베토벤이 「에로이카」에서 전혀 다른 주제로 나아갔듯, 나도 전혀 다른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 예정된 일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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