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을 보낸 고향 평택은 꽤 시골이어서 놀 만한 곳이라곤 기차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번화가뿐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친한 친구들끼리 시내에 나가는 게 당연한 순서였다. 모든 중고등학교의 시험 기간은 비슷해서 이 시기 시내에는 각양각색의 교복을 입은 평택 중고등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별의별 사람이 껴있기 마련이다. 그중에는 '별의별'이란 수식어가 과분한 사람들도 있었다. '도를 아십니까', 일명 사이비(유사종교) 포교원들이 그랬다. 나는 학창 시절 직접 이들을 마주친 경험은 없지만, 언니 덕분(?)에 고등학생 때 이들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언니가 '도를 아십니까'를 처음 만난 곳은 시내에 있는 한 버스정류장이었다. 수능을 마치고 한창 자유를 만끽하던 시절, 언니는 평소보다 관대하고 너그러운 상태였던 것 같다. 운이 참 좋았던 이 포교원은 언니에게 접근해 꽤 손쉽게 신뢰를 얻었다. 그러더니 '함께 가서 제사를 올리지 않으면 집안에 우환이 생길 수 있다'는 K-장녀의 효심을 자극하는 말로 언니를 자기들의 본거지로 유인했다. 언니는 그곳에서 오색 저고리를 입고 정체 모를 제사상을 향해 강제로 절을 올렸다. 그들은 언니에게 내고 싶은 만큼 '제사비'를 내라고 했고, 언니는 무려 5만 원이나 내고 나왔다.
언니는 이제 지나가던 아무개가 불러 세우려고만 해도 사나운 표정을 짓는 인상파 행인이 됐다. 하지만 살면서 만나본 사람이라곤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거의 전부였던 순진한 학생에겐 어설픈 포교원도 능숙한 사기꾼이 될 수 있었다. 나중에 같은 반 친구가 언니랑 똑같은 수법으로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언니의 순진함을 '호구스럽다'고 질책했던 속마음을 반성했다.
사이비 포교원들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평택에선 상상 속의 그들이었지만, 서울에선 한강의 날파리처럼 흔한 존재였다. 나는 혼자 서울 길거리를 걸을 때면 사이비 포교원의 호구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포교원이 말만 걸어도 날파리를 쫓아내듯 손을 휘젓거나 인상을 쓰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던 내가 날파리 같던 그들을 자진해서 마주한 날이 있었다. 그것도 길바닥이 아닌 카페에서.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포교원을 만난 때는 '잘노공' 첫 스터디 모임날이었다. 8명 정도가 강남의 한 카페에서 모여 앉아 스터디를 하고, 저녁으로 치킨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뒤 귀가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나는 처음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혼자 추측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평소에는 나름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날은 단점으로 작용했다. 첫 모임에 음흉하게 스며든 날파리에게 마음껏 날아다닐 장소를 제공해 놓고 무심하게 방치한 꼴이었다.
이 날파리는 첫 모임에 나온 사람 모두에게 "친하게 지내고 싶다"며 연락처를 물어봤다. 물론 나도 포함이었다. 길바닥에서 마주치는 포교원이나 스터디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나 초면인 점은 마찬가지인데, '모임원'이라는 사실이 나를 방심하게 했다. 그렇게 호구가 된 나는 '친화력이 좋은 사람인가 보네'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그에게 연락처를 알려줬다.
2016년 9월 30일 신논현 한 카페에서 '잘노공'의 첫 스터디. 스터디 내내 휴대전화만 보다가 모임원들의 번호를 따더니 스터디가 종료되기도 전에 떠난 어설픈 날파리.(노란 원)
며칠 뒤 그에게 카톡이 왔다. 친해지고 싶다며 따로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흔쾌히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우리는 다가오는 주말 낮에 강남 한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그와의 만남을 앞두고 나의 마음엔 호기심과 긴장감이 공존했다. 나보다 한두 살 어린 여자와 둘만의 데이트라서는 아니다. 그에게 첫 카톡을 받기 전 나는 이미 그가 다단계 혹은 사이비 포교원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가 측은할 정도로 허술하고 어설픈 날파리였던 덕분이다.
이제 막 모임을 만들고 사람들이 모여들던 '잘노공'은 날파리에겐 진수성찬이었을 테다. 먹잇감들을 보고 흥분한 그는 코스보단 뷔페식 식사를 선택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번호를 받아낸 모임원 3~4명을 한꺼번에 찔러보기로 한 것이다.
나보다 먼저 그에게 카톡을 받은 모임원들은 내게 그의 수상한 카톡을 제보했다. 한 번 본 사이에 갑자기 단둘이 만나자는 카톡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모임원들이 그와 약속을 잡지 않고 어물쩍하는 사이 내게도 그의 카톡이 왔다. 나에게는 그와 약속을 잡을 이유가 충분했다. 그를 모임에서 내보낼 명확한 근거를 직접 잡는다는 명분 반 다단계가 어떻게 사람을 유인하는지 궁금했던 직업적 호기심 반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다단계를 만나러 간다는 소식을 모임원들과 언니에게 말하고 약속 시간과 장소도 일러뒀다.
우리는 강남 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그는 어색해 보였다. 커다란 과제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어서 힘들어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풍기는 어설픈 분위기만으로도 나보다 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정보의 우월 덕분인지, 나는 굉장한 갑의 입장이 된 기분이었다. 어디 한번 꼬셔보거라. 절대 안 넘어갈 테니. 그가 선택한 전략은 '경청'이었다. 그는 내게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 고민거리 등을 물어보며 듣는 입장을 자처했다.
관찰자로서 부담이 줄어드니 약간 남아있던 긴장감도 사라졌다. 자신감이 충만하자 나는 꽤 매력적인 데이트 상대처럼 굴었다. 솔직하면서도 진중한 나의 고민거리를 털어놓으며 그를 수다받이로 이용했다. 그 상태로 소개팅을 나갔어도 상대를 꼬시는 데 성공했으리라.
오로지 그만을 바라보며 한참을 떠드는 나와 달리, 그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하며 휴대전화로 어떤 연락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기 회사 선배가 마침 강남을 지나가는데 업무에 필요한 USB를 주고 가기로 했다면서 우리가 있는 카페에 들른다고 했다. 데이트가 생각보다 더 흥미로워질 것 같단 기대감에 내 눈은 반짝였다. 마음속에선 잦아들었던 긴장감과 호기심이 되살아났다.
아담하고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었던 내 데이트 상대와 달리, 회사 선배라는 사람은 큰 키에 숏컷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둘은 내 앞에서 정체 모를 USB를 주고받았다. 나는 속으로 팝콘을 먹으며 흥미롭게 둘을 관찰했다. '풉' 실소 터지는 소리가 나기 직전까지 갔지만 잘 참아냈다.
회사 선배는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들른 사람치고 '후배의 친구'에게 관심이 너무 많았다. 내가 두 사람의 정체를 몰랐다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래도 후배보단 선배가 더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덕분에 나는 두 명의 가식적인 인터뷰어를 상대하느라 좀 지쳐갔다. 얼마 뒤 회사 선배는 떠났고, 나는 일부러 잡아 놓은 다음 일정에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데이트가 끝나고 그에게 애프터 문자가 왔다. "영민씨, 돈가스 좋아하세요? 한티역에 맛집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한티역은 다단계 성지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는 아마 사이비가 아니라 다단계였던 듯하다. 게다가 돈가스라니, 내가 2시간이 넘게 떠들면서 돈가스를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단 말인가.
애프터 문자에 대한 답변은 모임 '강퇴'로 대신했다. 그에게 연락처를 알려줬던 다른 모임원들에게도 해충 박멸 소식을 전하며 그를 차단하도록 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경험을 전설처럼 이야기한다. 소모임의 해충으로 여겨지는 다단계가 첫 모임에 나오다니, 어쩌면 그를 액땜 삼은 덕분에 '잘노공'이 흥할 수 있던 건 아닐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