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노공'을 찾는 사람의 유형은 다양하다. 나처럼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싶은 사람, 공부를 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힘든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서 삶의 동기 부여를 받고 싶은 사람, 열심히 사는 자기 모습에 심취해 그럴듯한 취미 항목을 늘리고 싶은 사람, 사람이 만나고 싶은데 대놓고 친목 모임은 부끄러운 사람, 연애가 하고 싶은 사람, 그냥 발정 난 사람까지.
드러나는 모습은 사람 수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마음속 뿌리는 하나,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은 반드시 연애의 결핍에서 오는 감정은 아니다. 만나는 사람이 있어도 혼자 공부하기 외로울 수 있고, 연애가 하기 싫다고 늘 혼자 있어도 괜찮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외로운 사람들이 모인 '잘노공'에서는 사람이 외로우면 어떤 행동 양상을 보이는지 관찰하기 좋다. 어떤 외로움은 모임을 굴리는 원동력이 되고, 어떤 외로움은 모임 운영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이번 화에서는 여러 외로움 중 가장 빈번한 문제를 일으킨 유형, '관종'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관종 1
요즘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즐기는 정도만으로도 '관종'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렇게 관대한 표현법에 따르면 소모임을 찾는 모두가 '관종'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좀 더 범위를 좁혀서 '관심을 구걸하다가 남에게 불편함을 주는 사람'을 지칭하려고 한다.
관종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소모임에서 가장 거슬리는 관종은 카카오톡 관종이다. 카카오톡은 불특정 다수에게 일방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모임 초기 가장 기억에 남는 관종 2명이 있다. 한 사람은 나와 동갑인 5급 공무원 남성 K다. 다른 한 사람은 여성 의사로 추정되는 S였다. 나이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보다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두 사람은 카카오톡 단체방에 자기들 일상을 올리는 데 망설임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카카오톡 관종력이 더 높았던 S에 대해 우선 이야기해 보겠다.
S는 의사 가운이나 수술 복장을 한 자기 셀카를 여러 차례 카톡방에 올렸다. 실제 스터디 모임에 나오지도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운 행동이었다. S와 일면식도 없던 모임원들은 아침, 점심, 저녁 S의 삼시 셀카를 강제 시청해야 했다. (하루 3번보다 더 자주 올렸던 것 같기도 하다) S가 올리는 사진 속 여성이 실제 S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셀카 전시회를 강제 관람한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즉각 조치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S가 자기 지인과 찍은 셀카를 올렸고,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S님, 모르는 사람 얼굴까지 올리는 건 자제해 주세요."이후로 S가 셀카를 올리는 빈도는 줄었다. 하지만 대신 일상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루는 S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식사하는 사진을 올렸다. 이때 갑자기 K가 등판했다. 그는 거실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다며 와인잔 사진을 찍어 올렸다. 꽤 넓은 아파트에 혼자 살던 K가 올린 사진은 와인잔을 찍은 듯하지만, 사실은 뒤에 펼쳐진 넓은 거실이 메인인 듯했다. 당시 나는 카톡방을 보며 '관종들의 향연이네'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S의 사진 속 과시 의도가 거슬렸던 K가 본인도 일부러 과시하듯이 찍어 올린 거란다.
S는 가입하고 일주일 가까이 오프라인 모임에는 나오지 않고 사진만 올려댔다. 나는 결국 S에게 모임에 나오라고 관심을 가장한 독촉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S는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자기 삼촌이 삼성역에서 횟집을 개업하는데 회를 쏠 테니 모임 정모 뒤풀이 장소로 쓰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나는 미심쩍은 마음이 들었지만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S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해서 딱히 내가 손해를 볼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망의 횟집 뒤풀이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뒤풀이 장소를 정하기 전에 S에게 다시 한번 약속 확정을 받을 참이었다. 하지만 그럴 기회는 오지 않았다. S가 갑자기 말없이 모임을 탈퇴해 버렸기 때문이다. 실소가 터졌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그저 모임을 탈퇴한 것뿐이지만, 그가 나가는 모습이 '꽁무니를 빼고 줄행랑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관심병을 넘어 허언증까지 의심되는, 잘노공 7년 역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관종'이었다.
관종 2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사라진 S와 달리, K는 실존하는 관종이었다. 그는 카톡 단체방에 일상 사진을 올리는 것은 물론 개인 유튜브 채널에 노래나 운동하는 영상을 올릴 정도로 관심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자기 유튜브 채널 영상을 단체방에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K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지 않았다. 그는 처세술이 좋은 사람이었다. 모임에 3번째쯤 나왔을 때 그는 자발적으로 자기가 일하는 공공기관 세미나실을 스터디 장소로 빌려줬다. 20명 가까이 모이는 주말 스터디 장소를 찾는 데 애를 먹던 나에겐 정말 고마운 도움이었다. 모임원들도 무료로 공부할 장소를 제공하는 사람이 미울 이유는 없었다.
모임장과의 친분 과시도 처세술 중 하나였다. 그는 스터디 후기를 쓰면서 자신을 '몸장(모임장)의 노예'라고 칭했다. 카카오톡 단체방에서도 나와 동갑이며 같은 동네라는 사실을 자주 언급했다. K의 친분 과시에 모임원들은 '혹시 K가 모임장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수군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쟤는 내가 모임장이라 저런다'고 답했다. 사실 K와 나는 별로 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갑이어도 다른 부류의 사람과는 쉽게 친해지기 어렵다. K는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아마 시간이 더 흘렀어도 그와 편한 사이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K의 관종력은 온라인 세상에서 그치지 않았다. 스터디나 뒤풀이에선 크게 튀는 행동을 하지 않았던 그는 어느 날 그의 카톡 관종력을 모두 뛰어넘는 화려한 이벤트를 저질렀다. 사당에서 주말 스터디가 진행되고 있던 날이었다. 사당 스터디 모임원들만 모여있던 카톡방에서 한 모임원이 전했다. "K형 지금 M누나한테 고백하러 온대요!" 그렇게 K의 '고백하는 날' 생중계가 시작됐다. 중계에 따르면 K는 스터디를 하고 있던 M에게 다가가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고백했고, M은 고백을 받아들였다. 서로 알게 된 지 2주도 채 되지 않았던 금사빠들의 '오늘부터 1일'은 K의 의도대로 모임원들의 관심을 듬뿍 받았다.
하지만 화려한 시작과 달리 K의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거의 일주일 만에 K와 M은 이별 소식을 전했다. M이 K와 사귀기 전 잡았던 소개팅에 나가면서 사달이 났다. M은 주선자와 관계 때문에 소개팅을 취소할 수 없는 사정을 K에게 말했지만 K는 이해할 수 없다며 이별을 고했다. K는 M을 떠나면서 동시에 모임도 떠났다. 공개 고백을 한 관종의 최후였다. M도 창피함을 이기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임을 떠났다. 모임에서 쉽게 발병하는 관심병과 금사빠병이 만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확인할 수 있던 씁쓸한 마무리였다.
S와 K의 또 다른 공통점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면서 '남들의 시선'에만 관심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관심을 구걸하면서 정작 자기는 아무런 마음도 주지 않으면 기대하는 바를 받아낼 수 있을 리 없다. 인스타 팔로워를 늘리려면 팔로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관종 세계의 기본 원리를 두 사람은 몰랐나 보다.남에게 관심 없는 두 관종이 끝까지 외로울 수밖에 없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