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바스러진다고 느낄 때 도망치던 곳이 있다.
온통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층고가 높고 텅 비어있다. 벽 한쪽은 창이 줄지어 있어, 낮이면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데 두꺼운 막으로 창문을 막아두어 공간의 어두움을 유지한다. 무대 단과 애플박스를 모아둔 창고에서는 오래된 먼지냄새가 난다. 너무 퀴퀴해서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건강이 나빠지는 기분이 든다.
아마 나는 그곳에 들어간 순간부터 성실함을 버리기로 확실히 결심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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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그 시작은 어디였는가" 1편 - 작가지망생 '이언두'
by졸리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이전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주욱 있어왔다. 모두들 '경영학과' 진학을 추천했지만 고집을 부려 '영문학과'에 진학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수험생활이 힘들 때마다, 조용히 혼자 책을 읽으며 휴식하곤 했는데 그때 읽던 글들이 너무 소중해서 실용적인 학과보다는 꼭 글과 관련된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이전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심만 있을 뿐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당장 오늘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또 무엇인가 성취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과제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막막해서 울거나, 스펙을 쌓아줄 홈페이지에 들락날락하며 나의 하루를 채울 것들을 찾았다. 과거가 반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학생. 나는 그래서 연세대에 진학했고 이대로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또 자랑스러운 무언가를 성취하게 되리란 걸 느꼈다. 이런 삶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그때 찾았던 곳이 연극동아리였다.
나에게 연극동아리 생활은 기묘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이름을 불렀고 친하지 않은데 속마음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털어놓았으며 술 먹고 아침이 밝으면 모두가 그것을 다 잊어버린 듯했다. 그중 제일 신기했던 것은 서로를 비웃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연극동아리에서 시키는 것은 하나같이 다 창피했다. 소리를 벽에 꽂는 연습이라든가, 주위에서 본 동물을 묘사한다거나, 공간을 움직임과 소리로 표현한다든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남들을 보고 우스웠다기 보다 시선 앞에서 애쓰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나를 제외한 연극동아리원들은 모든 연습에 진지하게 임했다. 벽에 소리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연습 전 꼼꼼히 몸을 풀었고 비둘기를 묘사하고 싶었던 친구는 노트에 비둘기 특징을 열심히 정리했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나도 서서히 시선보다는 내가 만들어내는 움직임이나 소리들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걷는 쾌를 느끼고, 멈추는 쾌를 느꼈으며, 상상한 대로 걷거나 말했다. 나는 때때로 코가 비대해졌고 성대가 쪼그라들었다. 수많은 관중이 나만을 주목하는 가운데 소리 지르고 울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갈등의 극한을 공개하는 데 점차 익숙해졌다.
타인의 시선, 그리고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나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 노력하는 나를 우습게 생각하지 않았고 내가 만드는 움직임, 내가 내는 소리를 존중하게 된다는 것. 이것은 미래보다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나는 비로소 미래를 걱정하는 성실한 '나'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 나갈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그러니 이 모든 연습의 순간들이 묻어있는 검은색 배경의 극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깜깜하고 곰팡내가 나는 그곳을. 나는 무에 가까운 그곳에서 성실함을 버리고 나만의 삶을 천천히 걸어가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