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글만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
박혜윤 저자의 <<숲 속의 자본주의자>>에 빠져 살던 때가 있었다. 은퇴하고 미국의 시골에서 느리게 사는 그의 삶이 나와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도시생활을 사랑하고 현대인들과 발맞춰 살아가는 나는 그와 무엇이 비슷하다고 느꼈을까.
처음에 그는 세상에, 환경에 피해 주지 않고 살고 싶어 자본주의를 외면하고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다짐은 쉽게 무너진다. 잡초를 없애려면 농약을 뿌려야 하고 농작물을 탐내는 동물들을 피하려 펜스를 쳐야 하는데 이는 주변환경에 필히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안을 찾는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밀가루를 사 와 빵을 만들고 판다. 빵이 팔리지 않아도 자신의 가족이 먹어치울 수 있는 양을 지키고 빵을 팔더라도 자신의 가족이 먹을 수 있는 만큼의 빵은 꼭 남기면서. 그렇게 번 돈으로 고기와 채소 그리고 필요한 생필품을 산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조금 아쉽게 살아간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혜택을 외면하지 않되 잉여를 남기지 않는 삶을 영위하면서 세상에, 환경에 피해 주지 않고 살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을 조금씩 이뤄간다.
현실적인 것은 나중에 직접 부딪혀보자는 천진난만한 시도도, 자신의 가치관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감각도,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는 꿋꿋함도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자본주의를 이용하고도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는 아이디어였다.
우리의 꿈과 자본주의가 반대말이 아닌 것을 알지만 ‘돈’ 혹은 ‘실용성’을 따지면 왠지 속물이 된 것 같아 자본주의를 적으로 돌리곤 한다. 글을 쓰거나 학자처럼 수입을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진로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매일매일 입고 먹는 것을 소비하면서 자본주의를 떼려야 뗄 수 없지만 생산 과정에 유리한 직업은 아니라는 이유로 자본주의를 반대 스펙트럼으로 내모는 것이다.
나는 직업이 확정 나지 않은 채로 대학을 무작정 졸업했다. 소설가로 데뷔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무런 구직 활동을 하지 않은 채 매일 읽고 쓴다. 글 쓰는 데 큰 자본이 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지출인 것은 아니다. 매일매일 이동하는 데 쓰는 교통비, 글 쓰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먹는 비용, 새로운 책을 구입하고 ebook을 구독하는 비용 등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충동적으로 맥북도 구매했다. 7년 동안 쓰던 노트북은 키보드도 고장 나고 용량도 부족해서 블루투스 키보드, 외장하드를 바리바리 들고 다니는데 문득 화가 났다. ‘돈 버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하고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이래저래 현실적인 비용이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숲 속의 자본주의자>>는 가뭄의 단비 같았다. 세상에 꼭 필요한 글이 가득한 세상에 그다지 쓸모없는, 재밌어서 손이 가는, 피로를 잊을 수 있어서 눈길이 가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천진난만함이 어리석지 않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현실적으로 부딪힌 경제적인 문제가 내가 원하는 바와 결코 반대되지 않고 현실을 개선할 여지가 있다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로소 글쓰기의 효용성, 직업적 글쓰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글 쓰는 자본주의자(?)가 되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오직 글만을 직업으로 삼는 다는 것.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직업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오직 글만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오직 글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생계 유지할 만큼 돈을 버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니고 만족스러운 수준에 개인차가 있으므로 글 쓰는 직업에 대해 너그러운 기준을 적용해도 '오직 글만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글로 돈이 벌려야 한다. 단, 10원이라도.
"야, 돈 받으면 프로지."
술자리에서 친구의 말이 맴돈다. 그 술자리에는 흔히 말해 원하는 직무를 '찍먹'해 본 친구들이 가득했다. 다들 자신이 최종으로 원하는 회사가 아니라거나 신입이어서 회사에 기여도가 낮기 때문에 자신감이 부족한 상태였지만, 인턴십이라든가, 계약직이라든가,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일로 돈을 벌어봤다. 서로를 북돋기 위해 내뱉은 한 마디에 다들 위로받았지만, 나는 구석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아직 글로 단 10원도 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직업을 묻는 질문에 '글 쓰고 있습니다'라고 시원히 말해 본 적이 없다. '그냥 백수입니다.'라는 말이 이제는 더 편하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돈을 받아야 프로인데, 나는 돈을 받지 못한 아마추어이니. 어떻게 보면 쓰라린 말일 수 있겠으나 직업은 생(生)에 관한 것이자, 현실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은 이상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나는 글이 생업이 되길 바라며 여러 갈래에 기웃거려 봤다. 웹소설, 장르소설, 순문학 등등, 열심히 찾아본 결과, 어느 갈래든 매한가지다. 모두 '벽 보고 쓰는 기간'이 필요하다. 가장 돈이 잘 벌린다는 웹소설조차 수익화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 웹소설이 수익화되려면 연재가 확정되고 조회수가 일정이상 나와야 하는데, 문피아, 네이버 시리즈, 카카오페이지 등 유명한 웹소설 플랫폼에서 연재하기도 쉽지 않지만 조회수를 보장하려면 100회 이상 무료연재가 필수여서 운 좋게 연재가 확정되더라도 수익화는 적어도 6개월~1년 이상 걸린다. 공모전에 당선되면 상금이 있겠으나, 이것으로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공모전 당선이 된 작품은 좋은 퀄리티의 작품이므로 이것은 반드시 1년 이상의 작업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장르문학이나 순문학도 마찬가지.
배가 고파도 1년 이상 매일 읽고 써서 작가가 된다면 글 쓰는 사람들은 거뜬히 참아낼 것이다. 하지만 글 쓰는 것은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작가를 꿈꾸는 이들은 아무리 각자의 눈에 좋은 글을 쓴다 한들 대중에게 외면받을 수 있고 심사위원에게 심사평조차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1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새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직업적 글쓰기는 한낱 쓰레기 원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득 안고 그 누구의 조언 없이 100화 혹은 1권의 분량을 쓰기를 반복하다 먼 미래에 수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지만 '오직 글만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니까 일해서 먹고살아야 한다,라는 말만큼 저에게 난해하고 어렵고, 그리고 협박 비슷하게 울리는 말은 없었습니다.
-인간실격, 다자이오사무-
‘읽혀야 글이다.’ 할 말이 많아서,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많아서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지망생들에게 저 말은 어찌 보면 너무나 실용적이어서 협박같이 들리곤 한다. 자신이 원하는 말은 제쳐두고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들려주는 말 같아서. 돈이 안 되는 글은 내려두고 현생에 집중하라는 말 같아서. 지망생들은 다자이오사무의 소설의 주인공처럼 실격의 감정을 느낀다.
나는 더 이상 냉정한 말에 시무룩해지지 않는다. 현실적인 조언이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글쓰기와 반대편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빵을 먹고 파는 숲 속의 자본주의자처럼 원하는 만큼 현실적으로 돈을 벌고 나의 이상을 향해 원하는 글을 쓴다. 나는 나름의 글 쓰는 자본주의자처럼 살고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실격의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체득한 것이다. 나는 언젠가 각자의 글들이 빛을 보는 날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그저 힘을 내라고. 글 잘 쓰는 법은 몰라도 글 잘 쓸 때까지 버티는 법은 안다고. 나는 오늘도 현실을 마주하며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