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사람들 56화
그 사람과 만날 때 K는 늘 안절부절못했다.
"어디야?"
"누구랑 있어?"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건데?"
"넌 너 생각만 하지?"
"나랑 상의하고 정할 수 있잖아."
"미리미리 말했어야지."
"네가 뭐가 힘들어? 기다리는 내가 더 힘들어."
"이럴 거면 헤어져."
"너랑 이제 진짜 끝이야!"
친구들과 만날 때
회식 때
심지어 야근 때도
그 사람은 K를 옴짝달싹 못하게 잡도리했다.
그저 한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데
K의 사생활은 남김없이 해체되었다.
SNS 계정, 스마트폰, 노트북의 모든 비밀번호는 공개되었고
사회생활을 포함한 인간관계는
검열과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어디를 가든
누구와 있든
무엇을 하든
시시콜콜한 것까지 전부 그 사람에게 보고해야 했다.
K가 뭘 그리 잘못한 것일까?
도대체 왜 K를 못 믿는 걸까?
운 좋게, 그 사람의 동석 하에 K와 만남을 허락받은 나는 넌지시 그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제가 전에 만나던 사람에게 심하게 데어서 그래요. 툭하면 연락두절에 상습적으로 바람피우는 나쁜 인간이거든요."
"하지만 K는 다르잖아요. 좋은 사람인데..."
"저도 알아요. 그러니까 사귀죠... 그런데... 전 이렇게 확인해야 안심되는데 어떡하겠어요. 날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맞춰줘야죠. 그게 싫으면 저랑 안 만나면 돼요."
옛사랑이 준 상처는 어찌나 깊고 위중한 지 그 사람은 물러설 여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사랑의 상처를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K는 그 사람의 상처를 봉합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어느 봄날, 오랜만에 나는 K와 만났다.
K는 연애를 시작했다고 했다.
상대는 직장 후배.
대화 내내 상대를 향한 K의 설레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늦은 밤 그만 집에 가려는데 스마트폰이 울렸다.
K와 만난 지 4시간 만에 첫 전화였다.
K는 눈썹을 찡그리며 수신 화면을 확인하더니 웅웅 거리는 스마트폰을 그대로 외면할 것 같더니
전화가 끊기려 할 때쯤 단호하게 수신버튼을 꾹 눌러 받았다.
스마트폰을 귓가에 대는 K의 얼굴에 짜증이 휙 지나쳤다.
"내가 할 때까지 전화하지 말랬지. 늦었다고 걱정을 왜 하냐? 내가 어린애야? 집에 못 가게. 난 간섭당하는 거 딱 질색이라고. 이런 것 정도는 나한테 맞춰줄 수 있잖아."
데자뷔인가? K의 얼굴에 옛사랑의 상처로 허우적거리던 그 사람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돌고 돌아 또 다른 사랑의 상처가 되는 슬픈 사랑의 예감이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이 순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을까
문득, 옛 시인의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