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사람들 57화
둘째 조카가 벚꽃이 한창인 호수공원으로 밤산책을 가자고 했다.
어느 때처럼 단골 카페에 들러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사주려 하자
소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스커피 마실게요."
"벌써 커피를 마신다고?"
드문드문 봐서는
아이가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고작 한 철이 지났을 뿐인데
소년은
아이도 어른도 아닌
낯선 존재가 되어있었다.
"공부는 잘하냐?"
아차차,
어색한 나머지
나는 으레 어른들이 하는 인사치레를 해버렸다.
고등학생에게 공부 잘하냐라니!
고작 한 철이 지났을 뿐인데
나는 낯선 꼰대가 되려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소년의 반응이 자뭇 진지했다.
"고교학점제 때문에 골치 아파요."
"그게 뭔데?"
호수공원을 한 바퀴 반 도는 동안 나는 고교학점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소년의 말을 온전히 이해한 건지 모르지만 요약하자면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1학년에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서 모든 선택과목을 정해놓지 않으면 대학 진학이 힘들다는 것,
게다가 고교학점제로 내신이 9등급에서 5등급제로 바뀌었고, 수능은 여전히 9등급제라
내신의 변별력이 줄어든 만큼 수시에서도 수능성적이 중요해지는 효과가 생겼고
그래서 수시와 정시의 경계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
그러므로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의 학생은
몰아치는 내신과 수행평가, 수능을 모두 잘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잠깐 들었을 뿐인데도 머릿속이 혼잡해지는 이야기였다.
소년은 아이에서 단숨에 어른을 뛰어넘어 노쇠한 어르신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학생이 한창 좋을 나이가 맞아요? 놀지도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마음 편히 만날 수도 없고"
"대학 가면 좋아질 거야."
나는 또다시 으레 어른들이 할 법한 뻔한 말을 해버렸다.
"진짜요?"
소년의 표정에 불신이 역력했다.
"사실, 사람마다 달라. 대학 간다고 갑자기 모두에게 운명의 상대가 짠 나타나는 건 아니지. 하지만 그럴 수도 있거든."
"대학 가서 운명의 상대를 만났어요?"
"응, 나는 만났어. 첫눈에 반할 만큼 소중한 사람이었지."
"저한테도 그런 일이 생길까요?"
"그럴거야.”
나는 최대한 확신을 담아 힘주어 말했다.
소년의 눈동자가 불안한 듯 흔들렸다.
믿음을 주기엔 역부족이었던 걸까?
"만약에 좋은 대학을 못 가게 되면요, 그럼 어떡해요? 나같이 보잘것없는 사람도 사랑해 줄까요? "
무엇이 소년을 이리도 풀 죽인 걸까?
한창 좋을 나이에 로맨스를 꿈꾸는 것조차 사치라는 듯
소년은 봄밤에 흩날리는 예쁜 벚꽃잎을 기꺼이 살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