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사람들 45화
그 여자는 한의사의 아내였다.
내가 거북목으로 고생한다는 말을 듣고 K선배는 친구가 하는 한의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
한의사는 직장상사이자 대학선배인 K의 오랜 친구였다.
나는 대충 집 근처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쉬고 싶었지만
직장상사이자 대학선배인 K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K는 비싼 추나치료를 공짜로 받게 해 주겠다며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다.
가는 김에 자신도 비싼 보약을 싸게 먹을 심산이었다.
쉬는 날, 나는 K선배를 태우고 서울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한의원까지 쉬지 않고 차를 몰았다.
운전하는 내내 목이 뻗뻗하게 굳어서 이대로 거북이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한의원은 그야말로 웅장했다.
힙한 대형 베이커리 카페처럼 생긴 한의원은 주차장이 엄청 넓었다.
나는 주차장을 꽉 찰만큼 한의원에 환자가 많은지 궁금했다.
"여기까지 올 사람이 있을까요?"
"그건 너 생각이지. 여기저기 한의원 다니면서 의료쇼핑 하는 사람들 많대."
그러면서 K는 덧붙였다.
"친구 처가가 이 근처 한약방을 한대. 손님들이 전국에서 몰려온다더라고.
그래서 한의사 사위를 구한 모양이야. 이 한의원도 처가 해서 지어준 거야."
진료를 마치고 우리는 한의사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한의사가 예약한 곳은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듣던 대로 벌이가 괜찮은지 한의사는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다.
와이프는 외동딸이었고 장인어른이 은퇴하면 한의원과 한약방 모두 그의 자치가 될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한의사의 바람대로 만사형통이리라.
그런데 자부심에 비해 한의사의 외모는 볼품없었다.
키가 땅딸만 하고 아랫배가 툭 튀어나온 데다가
피부는 거칠고 얼굴에는 곰보자국 같은 여드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한의사에게 외모가 뭐가 중요한가?
나는 한의사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친절하고 싹싹한 성품의 한의사를 환자들은 좋아할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의 외모가 거슬리는 걸까?
그것은 그의 아내가 눈에 띄는 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의 환한 얼굴은 크고 시원시원한 눈, 오뚝한 코, 작고 새초롬한 입술로 빈틈없이 꽉 차 있었고
단화를 신었음에도 한의사보다 키가 약간 더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은 운동을 꾸준히 하는지 탄탄해 보였다.
그 여자는 한의사의 사모님답게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K선배와 한의사가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비웠을 때, 그 여자가 내 빈 잔에 레드와인을 따라주려 했다.
"아, 아닙니다. 저는 운전해야 돼서요."
"K 씨가 직장상사라고 했죠? 설마 목 아픈데 운전까지 시키는 거예요?"
"아, 괜찮습니다. 덕분에 추나치료받았는데요."
여자는 아쉬운 듯 레드와인 병을 내려놓고 잔을 들어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쪽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네?"
"우리 부부가 잘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시죠?"
"..."
"아빠가 소개해주셨어요. 사업하는데 한의사 사위가 필요하다고. 얼굴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외모는 상관없잖아요."
여자는 자기 잔에 남아있는 와인을 다 마시고는 덧붙였다.
"그런데... 꼭 이렇게 변명하고 싶다니까요. 답답할 땐 서울 집에 가요. 아빠가 쓰라고 구해주셨어요.
회사가 OO에 있다고 했죠? 언제 서울 가면 한번 만날..."
K선배와 한의사가 들어와 그 여자와의 대화는 다행히 거기서 끝이 났다.
이상한 사람에게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또 들어버린 나는
와인 한 병만 더를 외치는 K선배를 억지로 차에 태우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사장님처럼 뒷좌석에 앉은 K가 작게 중얼거렸다.
"부러운 자식, 다 가졌네. 한의원에 그림같이 예쁜 와이프에. 끼리끼리 어울린다 이거냐!"
대답이 필요하지 않은 K의 혼잣말에 나는 마음속으로 혼자 답했다.
다음에는 그냥 집 근처 정형외과에 가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