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진로 상담

별별사람들 46화

by 매콤한 사탕

"만약 제 아이가 애매한 성적이라면 저는 9급 공무원 추천합니다."


유명한 교육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현직 공무원이 직업 소개 후 덧붙였다.

AI시대에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고,

그렇다면 나라가 없어지지 않는 한 공무원은 괜찮은 선택이라는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방학이 지나면 고3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모두가 잘 아는 걸 아이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좋은 대학에 갈만한 성적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게다가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열여덟에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아는 게 더 신기한 일이었다.


학교 끝나면 학원에서 선행하고 늦은 밤 집에 돌아와

간단한 모바일게임이나 인스타, 유튜브 잠깐 보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고 지쳐 곯아떨어졌다가

다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진로를 고민할 충분한 시간이 있을 리 없었다.

그 흔한 독서조차 취향껏 한다기보다는 필독서나 수능출제작품 위주로 읽어야 했으니

E는 교육은 학생이 아니라 시스템 문제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대학 가는 것을 잠시 미루고 진로에 대한 확신이 들 때까지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가?

아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보통의 아이에게 대학생이 아닌 준비 없는 무직자가 된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E는 고민 끝에 애매한 성적의 고3 자녀에게 그 말을 꺼냈다고 한다.


"너 그냥 대학가지 말고 공무원 할래?"


아이는 몹시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천천히 눈을 껌벅거리더니 말없이 자기 방으로 향했다.

E는 충격받은 아이의 뒷모습을 쫒으며 아차 싶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원인 모를 모멸감에 저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길로 E는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 엄마 K를 만나 고민을 털어놓았다. K는 명쾌하게 말했다.


"공무원 되면 얼마나 좋아. 애가 아직 뭘 몰라서 그래. 월급 따박따박 들어오고 정년 보장되고 나 아는 집에선 명절에 애가 커서 공무원 되고 싶다고 해서 온 가족이 박수 쳐줬대. 철이 일찍 든 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K은 아직 중3인 자녀에게 공무원 하라는 말을 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결국 E는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게 아닌지 고민만 깊어졌다.



E는 두서없이 여러 가지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E의 말이 다 맞는 말이라서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요즘은 무조건 이과가야 살길이 열린다고 적성이랑 상관없이 다 이과 선택해."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멸종이라고 문과전공은 취업이 잘 안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똑똑한 애들은 주식투자에 코인투자에 파이어족 되고 싶어서 젊을 때부터 착실하게 벌려고 혈안인데."

경제관념, 돈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좋은 대학 나온다고 돈 잘 버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 그런 사람들이 있겠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뜻대로 흐르는 인생을 가지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E는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사람처럼 중얼거리다가 작게 덧붙였다.


"그래도... 나 같아도 싫을 거 같아. 내 인생인데 남들이 좋다는 대로만 살고 싶지 않지.

해보고 잘 안되더라도 안 해보고 후회하고 남들 좋다는 인생에 평생 끌려다니는 것보다는 낫지..."


사람들은 생김새는 다 다르다.

각자의 추구미가 다르다.

사회에 따라 지향점이 다르다.

자신의 삶을 원하는 대로 살고 책임질 수 있다면

사실 무엇이 되든 상관없다.

이 애매한 시대에

AI가 생겨 많은 직업이 사라진다면 더더욱

어차피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E의 혼잣말에 말없이 수긍할 뿐이었다.



이전 15화제법 잘 어울리는 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