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or Never

별별 사람들 31화

by 매콤한 사탕

퇴근 후 공원에서 톡 쏘는 매력의 Y를 만났다.


"웬일이야?"

"달리려고"

"드디어!!!"

"아프니까 비꼬지는 말자."


지난해 여름, 러닝머신에서 뛰면 무릎관절이 안 좋아진다는 영상을 보고 Y는 결심이 선 것처럼 보였다.


"나도 밖에서 뛰어야겠다. 무릎관절도 문제지만 러닝머신에서 뛰니까 폰을 봐도 지겨워서 오래 못 뛰어. 밖으로 나가야 풍경도 보고 사색도 하고."

"어휴, 사색까지?"

"이 녀석! 도파민 중독자가 스마트폰 좀 안 보겠다는데 꼭 그렇게 말해야겠냐?"


Y는 무더위가 물러가는 대로 즉시 밖에 나가 달리겠다고 단호히 선언했었다.

그 후 아무 기별 없이 1년이 훌쩍 넘었다.


나는 Y와 보조를 맞춰 달리면서 어떻게 된 사연이냐고 물었다.




"<길 위의 뇌>라는 책 들어봤어? 재활의학과 의사가 쓴 책인데 마라톤이 취미라나봐. 요즘 러닝이 대세잖아. 시의적절하지. 나 같은 지병이 있는 사람은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책이야."


Y는 자칭 죽어야 끝나는 '지적허영'이라는 지병을 앓고 있었다.


"책에 보면 중풍에 걸린 한 남자 이야기가 나와. 술 좋아하고, 먹는 거 좋아하는 그냥 평범한 40대 초반인데 고혈압이야. 그러다 중풍이 온 거지. 젊은 사람이 반신불수가 될 지경인데 아이들도 어리고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니까 이 의사가 열심히 재활을 도왔던 거야. 다행히 젊으니까 회복이 빨랐지. 그런데 몇 개월 지났을까 또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아무거나 막 먹고 해서 살이 엄청 쪘어. 이건 뭐 악순환의 반복인 거야."


의사가 재활과정을 녹화해 놨더라고.


"힘들게 재활해서 간신히 나았는데 또 중풍에 걸리고 싶냐고. 식단조절하고 운동해야 한다고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 그런데 그 남자가 녹화본을 하나 복사해 달라고 했대. 의사는 스스로 느끼는 바가 큰가 보다, 이제 관리하겠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자기 장모님이 운동 안 한다고 아픈 자기도 이렇게 힘들게 운동해서 나았으니 제발 운동 좀 하시라고 장모님한테 보여드리겠다더래."


그 순간, Y는 밖에 나가서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잠깐 머릿속에 스쳤다고 했다.


"그래서 드디어 달리게 된 거야?"

"사실, 아니야."

"뭐?"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 책 봤다고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어? 불가능해."


그제야 톡 쏘는 매력의 Y는 부끄러운 진짜 속내를 드러냈다.





점심시간 Y가 도시락을 빠르게 해치우고 <길 위의 뇌>를 읽고 있을 때였다.


"무슨 책이길래 열심히 읽어요?"


Y의 동료는 평소에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었다. Y는 책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하고는 다시 책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Y님 운동 안 하죠? 꼭 운동 안 하는 사람들이 이런 책 읽더라."

"저 헬스장은 다니는데요."

"그래요? 그런데 왜 이런 책을?"

"달리기가 유행이라니까 궁금하기도 하고, 건강관리하면 좋잖아요."

"그렇죠. 살쪄서 걱정이에요. 운동 열심히 해야죠."


Y는 통통해진 동료의 뱃살에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 Y는 얼른 정신을 챙기고 동료에게 되물었다.


뭐 하시는 운동 있으세요?

"아뇨,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나도 그렇긴 한데 우리 남편이 계속 살이 쪄서 걱정이에요. 이대로 가다간 애도 어린데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싶어요. Y님 그 책 읽고 좋으면 말해줘요."

"아, 책 빌려들일까요?"

"아유, 바쁜데 책 읽을 짬이 어디 있어요. Y님이 다 읽고 말해주세요. 그나저나 Y님처럼 책을 좋아하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우리 애한테 독서습관 길러줄 만한 지름길 같은 거 없을까요? 애가 영 책을 멀리해서 걱정이에요."


Y는 <길 위의 뇌> 속의 중년 남자 같은 사람이 여기도 있네. 하면서 속으로 빈정거렸다.

그러다 불현듯 1년 전 자신의 말이 뇌리에 스쳤다.


"나도 밖에서 뛰어야겠다. 무릎관절도 문제지만 러닝머신에서 뛰니까 폰을 봐도 지겨워서 오래 못 뛰어. 밖으로 나가야 풍경도 보고 사색도 하고. 말리지 마. 나 내일부터 뛴다! 기필코!"


그로부터 1년이 훌쩍 지날 동안 자기변명의 우여곡절이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여름 지나니 바로 겨울이야. 추워서 밖에 못 나가."

"뛸 시간이 어디 있어."

"날씨가 너무 좋아."

"피곤해."

"벌레 많아서 안돼. 못해."

"더워서 못 달려."

"장마잖아."


Y는 지금 남 흉볼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 얼굴에 내가 침을 퉤 뱉고 있었더라."


Y의 톡 쏘는 매력이 스스로를 찌르고 있었다. 나는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야. 잘왔어."

"그렇지?"


Y는 겸연쩍게 배시시 웃었다.


지금 아니면 평생 못할 거 같더라고.


우리는 강을 따라 가볍게 달렸다.

내일은 또 무슨 사정이 생길지 모를 일이지만 지금, 여기, 우리는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