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사람들 35화
"아버지는 제가 아는 한 제일 똑똑하고 능력 있는 분이세요. 고향에서 유명했었대요. 대기업에서 일하셨거든요. 저는 아버지를 존경해요."
A는 아르바이트생 청년의 말에 감동받았다.
성공한 유명인사를 멘토라고 여기는 사람은 많이 있었지만 자기 아버지를 존경한다니!
청년 같은 자식을 둔 그 아버지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런 아버지를 둔 청년이 부러웠다.
"퇴직하시고 회계사시험 준비하셨는데 요즘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걱정이에요."
A는 진심으로 아버지를 걱정하는 청년을 보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를 하시는 분은 아니셨지만 가족에게는 가혹하리만큼 고집불통인 분이셨다.
새로 온 청년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돌아서는데 동료가 A에게 뜻밖에 소식을 전했다.
"매니저님 아셨어요? 그 사람 아들이래요. 왜 있잖아요, 전에 있던 그 사람이요!!!"
"네?"
A는 놀라 나자 빠질 정도로 충격에 휩싸였다.
그 사람은 2년 전 A의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A가 새로 생긴 지점에 발령받은 직후였다.
일손이 부족해 급하게 주변에서 아르바이트를 모집해야 했다.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었고, 능숙하게 전산업무가 가능해야 했다.
나이 상관없이 그 두 가지를 충실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면 되었다.
50대 초반인 그 사람은 매장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본사에서는 대기업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컴퓨터 능통자라고 했다.
직원들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뽑아주면 어떡하냐는 볼맨소리가 여기저기 튀어나왔지만 관리자 입장에서 일만 잘해준다면 그런 것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아무래도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자리에는 보란듯이 회계사 기출문제집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SNL에 나오는 풍자코미디처럼 고객을 상대할 때조차 이어폰을 빼지 않았고,
업무 컴퓨터로 버젓이 유튜브를 봤다.
심지어 관리자인 A앞에서도 유튜브를 끄지 않았다.
자신보다 어린 직원들에게 처음부터 반존대였던 말은 점점 짧아져 무례한 반말로 바뀌었다.
고객을 대할 때는 마지못해 반존대를 했지만
한심하다는 듯 가르치려는 못마땅한 어조였다.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A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사람을 잘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본사로부터 새 매장을 맡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직원들 관리 하나 못하냐는 말을 들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매장 오픈 전 그 사람으로부터 문자가 날아들었다.
- 건강악화로 퇴사하겠음
A는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그 사람은 끝내 받지 않았다.
"MZ세대인가?"
내 물음에 A가 발끈했다.
"그 사람 50대라니까! 그리고 요즘 애들이 다 그런 줄 알아? 솔직히 MZ세대 어쩌고 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잖아. 내가 아는 젊은 사람들은 적어도 그 사람처럼 무례하게 굴진 않아."
A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다, 어떤 세대가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케바케, 사바사야. 어느 세대나 있잖아. 뻔뻔하고 상식이 안 통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아버지라니 어떻게 그 애한테 사실을 말할 수 있겠어. 너무 잔인한 일이잖아. 부디 그 애는 영영 몰랐으면 좋겠어."
A는 슬퍼진 것 같았다. 고집불통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실망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었다.
"부모로 산다는 건 참 번거롭고 조심스러워. 나는 존경받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솔직히 거창한 존경까지 바라지 않아. 그냥 내 자식이 나한테 실망하는 일이 없었으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걱정할만한 사람은 생각이 없고
좋은 사람은 늘 염려한다.
나는 A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내가 아는 한 너는 좋은 부모고, 앞으로도 좋은 부모일 거야."
"그럴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럴 것이다. A는 좋은 부모로 아이와 함께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