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사람들 32화
그날은 학교 축제를 위한 최종리허설 날이었다. 모든 참가자들이 의상까지 모두 갖춰 입고 무대에 올라 마이크 테스트를 한다고 했다. 중학교 축제이지만 제대로 하는구나 T는 감탄했다고 한다.
T는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무대의상을 챙겼다. 하얀색 트위드 미니원피스로 딸이 부를 볼빨간 사춘기 노래의 소녀감성과 찰떡이었다.
"너무 꾸민 것 같지 않아요?"
"왜 예쁘기만 한데."
"엄마, 원피스까지 준비해 주시고 너무 감사해요. 잘하고 올게요."
거울 앞에서 하얀색 트위드 미니원피스를 들고 수줍게 웃는 딸의 모습을 보고 T는 흐뭇했었다. 어느새 다 자라 벌써 중학생이 되었구나...
그런데... 늦은 저녁 딸아이는 꺼이꺼이 울면서 집에 들어왔다.
"나 아무래도 내일 축제 못할 거 같아요. 노래 부르다 삑사리 났어요. 너무 창피해서 죽을 거 같아 으아앙"
당황한 T는 딸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아유, 리허설인데 뭐 어때? 실수할 수도 있지. 괜찮아. 내일 축제 때 잘하면 되잖아."
"아, 못할 것 같아요. 괜히 장기자랑 나간다고 했나 봐요. 주제넘게 나 같은 게 뭐라고."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네가 어디가 어때서?"
"아줌마 같대요. 이 원피스"
"뭐? 말도 안 돼. 누가 그래?"
그 아이는 같은 반 친구였다. T의 딸이 학교에 남아 축제 최종 리허설을 한다고 하자 그 아이는 살갑게 자신이 옆에 있어주겠다고 했다. 사교성 좋은 T의 딸은 반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지만 그 아이와 유독 친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래도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자신을 응원해 주는 친구가 있어 고마웠다고 한다.
T의 딸과 그 아이는 참가자들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응원하고 박수를 쳤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T의 딸 차례가 되었다. 그 아이는 무대 뒤까지 T의 딸과 동행했다. T의 딸이 무대에 막 올라가야 할 때 그 아이가 말했다.
"이 의상 너한텐 잘 어울리는데 근데 솔직히 좀 아줌마 같아."
"뭐?"
"아니, 뭐 좀 그렇다고. 다른 애들 엄청 잘하던데 너 진짜 잘할 수 있겠어?"
그 말을 듣고 무대에 오른 T의 딸은 오들오들 떨었다. 노래 부를 때 떨린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외향적이고 당찬 딸아이는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 목소리가 좋다고 노래 잘 부른다며 칭찬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나만의 착각이었던 걸까. 아이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런 말을 했다고?"
T는 딸아이의 말을 듣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T는 딸아이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 꼭 끌어안고 있었다. 딸아이의 눈물이 말랐을 때 T는 부드럽게 속삭였다.
"한번 실수했다고 해서 모든 게 다 망가지는 건 아냐.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누구나 실수하는 걸. 진짜 노래 잘 부르는 가수들도 삑사리 내. 그 사람들이 실력이 없어? 노력을 안 해? 엄청나게 치열하게 열심히 하는데 그런데도 가끔은 실수하는 거야. 엄마도 그래. 어른이라고 실수를 안 할 것 같니? 사실, 실수투성이야. 그때마다 엄마도 엄청 창피해. 근데 또 괜찮다, 괜찮아 다음에 안 그러면 되잖아. 그러면서 이겨내는 거야. 그러면 다음번에는 좋아져"
"정말?"
"그럼, 너는 할 수 있어. 오늘 실수했지만 내일은 안 그럴 수 있을 거야. 스스로를 믿어. 너는 잘할 수 있어."
"..."
간신히 멈췄던 눈물이 다시 딸아이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중요하지도 않은 남의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 걔는 친구가 아니야. 친구면 자기 친구가 좋아하는 일은 진심으로 응원해 줘야지. 잘 될 거라고 너는 할 수 있다고. 네 주위에 그런 친구들도 있잖아? 그렇지?"
"응."
"그 친구들에게 도와달라고 해봐. 용기를 낼 수 있게. 그리고 이 원피스 진짜 잘 어울려. 어떤 아줌마가 이런 소녀소녀한 옷을 입니? 물론 잘 어울리는 아줌마들도 있겠지. 근데 엄마는 입고 싶어도 못 입어. 너처럼 날씬하지도 않고, 너무 짧고, 어울리면 매일 입고 싶은데 진짜 엄마가 있는 힘껏 꾹 참을게."
그 말에 T의 딸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너무해요. 울다가 웃으면 안 되는데..."
"그래서 축제는 잘했어요?"
내 물음에 T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T의 딸은 좋은 친구들과 함께였고 멋지게 무대를 소화했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고 한다. 선생님들 친구들 선배들 모두 T의 딸의 노래를 좋아했고 원피스가 잘 어울린다고 예쁘다고 칭찬했다.
"그 아이는?"
"걔는 아무 말도 안 하더래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까이 올 수도 없었대."
T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 아이가 어떤 심정으로 사는지 궁금했다.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없는 우정이란
과연 그런 게 우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