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그리는 시간 24화
초겨울을 얕잡아보고 아쉬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칼라를 바짝 세우고 코드를 힘껏 여며도
집요하고 냉랭한 기운을 떨쳐버릴 수 없어
사로잡힌 채로 한달음 내달립니다.
시야가 발맞추어 풀썩풀썩 뛰어오르고
덜덜 떨리던 몸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단추를 풀어헤치고
코트를 망토처럼 흩날리며 정신없이 내달립니다.
계단을 박차 오르며 요란하게 통근버스에 오르니
눈앞이 뿌옇게 안개로 뒤덮였습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버스가 내달립니다.
앞으로 앞으로 점점 더 빠르게
희미한 안경 속에서 정경이 어지러이 흐트러집니다.
지쳐버린 눈이 스르륵 감기고
나는 어젯밤 꿈으로 돌아가
캄캄하고 적막한 길에 서 있습니다.
그림자마저 사라진 어둠 속에 홀로 남아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쫓기듯 내달립니다.
숨이 턱 막히고 다리가 제멋대로 비틀대도
막다른 길을 마주치더라도
더 빨리 더 빨리
이 어둠의 끝까지 내달릴 작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