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우선순위 그리고 너.

별별 사람들 41화

by 매콤한 사탕

민정은 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심란했다.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딸의 얼굴은 온통 화농성 여드름으로 뒤덮였다.

민정은 딸을 보며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그녀는 순정만화에 나오는 뽀얀 피부를 가진 청순한 소녀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시도 때도 없이 돋아나는 화농성 여드름 때문에 사춘기 내내 외모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민정에게 여드름은 잔혹한 흑역사 그 자체였다. 유난히 극성스럽던 여드름은 대학 입학할 무렵에서야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민정은 딸이 자신을 닮아 고생하는구나 싶어 죄책감이 들었다.

당장 여드름 치료를 잘한다는 피부과를 수소문해서 예약을 잡고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퇴근하는 대로 피부과 가자."

"아 싫어! 엄만 내 생각도 안 물어보고 왜 맘대로 정해! 나 바빠!"

"야! 직장 다니면서 딸 피부과까지 같이 가주는 게 쉬운 줄 알아? 챙겨줄 때 군말 말고 따라와!"


민정은 싫다는 딸을 억지로 붙들어 피부과로 질질 끌고 갔다.

다행히 딸은 피부과 의사 앞에 가자 온순한 양으로 변했다.


"아휴, 여드름이 심하네. 이렇게 될 때까지 그냥 두면 어떡해요?"

"그러게 말이에요. 얘 잘 씻지도 않아요. 학원 갔다 오면 피곤하다면서 핸드폰이나 붙들고 있고 중학생이나 돼서 자기 피부관리는 자기가 해야지. 엄마 걱정이나 시키고. 선생님 얘 정말 따끔하게 혼내주세요."

"어머니, 학생이 뭘 잘못했어요? 엄마가 문제지."

"네?"


민정은 의사의 질문에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피부과 의사의 근엄한 눈초리와 세상 순진한 토끼 눈을 뜬 자신의 딸을 번갈아 쳐봤다.


"스트레스만큼 피부에 안 좋은 게 없어요. 학생이 공부하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학원 다녀와서 핸드폰도 좀 볼 수 있지 어머니가 너무 엄격하신 거 아니에요. 학생 저녁밥은 잘 먹고 다녀?"

"학원 가기 전에 대충 사 먹어요."

"아니 피부에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그러니까 피부가 뒤집히지. 어머니 학생 식단 신경 써주셔야 해요."

"선생님. 저희 엄마도 일하시느라 힘드세요."

"아휴, 학생이 기특하네. 아직 어린데 엄마 힘든 것도 생각할 줄 알고."


민정은 하도 기가 막혀서 입이 떡 벌어졌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중년의 배 나온 아저씨와 원수인지 딸인지 헷갈리는 여드름쟁이 사춘기 소녀는 처음 만난 사람들 치고 죽이 척척 맞았다. 이 사람들이 진짜!


"어머니, 인생 길게 보면 학교 때 공부 잘하는 거 별로 안 중요해요. 하지만 피부는 100년 가죠. 100세 시대에 피부관리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어머니도 모공 상태 보니까 사춘기 때 피부고민 많으셨겠네요. 호르몬은 어쩔 수 없어요. 살살 달래면서 관리해야 합니다."


마음씨 좋은 피부과 의사가 예민한 딸 몰래 눈을 찡긋거렸다.


"재밌는 선생님이네."


내 말에 민정이 손을 사정없이 내두르며 말했다.


"고마운 선생님이지. 영업천재시고! 딸 여드름케어 10회권이랑 덩달아 나도 피부관리 10회 끊었다니까. 100세 피부라는 말에 혹 넘어갔다."

"딸은 피부과 가겠대?"

"의사 선생님이 편 들어주니까 신났어. 여드름케어받고 나오더니 좋다더라. 말은 싫다고 하면서 고민했었나 봐."

"잘됐네."

"딸한테 미안하더라. 공부해라. 여드름관리해라. 다 널 위해서다. 너 잘 되게 하려고 그러는 거다 하면서 사실 다 날 위해서였더라고. 내 마음 편하려고. 저녁밥도 잘 못 챙겨주면서 말이지."

"일하면서 그것까지 챙기기가 싶나."

"모르겠어."

"뭘?"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딸은 나랑 다르니까. 근데 걔도 자기가 뭘 원하는 걸 모르는 것 같더라고. 그냥 둬도 되나?"

"..."


나는 어른이지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정답을 찾지 못하고 주저하는 동안 민정은 멀리 아주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 같았다.

이윽고 탄식 같은 한숨과 함께 그녀가 말했다.


"그냥 둘 수밖에...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도 각자의 인생은 각자 알아서 하는 거니까."


민정의 희미한 미소에 염려와 씁쓸함이 번졌다.

우리는 아직 인생의 정답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모두가 열심히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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