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연애의 끝

별별 사람들 42화

by 매콤한 사탕

며칠 째 새벽마다 사랑에 빠진 이의 연애사를 들어주었다고 하자 Y가 심각해졌다.

"남의 연애사에 함부로 호응하지 마."


Y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 일로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와 영영 헤어졌다고 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 4명이 만났다.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의 격동 연애사에 대해 신나게 늘어놓았다.

그러는 동안 친구의 표정은 내내 어두웠다.

그 친구는 몇 년째 사귀고 있는 상대와 헤어질 예정이라고 했다.

무슨 곤란한 사정이 있는지 구체적인 이유까지 물을 수 없을 정도로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고등학교 때 단짝친구들이었지만 대학 가고 사회생활하면서 접점이 없는 상태라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Y는 친구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소개팅할래? 내가 소개해줄까?"

"저기 사실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이상한 말이었다.

사귀는 사람이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환승연애 중인가?


분위기가 더 어색해졌지만 어쨌든 Y는 친구를 응원하는 쪽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그날 이후, 그 친구는 틈만 나면 Y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 사람이 날 보고 웃었어!

내가 좋아하는 사탕을 어떻게 알았대!

속이 안 좋아서 점심 안 먹었더니 많이 걱정하더라!

내가 갈 때까지 엘리베이터를 잡고 기다려줬어!

날 많이 좋아하나 봐! 정말 어쩌지!


Y는 밤잠을 줄여가며 새벽까지 친구의 썸에 대해 들었다.

그 친구가 몇 년째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더욱더 신경을 썼다.


하루이틀이 아니라 근 한 달 동안 새벽 통화가 이어지자

Y는 친구가 고민을 끝내고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진짜 널 많이 좋아하는 거 같은데 고백해 봐."

"그럴까? 그 사람이 내향적이어서. 내가 해야 할 거 같긴 해."

"그래. 그 사람도 계속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런 거 같아. 내가 너무 마음을 못 알아줘서 힘든 거 같아."

"그래. 당장 고백해! 이제 썸은 그만 타고 커플이 되자! 파이팅"



Y는 씁쓸하게 말했다.


"퇴근하고 전화를 보니까 부재중통화가 엄청 많이 와 있었어. 그래서 친구한테 바로 걸었지."


친구는 그야말로 엉엉 울고 있었다.

그 사람은 친구의 고백에 뒷걸음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자신은 특별히 관심을 표현한 적이 없다고.당신과 사귈 마음이 없다고.


"네가 고백해 보라며! 썸 아니라잖아! 이제 어떡해! 나 어떡해?"

"아니, 네가 그랬잖아. 그 사람이 너 진짜 좋아하는 거 같다고..."

"다 너 때문이야! 네가 고백해 보라고 해서! 너 진짜 짜증 나!"


그 친구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다시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설마 혼자만의 상상연애일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선의로 시작한 연애 상담이 절교로 끝나자 Y는 한동안 충격에 시름시름 앓았다.


그리고,

Y는 본의 아니게 고등학교 내내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의 다른 얼굴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Y의 험담을 하고 다녔던 것이었다.


"사람이 다 아는 거 같아도 다 아는 게 아니더라. 아무리 친구사이라도 함부로 들어주지 마. 후회해"


Y는 마음의 상처가 남았는지 몇 번이고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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