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누구를 향했는가
2025년 6월 27일, 정부는 전세대출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갭투자 근절이라는 명목 아래 수도권 전세대출 보증비율은 기존 90%에서 80%로 하향됐고, 매수와 동시에 전세 세입자를 들이는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은 전면 금지됐다. '대출로 집 사고 전세금으로 갭을 메우는 구조'를 끊어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시장은 정책의 의도보다 반응에 더 민감했다. 전세는 빠르게 줄었고, 월세는 조용히 증가했다. 규제의 대상은 갭투자였지만, 그 결과로 불확실성이 전가된 곳은 다름 아닌 실수요자들이었다.
서울의 전세 물량은 규제 발표 직후 한 달 새 4.1% 줄었다. 같은 기간 월세 물량은 1.9% 증가했다. KB부동산의 월세지수는 127.4를 기록하며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17개월 연속 상승이라는 흐름은 그것이 단순한 계절적 변동이 아님을 보여준다. 임대차 시장의 체계가 조용히, 그러나 뚜렷하게 바뀌고 있다. 강남구에서는 월세 매물이 전세 매물을 앞질렀고, 신축 대단지의 일부에선 전세가 자취를 감췄다. 시장이 제도에 저항한 것이 아니다. 시장은 제도의 균열을 가장 먼저 감지했고, 그에 맞게 구조를 바꿨다. 변화는 늘 가장 약한 고리에서 시작된다.
이번 규제는 겉으로 보기에 한 가지 목표를 겨냥했다. 부동산 가격을 왜곡시켜온 갭투자. 하지만 문제는, 그 투자 방식에 사용된 도구가 다름 아닌 전세대출이라는 점이었다. 전세대출은 지난 10여 년간 실수요자들이 주거를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다리였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외곽의 중저가 주택에 입주하려는 무주택 청년과 신혼부부에게는, 이 대출 없이는 자력으로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번 규제는 갭투자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갭투자와 실수요자를 한 묶음으로 규정한 채, 일괄적으로 제약을 가한 것이나 다름없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전세대출 이용자 중 72.1%는 ‘자금 부족으로 인해 전세보증금 마련이 어려운 실수요자’라고 응답했다. 한국은행도 2024년 보고서에서 “전세대출의 상당 부분은 투기 목적이 아닌 실거주 수요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명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구체적인 구분 없이 공급을 줄이는 방식의 규제를 선택했다. 실수요자를 걸러내지 못한 대출규제는, 정밀한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통계 뒤에 숨어 있는 구체의 삶을 읽지 못한 행정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규제가 단기적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갭투자는 구조의 산물이다. 한국의 주거 구조는 자가점유율이 낮고, 전세가 대출보다 선호되는 특이한 시장이다. 이는 보증금을 재투자해 자산을 증식하려는 행태와, 전세를 통해 무이자 자금 활용이 가능한 임대인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형성된 구조다. 갭투자는 이 구조가 낳은 왜곡이지, 그 자체가 구조는 아니다. 따라서 출입문 하나를 막는 방식으로는 이 왜곡을 제거할 수 없다. 구조를 바꾸지 않고 통로만 닫는 방식은, 시장이 다른 출구를 찾아 움직이게 만들 뿐이다.
이제 그 출구가 ‘월세’다. 월세는 계약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비용의 이동이고, 위험의 전가다. 전세는 대출이라는 명확한 리스크 분산 장치가 있었지만, 월세는 현금 흐름이 직접적으로 임차인에게 부담되는 구조다. 전월세 전환율은 5~6%에 달하며, 이는 사실상 임차인이 금융기관이 아닌 집주인에게 ‘고금리 이자’를 지불하는 셈이다. 주거 안정성은 사라지고, 매달 고정된 지출로 인한 재무적 경직성만 커졌다. 월세 전환은 ‘비용의 비가역화’다. 세입자는 매달 자산을 축적하지 못하고, 주거의 비용을 단기 소비로 전환해 버린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수도권 청년층의 소득 대비 임차비용 비중은 이미 40%를 초과하고 있다. OECD 기준 ‘과도한 주거비 부담’인 30%를 훌쩍 넘긴 수치다. 월세로 전환된 시장은 이 지표를 더 끌어올릴 것이다. 주거비가 소득의 절반에 육박한다면, 저축은 불가능해지고, 내 집 마련은 먼 미래의 일이 된다. 전세가 있던 자리에 남은 것은 월세고, 월세 뒤에 남는 것은 '한 달을 버티는 삶'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 ‘누구를 막았는가’보다 ‘누구를 지켜냈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갭투자를 규제한다는 명분 아래, 무주택 청년의 이동권과 생애 첫 보금자리를 잃게 했다면, 그 정책은 과연 옳았는가. 실수요자와 투기수요를 구분하지 못한 규제는, 기술적으로 정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전세대출에 대한 목적별 데이터 구축, 실거주 기반의 보증 정책, 그리고 무엇보다 공공임대와 준공공임대의 재정비 없이, 오로지 수요만 억제하는 정책은 시장을 되레 불안정하게 만들 뿐이다.
전세의 월세화는 경향이다. 그리고 이 경향은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을 남긴다. 금융의 규율이 정책의 최우선이 되어선 안 된다. 주거는 단순한 수치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의 삶이 걸린 공간이다. 정책은 이제 묻고 들어야 한다. 이 규제는 누구를 향했는가. 그리고 누구를, 지켜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