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멈춘 자리에 정부가 들어섰다
2025년 8월 4일, 국회는 다시 한 번 농업정책의 큰 방향을 결정짓는 선택을 내렸다. 과거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었던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이, 여야 간 정치적 타협을 거쳐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날 국회의사당에선 환호도 있었고, 조용한 탄식도 있었다. 어떤 이는 이것을 농민 생계의 승리라 말했고, 어떤 이는 포퓰리즘의 귀환이라 평가했다. 그러나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 법안의 진짜 의미는, 단순히 찬성과 반대의 진영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골자는 명확하다. 정부가 쌀 수급을 조절하되, 과잉 생산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일정한 요건 하에 초과 생산량을 공공이 매입한다는 것이다. 쌀값의 급락을 막고, 농가의 소득 기반을 보호하겠다는 목적이다. 표면적으로는 공급조절과 가격안정을 위한 제도지만, 실질적으로는 ‘생산 이후 책임의 공공화’를 제도화한 것이다. 농업이 시장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구조임을 인정하고, 정부가 일정 부분 수급의 마지막 보루로 나서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한 기술적 조율이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두고 "시장 기능을 왜곡한다", "과잉 생산을 부추긴다", "재정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고, 당시 여야 간 극심한 갈등 속에서 폐기됐다. 이재명 정부는 기존 법안에 ‘사전 수급조절 계획’, ‘작물 전환 유도’, ‘수급조절위원회 심의 절차’ 등의 행정적 안전장치를 덧붙여 재상정했다. 이번 개정안은 그 결과물이다. 정부는 의무매입에서 일정한 재량을 확보했고, 정치권은 입법적 책임을 마무리할 명분을 얻었다. 그렇게 법안은 통과되었고, 이로써 '농업 4법'의 입법 시리즈도 막바지를 향하게 됐다.
하지만 제도적 정합성과 정치적 합의는 다르다. 법이 통과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획득한 것은 아니다. 지금 쌀값은 여전히 하락세다. 2025년 7월 기준 산지 쌀값은 전년 대비 약 12% 하락했고, 소비자 쌀 구매량도 줄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소비량이 1980년 130kg에서 2023년 56.7kg까지 감소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더 이상 국민은 쌀을 '주식'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러한 추세 속에서 생산 확대 유인을 부여하는 정책은, 비록 보호의 이름을 달고 있더라도 시장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더구나 쌀은 보관 비용이 높고, 국내 수요가 정체되어 있어, 초과 생산물의 매입은 곧 공공 재정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쌀값 안정을 위해 매입된 쌀은 어디로 가는가? 결국 일부는 보관되고, 일부는 해외 원조나 사료 등으로 전환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가격 왜곡, 예산 낭비, 생산 조절 실패가 반복적으로 발생해왔다는 점이다. 쌀을 폐기하거나 헐값에 처분하는 장면이 반복된다면, 국민은 과연 이 법이 농민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관료주의의 순환 논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에 무작정 반대하기도 어렵다. 한국 농업은 지금 고립돼 있다. 기후 위기, 고령화, 유통 불균형, 무분별한 수입 개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농가의 현실은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쌀값 하나에 가계 전체가 좌우되는 소농에게 있어, 정부의 최소한의 개입은 생존을 위한 안전망이다. 문제는 이 법이 단기적인 가격 방어에는 유효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 구조 개선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격’이 아니라 ‘농업의 구조’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필요한 해법은 무엇일까? 첫째, 정부는 ‘쌀’에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농가 소득의 다변화를 유도하고, 논타작물 전환에 대해 실질적 인센티브와 교육, 유통 채널을 지원해야 한다. 둘째, 공공 매입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수급 정보 체계다. 생산자는 ‘가격’이 아닌 ‘정보’로 판단하게 해야 하며, 정책은 시장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 셋째, 공공이 개입하더라도 그것이 최후의 수단이 되게끔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것이 너무 쉽게 전면으로 호출되고 있다.
이번 법안은 농민에게 위로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위로가 진정한 해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더 정교하고 더 책임 있는 운영 체계가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농업은 보호받는 대신 고립되고, 시장은 제도의 그림자 속에서 혼란을 겪을 것이다.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구조로 평가받는다. 법은 통과되었지만, 그 법이 농업의 내일을 바꾸는가, 아니면 오늘의 불만을 덮는가. 이 질문에 우리는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법률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