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이 멈춘 도시, 민간이 빠진 국가

디벨로퍼의 퇴장이 의미하는 것들

by 머스

대한민국의 주택시장은 언뜻 조용해 보인다. 부동산 시장 과열은 진정되었다는 뉴스가 이어지고, 거래량이 소폭 반등했다는 통계도 언급된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숫자가 말하지 못하는 실체가 보인다. 분양 현장은 적막하고, 착공 일정은 줄줄이 미뤄지며, 설계도면은 서랍 안에 접혀 있다. 자금줄은 끊겼고, 그 자리를 채워야 할 개발자들은 하나둘 현장을 떠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단편적 지표와는 달리, 도시의 혈관은 지금 조용히 응고되고 있는 셈이다.


그 중심에는 ‘디벨로퍼(developer)’, 즉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의 구조적 퇴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단지 토지를 매입해 건물을 짓는 시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 공간의 가능성을 설계하고, 사업성을 평가하고, 자금을 조달하며, 최종적으로 하나의 주거·상업·산업 공간을 구현하는 민간 공급 생태계의 핵심 주체였다. 공공이 계획을 세우고, 건설사가 시공을 맡는 구조 속에서 디벨로퍼는 민간 공급의 중심축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축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부동산개발협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에만 100곳이 넘는 디벨로퍼가 폐업하거나 등록이 취소되었으며, 최근 2년간 퇴출된 업체는 무려 350곳 이상에 달한다. 이는 관련 제도가 시행된 2007년 이후 반기 기준 최다 수치다. 2021~2022년, 자산 가격이 정점을 찍던 시기 고점에 토지를 매입했던 업체들은 이후 급격한 금리 인상과 자재비 상승, 인허가 지연, 미분양 증가, 그리고 기한이익상실(EOD)에 따른 금융권 자금 회수 압박까지 겹치며 연쇄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가장 최근 통계로는 2024년 민간 주택 착공 건수가 23만 5천 호에 그쳐,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의 결과가 아니다. 공급 시스템 자체가 꺼져가고 있다는 신호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주택 공급 과정은 수년간의 프로젝트 주기를 요구하며, 토지 확보, 인허가, 자금 조달, 착공과 분양이라는 복합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 어느 한 요소라도 원활히 작동하지 않으면 공급 자체가 중단된다. 특히 디벨로퍼는 금융과 토지, 인허가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중간자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부재는 단순한 공급량 감소 이상의 파급력을 갖는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체 주택 공급의 약 85%는 민간이 책임지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디벨로퍼 또는 민간 시행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공백을 공공 공급 확대를 통해 메우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대표적 공공 공급 주체인 LH는 2024년 말 기준 부채가 160조 원을 초과하였고, 신규 택지 확보와 공급 확대를 동시에 수행하기엔 역량과 재정 모두 제한적이다. 나아가 디벨로퍼들은 아파트뿐 아니라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상업시설 등 다양한 상품군을 개발해 왔기에, 이들의 공백은 단순한 ‘주택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기능 전체의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심각한 구조적 위기가 정책적으로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 6월 27일 발표된 부동산 대책은 고강도 대출 규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그 결과 잔금 대출, 이주비 대출, PF보증 심사까지 모두 조이게 되었다. 규제의 1차 목적은 강남을 중심으로 재과열 조짐을 보이던 집값을 진정시키는 것이었지만, 실제 효과는 실수요자까지 자금줄에서 배제시키고, 분양 시장 전체를 냉각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업계에서는 “효과가 길어야 3개월”이라는 냉소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으며, 자금 조달이 어려운 디벨로퍼들은 속수무책으로 버티기만 하는 상황이다. 자금 없이 공급을 이행할 수는 없고, 공급이 끊긴 시장은 결국 수급 불균형과 가격 반등의 불씨만 더하게 된다.


이쯤 되면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정부는 왜 여전히 디벨로퍼를 투기의 주체로만 보고 억제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가. 물론 과거 일부 시행사가 과도한 차입과 투기성 개발로 시장 불안을 키운 전례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다수 디벨로퍼는 수많은 규제, 기부채납, 개발부담금, 법인세 등으로 수익의 상당 부분을 이미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실제로 개발이익의 30~40% 이상이 각종 공공기여로 회수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하며, 그들은 더 이상 ‘이익 독점자’가 아니라 ‘공공과 민간을 잇는 기능적 실행자’로 진화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억제가 아니라 복원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디벨로퍼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시 정상적인 수익 구조 내에서 사업을 실행할 수 있도록 제도와 금융 여건을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이는 자산시장을 부양하자는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주거 안정을 위한 공급 기반을 지키기 위한 정책적 최소한의 인식 전환이다. 공급자 없는 공급 정책은 존재할 수 없고, 민간이 배제된 공급 시장은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급의 뿌리는 뽑히고 있다. 껍데기만 남은 사업지, 중단된 인허가, 회수된 PF 대출, 떠나는 사람들. 이대로 간다면, 2~3년 후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극심한 공급 부족과 가격 불안이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공급이 멈춘 도시에는 가격 안정도, 주거 복지도 없다. 그리고 민간이 빠진 국가에서는 어떤 공급 대책도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정책이 공급을 조절할 수는 있어도, 공급 그 자체가 되지는 못한다. 이 사실을, 이제는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