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문턱

대부업법 전면 개편이 불러올 기대와 균열 사이

by 머스

2025년 7월, 대부업법이 새 틀을 갖췄다. 겉으로 보기에 이는 오래된 금융 문제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응답이다. 연 100%가 넘는 이자를 받는 불법계약을 무효화하고, 온라인 대부 플랫폼을 규제망에 포함시키며, 개인·법인·중개업자 모두에게 자본금 요건을 강화했다. 단속이 아닌 구조, 권고가 아닌 법으로 바뀐 이번 개편은 한동안 방치됐던 비제도권 금융을 제도권의 테두리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금융 규제는 늘 양면이다.

특히 대부업처럼 제도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통로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부가 문을 잠그면 사라지는 건 금융이 아니라, 제도 속 금융이다. 그 빈틈을 메우는 것은 언제나 비제도권, 불법, 그리고 착취다.




“이자는 없애도,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2024년 기준,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불법사금융 피해자의 평균 이자율은 연 503%에 달했다. 이 중 상당수는 원금을 상환하고도 남는 수준의 이자를 물고 있었다. 이를 반사회적 계약으로 명시하고 원리금 모두 무효화한 이번 개정은, 민법 제103조의 사회질서 위반 개념을 대부업까지 확장한 사실상 첫 입법적 조치다.


한편 대부업 진입 요건도 대폭 상향됐다. 개인은 1천만 원에서 1억 원, 법인은 5천만 원에서 3억 원으로 높아졌고, 그간 사각지대였던 대부중개업도 자본금 요건이 신설됐다. 온라인 대부 플랫폼은 금융보안원 등록 의무와 서버 점검을 포함한 규제대상이 되며, '대출 광고만 하고 책임지지 않는 중개 구조'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단순한 단속에서 벗어나 ‘방파제 역할’을 자임한 이번 개정은 명백히 필요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법이 막아낸 대상이 누구였느냐는 점이다.




“규제는 정당했지만, 접근성은 후퇴했다”

규제는 정당했지만, 이로 인해 금융 접근성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현재 등록된 전체 대부업체의 약 50% 이상이 강화된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지 공급자 감소가 아니라, 고위험 차주에게 돌아갈 수 있는 ‘합법적 대출 창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유사한 사례는 일본에서 이미 목격됐다. 일본은 2006년부터 최고금리를 연 29.2%에서 20%로 인하하고, 대부업체 등록요건을 강화했는데, 3년 만에 합법 대부업체의 90%가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그 결과는 ‘야미킨(闇金)’이라 불리는 불법사채의 확산, 자살률 증가, 중소상공인 몰락이었다. 단기 성과는 있었지만, 사회 전체가 떠안은 비용은 훨씬 컸다. 지금의 한국이 딛고 있는 선은, 그때의 일본과 닮아 있다.




“정책금융으로는, 여전히 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정부는 이 공백을 정책 서민금융으로 메우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불법사금융 예방대출’(최대 100만 원)과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최대 1천만 원)이다. 그러나 이 두 상품의 2025년 예산은 각각 2천억 원, 1,700억 원에 불과하며, 특례보증은 오히려 전년보다 40% 축소됐다. 특히 가장 위태로운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달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예산보다도 문제는 접근성이다.


불법사금융에 내몰린 수만 명은 단지 '제도가 없어서' 그곳에 간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제도가 '있어도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의 사각지대는 늘 존재했지만, 규제가 그 면적을 확장시킨다면, 그것은 곧 법이 만든 새로운 위기다.




“금융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설계의 대상이다”

이제는 규제 이후의 구조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그 첫걸음은 “접근 가능한 공공금융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있다. 독일은 법정 최고금리를 두지 않는 대신, 불공정 여부를 사후적으로 판단하고, 누구나 금융에 접근할 수 있도록 ‘슈파카세(Sparkasse)’를 전국에 배치했다. 거리보다 더 중요한 건, 손이 닿는 거리 안에 금융이 있는지 여부다.


한국에는 지역신용보증재단이라는 전국 단위 조직이 존재한다. 아직은 소상공인 중심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청년·취약계층을 위한 보증 상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만약 이를 ‘보증–상담–대출’로 이어지는 통합 금융 플랫폼으로 개편할 수 있다면, 고위험 차주를 포용할 수 있는 구조적 가능성은 충분하다. 서민금융진흥원 또한 단순한 상품 공급을 넘어서, 위기 상황에서의 "문 앞의 금융"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법이 멀리 있는 것보다,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진짜 보호다.




“규제는 시작일 뿐, 설계가 완성이다”

대부업법 개정은 필요했고, 타당했다. 하지만 정책이 실제로 보호해야 할 사람에게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법은 선의로 포장된 배제에 불과하다. 법이 현장을 바꾸기 위해선, 현장이 법을 다시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완성된 법’이 아니라 ‘작동하는 제도’다.


강한 규제가 실현되었을 때, 그 이면을 채우는 건 포용의 두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속이 아니라 설계이며, 규제가 아니라 관계다. 금융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설계되지 않은 규제는 결국 또 다른 비제도권을 부른다. 그리고 그 책임은, 다시 법이 짊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