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학이 기억을 다루는 방법
기억의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이다. 프루스트는 7권의 서사를 통해 기억이 동작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Longtemps, je me suis couché de bonne heure.
오랜 시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문장은 단순한 자전적 회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가 앞으로 펼쳐갈 기억의 실험실을 여는 서곡에 가깝다.
작품은 서사를 급하게 시작하지 않는다. 대신 잠들기 직전과 깨어나는 순간 사이의 애매한 경계, 방 안을 채운 어둠, 몸의 방향 감각이 흐려지는 느낌 등을 길게 묘사한다. 이 느리고도 세밀한 도입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의식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서사가 될 것임을 미리 알려준다.
프루스트에게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일을 다시 보여주는 회상이 아니다. 기억은 감각의 층 속에 숨어 있다가, 어떤 순간 갑자기 문을 열듯 솟아오른다. 마치 기억의 격납고 같이 늘 열려 있으면서도, 닫힌 방처럼 고유한 밀도를 유지한다.
서술은 한 장면이 또 다른 장면을 불러오는 연상(association)의 흐름을 따라 움직인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곧장 이어지지 않는다. 조각난 채 흩어져 있다가 필요할 때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따뜻한 차 한 모금, 마들렌의 부스러기, 포도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 같은 일상의 아주 작은 감각들이, 놀랍게도 거대한 기억의 문을 여는 손잡이가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프랑스 문학이 왜 감각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에게 기억은 억지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며 되살리는 경험이다. 프루스트는 이처럼 미세하게 흔들리는 감각의 움직임을 어떻게 언어로 포착할 수 있는지를 가장 먼저 보여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프루스트가 기억을 나눌 때 가장 중요하게 바라봐야 하는 부분은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기억(mémoire volontaire)과 갑작스럽게 덮쳐오는 비자발적 기억(mémoire involontaire)을 구분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기억의 종류는 서술 방식에도 차이를 보인다.
그가 말하는 자발적 기억은 말 그대로 애써 떠올리는 기억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과거를 설명하고, 사건의 순서를 정리하고, 의미를 붙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기억을 되살려 낸다. 이때 만들어지는 기억에는 자연스럽게 설명조의 문장으로 쓰인다. "그때 나는…"이라는 시점에서 과거를 해석하게 되기 때문이다.
프루스트는 이런 자발적 기억은 진실에 닿기 어렵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의식적으로 떠올린 기억은 이미 현재의 관점과 판단이 섞여, 가공되었다고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비자발적 기억은 완전히 다르다. 마들렌 장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화자는 기억하려 애쓰지 않았는데도 감각이 먼저 반응하고, 과거가 갑자기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기억들은 어떠한 의도나 예고도 없다. 찰나의 감각을 통해 열리는 과거는 논리적일 수도, 단정할 수도 없다.
이때 떠오르는 기억은 과거 속 사건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기억이 떠오르면서 서사의 형식 자체가 흔들리는 순간 자체를 서술한다.
비자발적 기억에서는 시간의 순서가 무너지고, 현재의 화자는 잠시 자기 위치를 잃는 특징을 보인다. 차를 마시는 지금의 나와, 콩브레(Combray)에서 티요 씨 집에서 차를 마시던 소년의 내가 한순간 겹쳐지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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