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mour moderne』, 요즘 프랑스의 우아한 연애와 결혼
요즘 대세는 뭐니 해도 연애 프로그램이다. <하트시그널>로 시작해서 <환승연애>, <솔로지옥>까지, 이제는 누군가의 사랑까지 한 시즌짜리 장르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도 최근 한 연애 프로그램이 새 시즌을 시작했다. 제목은 <L’amour est dans le pré>, <사랑은 들판에 있다>라는 뜻이다.
연애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지만 벌써 20년 넘게 이어져온 장수 국민 연애 프로그램이다.
짐작했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빌라 안에서 서로를 평가하거나 천국도나 지옥도로 갈 상대를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들판에서의 일상을 함께할 상대를 선택한다.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실제 농부, 축산업자, 양봉업자처럼 농촌에 거주하며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바쁜 농사일 때문에 인연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담은 인터뷰를 공개하면서 시작한다. 이 인터뷰 영상을 본 시청자들이 손편지를 써서 프로그램 출연에 지원하게 된다. 그렇게 도착한 편지들 중 마음이 가는 사람을 선택하게 되고, 그(녀)와 파리에서 짧은 첫 만남을 거쳐 선택된 최종 후보가 농장으로 초대되는 방식이다.
편지는 도시에서 시작되지만, 관계는 농장의 새벽에서 시험되는 것이다.
이미지로만 보면 프랑스, 그중에서도 파리는 연애를 가장 세련되게 할 것 같아 보인다. 도시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연애는 감각적이고, 합리적이고, 독립적이고, 서로를 존중할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는 사랑에도 유행이 있고 연애에도 흐름이 있다면, 파리의 연애 방식일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파리에서 마주치는 사랑은 종종 정반대일 경우가 있다. 요즘 연애라고 불리는 것들조차 돈, 권위, 나이 같은 오래된 조건에 종속되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눈이 가는 소설 『요즘 사랑(L’amour moderne)』은 바로 그 불편한 지점에서 시작한다.
이 소설은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묻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 연애가 어떻게 관리되고 연출되며, 때로는 안전한 것처럼 보이도록 포장되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소설이 해부하는 건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사랑이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배치되는 사회적 장치이다.
그래서 『요즘 사랑』에 그려지는 파리는, 우리가 기대하는 낭만의 도시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랑을 감정의 문제로만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관계가 가능해 보이도록 꾸며지는 무대, 부르주아적 멋, 세련됐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말투와 태도, 가끔은 진보적 언어 사용이 어떻게 관계를 포장하고, 동시에 둘 사이의 폭력을 무마하는지를 보여준다.
실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늘 우아한 문장으로 자신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우아함 때문에 더 쉽게 용서받는다. 하지만 그 문장들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사랑은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한다. 그 우아함의 끝에는 끝내 사랑할 수 없었는 이유만 남는다.
소설은 파리 16구의 조용한 거리에서 시작된다. 한때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더 이상 한 줄도 쓰지 못하는 극작가 이반 카메노프는, "요즘 사랑(L’amour moderne)"이라는 말만 들으면 이상하게 멈칫하게 되는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 문화 산업의 정점에 있는 거물 제작자 미셸 위고가 그에게 한 편의 작품을 의뢰한다. 제목부터 노골적인 『요즘 연애(L’amour moderne)』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트렌디한 키워드들을 능숙하게 꿰어 만든 기획처럼 보이지만, 위고가 덧붙이는 개인적 부탁 하나가 이반을 다른 세계로 끌어당기게 된다. 그 부탁의 중심에는 위고의 아내이자 한때 배우로 찬란했던 알반 블랑작이 있다.
이반은 작업을 핑계로 알반의 일상 가까이에서 관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파리의 세련된 겉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숨겨진 관계의 민낯을 목격하게 된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진보적인 언어로 포장된 결혼 생활이, 실제로는 얼마나 정교한 통제와 종속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통제가 그녀의 감각과 선택을 어떻게 잠식하고 있는지를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이반과 알반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감정이 생겨나지만, 그 감정이 곧바로 로맨스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소설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는 순간마다 사랑보다 먼저 조건이 앞선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사랑은 충분했는데,
왜 사랑할 수 없었을까?
동시에 작품 속에 등장하는 관계는 요즘 연애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이반이 자꾸만 되돌아보게 되는 1990년대의 오래된 사건이 파리 16구의 특정 장소와 함께 서서히 떠오르고, 한 개인의 비극으로 가족 전체가 불행해 빠지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에는 사랑도 나오고, 불륜, 스캔들이 자주 등장한다. 무대가 파리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도파민만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다면, 현지 독자들의 눈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작품은 문학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제법 인정을 받았다. 작년에만 몇 개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요즘 사랑』이 프랑스에서 유독 잘 읽힌 건, 이 소설이 파리의 상류층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정확하게 재현해 냈기 때문이다. 16구의 분위기, 살롱의 말투, 좋은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는 눈빛과 침묵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집, 멋이 살아 있는 인테리어, 적절한 농담과 교양의 몸짓,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만들어내는 한 겹의 막을 부르주아들의 겉치레(vernis)라고 표현한다.
작품 속에서 겉으로 빛나는 그들의 사랑이 보여주는 진정한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일상적인 형태의 폭력과 이기심이 묵어있었다. 무례가 우아함으로 포장되고, 통제는 걱정이라는 말로 번역되며, 파괴는 맥락이 있는 사람의 실수로 설명되었다.
프랑스가 이 소설에 반응한 건, 바로 이런 특징 때문이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관리되는 방식을 그려낸 작품으로 읽혔다.
파리에서 사랑은 감정의 진폭보다 보여지는 형태로 먼저 평가된다. 누구와 함께 있는지, 어떤 장소에서 사진이 찍히는지, 어떤 언어로 관계를 설명하는지, 이 모든 것이 사랑의 품질처럼 유통된다.
연애는 사적인 일이면서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홍보물처럼 인식된다. 그리고 결혼은 생활의 동맹이면서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전략적 선택이 되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무너질 때조차, 무너진다는 사실은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감정 대신 서사를 먼저 수정한다. "오해였다", "힘든 시기였다", "우린 성숙해졌다" 같은 문장들이 관계를 다시 포장하고, 가장 큰 상처는 가장 매끈한 말로 봉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르주아적 사랑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작품은 그 관리의 기술을 날카롭게, 그리고 낱낱이 파헤쳤고, 감정에는 관심 없는 관계, 그저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동원된 장치들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왠지 사랑에는 진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 아름다운 태도와 문화적 교양, 좋은 매너와 품위 있는 멋이 있어야 할 것 같은 관계. 요즘 연애에 그럴듯한 재료들은 넘치는데, 관계는 오히려 더 극단적이다.
파리는 사랑을 낭만으로 홍보하는 도시지만, 정작 그 주인공들은 사랑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듯함으로 덮어둔 감정들, 식어서가 아니라 기대하던 모습이 아니기에 놓치는 사랑을 너무 많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