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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는 미국에서 해적판으로 먼저 출판되었다?

문학 자품의 저작권 보호는 어디까지 유효할까?

by 프렌치 북스토어

단편 소설로 구상되었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는 점차 규모가 커져 『젊은 예술가의 초상(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의 후속 편 격인 장편 소설로 발전했다. 조이스는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노트, 초고, 수정본, 타자본, 교정쇄를 거치며 이 방대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취리히로 이주한 조이스는 그곳에서 소설 작업을 계속했고, 해리엇 쇼 위버와 같은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아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단편 소설에서 장편 소설로의 변화는 작품의 범위와 영향력에 대한 그의 포괄적인 구상을 의미한다. 18개의 에피소드가 포함되어 있을 만큼 작품의 구조적 토대는 방대하다. 조이스가 길버트와 리나티 스키마라는 두 가지 도표를 사용하여 소설의 구조와 각 에피소드에 따른 장기, 예술, 색상, 상징과 같은 요소들을 정리했을 정도이다.




James_Joyce_Ulysses_1st_Edition_1922_GB.jpg 『율리시스(Ulysses)』 초판, 1922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파리




1921년 미국의 문학잡지 《리틀 리뷰(The little review)》에 일부 내용이 연재된 이후 외설적 논란으로 재판이 벌어지고 연재가 금지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의 실비아 비치는 1922년 과감하게도 소설 전체를 출판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1922년 2월 2일 파리에서 『율리시스』의 첫 정식 출판본을 발간한 후, 7년 뒤인 1929년, 출판이 금지되었던 미국에서 『율리시스』가 출판되는 일이 벌어진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파리'라는 허위 출판사명으로 출판된 이 작품의 출판은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조차 알지 못했다. 이 불법 해적판의 출판은 미국의 출판업자였던 사뮤얼 로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허위 출판사명으로 작가와 저작권자와의 협의 없이 미국 내에서 출판을 감행했다.




《투 월드 먼슬리(Two World Monthly)》에 연재되었던 율리시스




로스는 1926년부터 이미 자신의 잡지 《투 월드 먼슬리(Two World Monthly)》를 통해 내용의 일부 삭제하고 수정한 버전의 율리시스를 불법으로 연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미국은 외설적으로 간주되는 외국 작품들에 대해서는 저작권법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스는 이러한 허점을 이용하여 율리시스의 연재를 시작했고,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로스가 1929년에 출판한 해적판은 1927년 5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제9판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불법 해적판 율리시스는 정식 출판본보다 두껍고 비싼 종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작품 자체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수많은 오타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투 월드 먼슬리》에 연재된 『율리시스』는 내용 자체가 임의로 삭제되고 수정된 버전이 올라가기도 했다. 1929년 해적판 버전은 활자가 거꾸로 인쇄되는 조잡함을 보이기도 했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이런 해적판의 등장은 원작자 조이스뿐만 아니라 문학계의 분노를 샀다. 무단으로 출판된 작품은 저작권 침해라는 경제적 손실과 더불어, 검증되지 않은 오류투성이의 훼손된 텍스트들은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작가의 명성에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 황당스러운 사실은 1934년 랜덤 하우스가 합법적으로 『율리시스』의 미국판을 교정할 때조차도 로스의 해적판을 참고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불법 복사본의 광범위한 유통에 따른 결과는 상황을 바로잡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사뮤얼 로스(Samuel Roth)
사뮤얼 로스의 삶을 담은 책, 『사무엘 로스, 악명 높은 모더니스트』




불법 해적판의 등장에는 사뮤얼 로스라는 인물이 있는 것은 재판을 통해 밝혀졌다. 그는 『율리시스』 외에도 성적으로 노골적인 문학 작품이나 선정적이라고 판결이 난 모더니즘 작품들의 해적판을 국내(미국)에 출판했다. 그는 투 월드 퍼블리싱 컴퍼니라는 법인을 소유하고 있었을 정도로 해적판의 판매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1929년 『율리시스』의 불법 해적판은 뉴욕의 아돌프 & 루돌프 로윙거(Adolph & Rudolph Loewinger)라는 인쇄소에서 출력되었다.


초기에만 2천에서 3천 부의 해적판이 유통되었다. 이런 불법 해적판은 미국과 영국을 포함하여 율리시스가 금지되었던 국가로 밀반입되었다. 작품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광범위한 독자층에게 전달되었다.




History-of-Copyright-Law.jpg 1960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율리시스 해적판 사건은 20세기 초 일부 작품에 대한 저작권법의 한계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로 더 강력한 국제 저작권 협정과 작가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아지기도 했다. 검열과 저작권 사이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에 대한 제도적 보완을 제외하더라도, 문학적 스캔들로 인해 예술가의 도덕적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그들의 창작물을 존중하는 것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비록 원작에 대한 무단 편집과 배포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창작물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고 무단 착취에 대한 불법성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작가의 권리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고, 창작물에 대한 권리의 중요성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사건이 되었다.




20150528_Copyright_Seal_Doors_0012.jpg 미국 저작권 협회




이후 저작권법은 수차례 개정되었다. 가장 최근인 2014년 Compendium 제3판의 개정과 2018년 음악 현대화법(MMA)과 같은 변화는 저작권법이 단순히 창작물을 보호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Compendium은 등록·기록 절차의 명확화를 통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저작권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공정한 이용을 균형 있게 조율하고자 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응해야 한다는 원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전환기에 서 있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작품의 복제와 재생산의 개념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AI는 기존 창작물을 학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데, 여기서 과연 어디까지가 창작자의 권리 범위이고, AI가 만들어낸 산출물에 대해 누구에게 권리를 부여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율리시스』 출판 당시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해적판 사건이 보여주었듯, 창작자의 동의 없는 무단 이용과 왜곡은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훼손하고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저작권의 보호는 오히려 새로운 위협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창작자를 보호하면서도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균형 잡힌 해법이다.


이미 대중적이 되어버린 창작물을 학습하고 재생산하는 행위를 비판할 수 있을까?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율리시스』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창작물의 자유로운 접근과 활용이 보장되면서도, 그 기반이 되는 창작자들의 권리가 정당하게 존중받는 사회적 합의와 이에 따르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기술은 달라졌지만, 창작과 권리 보호라는 문명사회의 본질적 가치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가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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