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dja》 by André Breton
파리는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 가려고 했던 길이 아닌, 어느 순간 문득 발걸음을 멈춘 그 자리에는 늘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계획은 이 도시 앞에서 자주 무력해지고, 그 자리에 우연이 스며든다.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이 도시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다. 누구를 만나게 될까 하는 기대이다. 이러한 기대는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 만남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녀)가 누구이든, 무엇이 시작될 것만 같은 파리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게 만든다.
파리의 거리에는 그런 만남이 자란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교차점이 있다. 그리고 그 교차점을 지나치는 순간, 도시도, 우리도 더 이상 이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이 《나자(Nadja)》를 만났던 것처럼.
이유나 의미는 찾지 않는다. 오히려 운명 같은 우연 속에서 본질적인 조각들을 발견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다. 계획도 없이, 지도나 목적지도 없이, 파리의 거리를 떠돌며 스쳐가는 상점의 간판, 거리의 이정표, 지나가는 이들의 눈빛에 자신을 맡기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예기치 못한 만남의 마법이 이루어진다.
지난 10월 4일, 아주 무료하고 몹시 침울한 그런 오후의 끝자락, 나는 라파예트(rue Lafayette) 거리 있었다. 휴머니티(L’Humanité) 서점의 진열창 앞에 잠시 멈춰 선 뒤, 트로츠키(Trotsky)의 최신 작품을 하나 샀다. 그리고 특별한 목적 없이 오페라 방향으로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사무실과 작업장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건물 위아래로 창문이 닫히고, 인도 위에서는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어쩐지 인파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옷차림, 걸음걸이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중략)
이름을 잊었거나 몰랐던 사거리의 한 교회 앞을 막 지나치고 있었다. 그 순간, 대략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녀를 발견했다. 부유해 보이지 않는 옷차림의 젊은 여자. 어쩌면 나를 이미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다른 행인들과는 달리 고개를 똑바로 들고 걷고 있었다. 너무나도 가냘파서 발끝이 겨우 땅에 닿는 듯했고,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아주 엷은 미소가 얼굴 위를 스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상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마치 눈부터 시작해 놓고는 다 마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금발인 그녀에게 눈가의 검은 아이라인은 유난히도 도드라져 보였다. 눈두덩이 전체가 아니라, 오직 아랫눈꺼풀만을 섬세하게 그려낸 그 음영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런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주저 없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 최악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수수께끼 같은 표정으로,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 앙드레 브르통의 《나자》
브르통이 나자를 만난 장소도 계획 없이 걷던 길 위에서였다.
그날의 파리는 여느 때와 같이 흐릿하고 무표정했다. 회색빛 하늘 아래, 거리에는 익숙한 일상이 조용히 마무리되고 있었다. 브르통도 언제나처럼 흐름 속에 조용히 섞여 들어갔다.
그는 목적지도, 계획도 없는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 걷고 있다기보다, 어쩌면 도시가 그를 어디론가 이끌고 있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페라 방향으로 이어진 무심한 발걸음이 끝에 그녀를 발견했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
그녀를 만난 후 파리는 더 이상 예전의 파리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거리들은 갑자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건물의 그림자, 금속 우편함, 골동품점 창에 먼지, 그리고 그 너머 오래된 인형의 눈동자까지도 모두 은밀한 신호처럼 다가왔다.
카페테라스에 함께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자신을 나자라고 소개했다.
“나자. 러시아어로 ‘희망’이라는 단어의 시작이에요. 하지만 그저 시작일 뿐이에요.”
브르통은 이 강렬하고도 불완전한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마치 과거의 조각을 흘리듯 이야기했고, 자신을 연기하듯 때로는 감추고 때로는 드러냈다. 그는 마침내 적당한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당신은 누구죠?"
나는... 떠도는 영혼이에요.
그녀의 대답은 명확하지 않았다. 모든 설명을 뒤로 미루는 대답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브르통을 더 깊은 곳으로 끌고 내려갈 거라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알고 있었고, 또 그 제안을 적극 받아들였다. 모든 것은 우연이었고, 동시에 피할 수 없는 필연이었기에.
그렇게 변해버린 파리는 더 이상 익숙하지 않았다. 그녀와의 만남으로 파리는 풍경이 아닌 감정의 층위로 변모해 버렸기 때문이다. 우연이 질서를 대신하는 도시가, 침묵 속에서 속삭임이 피어나는 무대가 되어 있었다.
파리는 이제 더 이상 걸어서 도달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저 몇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열리는 공간이자, 짧은 기억이 사무친 도시가 되었다.
파리를 지도 위의 이름들로 기억하지 않는다. 이름 모를 골목에서 느껴진 낯선 감정, 우연히 마주친 이름 없는 이의 웃음, 도시의 공기, 오래된 골목에서 느껴지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 그리고 그 속의 수없이 많이 널려있는 우연들로 파리를 추억한다.
이런 우연은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
누구나 그런 순간 한 번쯤은 마주친다. 파리는 그런 곳이다. 조용히 손을 내밀고, 준비되지 않은 만남이 기다리고, 삶의 궤도를 바꾸는 순간을 선물하는 곳. 어쩌면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파리가 품고 있는 진짜 우연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파리는 지도에는 표시할 수 없는, 기억으로만 다시 찾을 수 있는 도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