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Petite Bijou》 by Patrick Modiano
도시를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건물의 윤곽과 거리의 구조로 도시를 그려내고, 또 다른 사람은 향기나 소리, 낯선 이의 호의로 그곳을 회상한다. 하지만 가장 오래 남는 도시는 감정으로 기억된다.
파트릭 모디아노(Patrick Modiano)의 《작은 보석(La Petite Bijou)》 속 파리는 기억과 상실, 감정의 흔들림이 스며든 공간으로 존재한다. 주인공 테레즈가 걷는 거리, 타인의 얼굴을 흘깃 바라보는 순간, 흐린 오후의 지하철 플랫폼과 낯선 여인의 뒷모습, 이 모든 장면은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녀의 기억 속 어딘가에서 오래전에 스쳐간 감정의 단편들에 가깝다.
테레즈는 자주 길을 잃는다. 하지만 그녀의 방황이 위태롭게 보이지 않는다. 잊힌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감정의 여정, 그리고 오래전 자신을 스쳐간 누군가의 목소리를 더듬는 과정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때문이다.
그녀는 도시의 중심이 아닌 외곽에서, 빛나는 거리 대신 침묵하는 골목에 서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여정이 단단해 보이는 이유는 그 속에서, 파리를 조금씩 자신의 감정으로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언제나
완성되지 않은
풍경 위에 남는다.
그리고 때로, 그 풍경은 이름 없는 거리의 형태를 하고 있다. 명확한 지명은 지워지고, 남아 있는 건 단지 감정의 껍질이 떨어진 기억들 뿐이다.
소설 속에서 그녀가 지나치는 거리들은 우리가 아는 파리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우아한 파사드도, 역사적 기념물도 없다. 대신 말없이 감정을 끌어안는 벽들, 그늘이 오래 머무는 창문, 그리고 묻어둔 기억들이 다시 피어오르는 골목뿐이다.
그녀가 찾는 곳은 어머니와 했던 기억 속 장소지만, 그 기억조차도 분명하지 않다. 그곳에 정말 함께 있었는지도 흐릿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모호함이 오히려 감정을 더 짙게 만든다. 확신할 수 없기에 잊을 수 없고, 모호하기에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 감정이다.
이제 아무도 나를 ‘작은 보석(La Petite Bijou)’이라고 부르지 않게 된 지도 열두 해가 지났다. 나는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샤틀레 역에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복도를 따라 움직이는 무빙워크 위에서, 나는 인파들과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 한 여성이 노란색 코트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색깔이 내 시선을 끌었고, 나는 무빙워크 위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샤토 드 방상(Château-de-Vincennes) 방향이라는 표지판이 붙은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우리는 계단 한가운데에서 사람들 틈에 섞여 개찰구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바로 옆에 서 있었고,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어머니의 얼굴과 너무나 닮아서 그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내가 가지고 있는 어머니의 몇 안 되는 사진 중 하나가 떠올랐다. 그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은, 마치 밤의 어둠 속에서 조명을 받아 떠오른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늘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꿈속에서는 늘 경찰서 형사나 영안실 직원 같은 누군가가 내게 그 사진을 내미는 장면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진 속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언제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침묵만 지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승강장 한편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차를 기다리며 플랫폼 가장자리에 몰려 있었지만, 그녀는 혼자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벤치 옆에는 빈자리가 없었고, 나는 자동판매기에 몸을 기대고 멀리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코트는 한때는 세련되었을 것이다. 선명한 노란색은 한때 활기찬 인상을 주었을 테지만, 이제는 빛이 바래 거의 회색에 가까워 보였다. 주변의 어떤 것도 신경 쓰고 있지 않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나로 하여금 그녀가 마지막 열차가 올 때까지, 저 벤치에 그대로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그녀 옆모습은 정말로 어머니와 닮아 있었다. 살짝 들린 특유의 코, 맑고 연한 눈동자, 넓은 이마까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머리카락은 더 짧아졌지만, 어머니의 머리가 정말 금발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가에는 쓴웃음 같은 주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바로 나의 어머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 《작은 보석(La Petite Bijou)》
그녀가 어머니를 닮은 여인을 뒤따라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그 여정은 누군가를 추적한다기보다 내면의 흔들림을 따라 무언가에 다가가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그 여인을 처음 본 순간, 길을 잃었다.
그녀는 자신 속에 묻어두었던 과거와 감정을 깨우고, 도시의 거리 위에 펼쳐놓았다. 걸음은 분명 느리고, 때로 방향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느릿한 걸음 속에서 감정의 굴곡이 어떻게 공간 위에 옮겨지는지, 그리고 도시의 돌바닥과 아파트 벽, 버스정류장의 유리창 위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 또렷하게 보여준다.
도시에서는 길을 걷는 행위가
자신을 되짚는 일이 된다.
과거를 되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잃어버린 자신의 일부를 되찾고자 하는 저항, 그렇게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어쩌면 순례길 같은 걸음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도시는 늘 길을 제시한다. 네모난 지도 위에 질서 정연한 선들이 있고, 이정표가 있고, 목적지가 있다. 하지만 파리에는 그런 질서 정연함이 없다. 도시는 감정의 방향을 따르는 비정형의 공간이고 길을 잃지 않고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장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길에는 답도 없고, 설명도 없다. 끝이 보이는 명쾌한 지점은 더더욱 없다.
그런 면에서 순례길과는 다르다. 파리는 어디론가 움직이는 순간보다 멈칫하는 순간을 기억하기를 원한다. 말끝의 떨림에 귀 기울이고 말해지지 않은 표정 하나에 집중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파리는 한 사람의 감정이 스쳐간 뒤에야 비로소 제 형태를 드러내기를 기다린다.
가야 할 곳이 없어도 걷고, 떠오르는 얼굴 하나 때문에 괜히 몇 정거장을 걸어왔던 날들, 그런 감정의 기억은 늘 길을 잃었을 때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