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Spleen de Paris》 by C. Baudelaire
도시를 걷는다는 건, 그냥 길 위에 있는 사물들을 지나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걷는 일, 특히 파리를 걷는 일은 내면의 가장 깊은 감정을 끄집어내는 고요하고 치열한 순간이었다.
샤를 보들레르는 도시를 걷는 산책자(flâneur)였다. 목적 없는 방황이 아니라, 관찰하고 느끼고, 무너지는 자신을 수집해 새롭게 맞추는 시간이었다. 그는 도시가 흘려버린 파편들을 하나하나 줍고, 응시하고, 또 시로 쌓아 올렸다.
그는 거리의 황혼 속에서 한 문장을 붙잡기 위해 걸었고, 그의 문장은 언제나 감정의 잔향을 입고 만들어졌다. 도시는 그에게 뮤즈였고, 동시에 상처 입히는 칼날이기도 했다. 군중 속에서 고독함, 외면받는 이의 자상한 미소, 나뉘어진 시선을 그는 언제나 멀리서 지켜보면서 도시를 사랑했고, 꼬 도시를 싫어했다.
그에게 파리는 정말 우울했을까?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이라는 제목에서부터 풍겨지는 분위기는 파리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파리의 우울은 도시가 갖고 있는 깊은 주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되면서 마주하게 되는 정체 모를 피로와 무력감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우울에는 황홀한 관조의 순간들이 함께한다. 차가운 벽, 뜨겁게 달궈진 노란 가스등, 인파 속 얼굴들, 그리고 그 속의 서로 다른 시선에서 그는 우울함을 만들어 냈다.
보들레르가 바라보았던 파리는 거리 한복판에서 갑자기 시간의 덫에 걸리고, 지나가는 여인의 발소리 하나가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내고, 한 장의 그림자만으로 도시 전체가 무너질 듯 무겁게 가라앉기도 한다. 오감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파리 지도로는 찾을 수 없다. 오직 감정의 나침반으로만 찾아갈 수 있었다.
파리의 거리는 수많은 익명의 얼굴들 사이에서 보들레르 자신의 고독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바삐 움직였고, 상점 유리창 너머의 손님들은 웃고 떠들었다. 거리의 뮤지션은 익숙한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활기로부터 한 걸음 비껴나 있다. 이 모든 풍경을 바라보되,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군중 속에 잠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재능이 아니다.
군중을 즐기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다.
도시의 사람들은 그 자체로 그에게는 하나의 서사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바라보면서 보이지 않는 슬픔, 가려진 피로, 사라져 버린 그림자들을 발견해 낼 수는 있었다. 수많은 발걸음 소리 사이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사람들, 때때로 슬프고, 때때로 관조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 속에 자신만의 시선으로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보들레르는 저녁의 빛이 천천히 가라앉는 거리 한켠, 사랑하는 이와 함께 새로 생긴 카페 테라스에 앉아 도시의 화려함이 가식처럼 느껴질 때쯤, 보들레르의 시선은 길 건너편에 한 남자에게 멈추었다. 허름한 옷차림, 한 손엔 어린아이, 다른 팔엔 더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카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 사람의 눈동자가 창 안을 응시했다.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옆의 아버지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 앞에 앉아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입을 열었다.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저 인간들이 견딜 수 없군요. 카페 주인한테 저들을 쫓아내라고 말 좀 해줄래요?”
그는 이를 '가난한 이의 눈(Les Yeux des pauvres)'이라고 불렀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도시는 둘로 갈라졌다. 함께 있지만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주한 시선은 같은 곳을 바라보았지만, 그 시선은 어긋나 있었던 것이다.
파리를 다녀간 사람들은 파리를 더 사랑하게 되거나 혹은 증오할 만큼 싫어하게 된다. 유리창 너머의 파리는 안달날만큼 향기롭지만, 사람들과 섞이게 되는 순간 악취가 진동한다. 누군가에게는 언제나 반짝이는 장소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주름지고 오래된 도시일 뿐이다.
들여다볼수록 모순적이고 위태로워 보여지는 곳, 그렇기 때문에 더 인간적이고,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랑에 빠지게 되는 유일한 대상이 파리라는 우울한 도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