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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끝없이 지워지는 도시

《Le Piéton de Paris》 by Léon-Paul Fargue

by 프렌치 북스토어

예전에 누가 내게 사진으로 볼 수 있는데, 여행을 왜 가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사진만 보고
사랑에 빠질 수 없으니까



파리를 찍은 수많은 사진들이 있지만, 파리는 사진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냄새와 소리, 감정과 기억, 숨결과 감각,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사람의 걸음걸이로 완성되는 살아 있는 풍경이 만들어내는 장소이다.


이 도시를 향한 사랑은 여행자만의 몫은 아니다. 레온-폴 파르그(Léon-Paul Fargue)에게도 파리는 사랑이었다. 매일 함께하는 산책 속에서 천천히 깊어지고, 비 오는 날 갑자기 마음을 건드리는 낯선 감촉처럼 다가오는 그런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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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긴 에세이 《파리의 보행자(Le Piéton de Paris)》는 한 시인이 도시와 맺은 가장 내밀한 감정의 기록이다. 철길 아래의 그림자, 이름 없는 거리, 젖은 포장도로의 울림 속에 숨어 있는 파리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애틋하기만 하다.


도시를 걷는다는 행위는 한 몸이 되어가는 일이다. 도시의 심장 소리를 듣고, 도시의 내면을 껴안으려는 시도이다. 파르그는 이렇게 도시를 걸으면서 도시의 일부가 되어갔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랑을 발견했다.


그가 사랑한 파리는 늘 발 밑에서 시작되었다. 익숙한 길의 보도블록, 철길 옆의 기름 냄새, 오래된 벽돌 틈에서 자라난 이름 모를 풀들처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길 위에서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


자주 걸었던 마젠타 대로(le boulevard Magenta), 라 샤펠(la Chapelle), 벨빌(Belleville) 언덕, 그리고 북역과 동역을 잇는 그늘진 골목길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가장 빛나는 장소였다.


파르그는 이 거리를 걷는 동안 도시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도시와 함께 숨 쉬었고, 멈추고, 침묵을 들었다. 이런 흐릿한 풍경에서 더 많은 사연을 찾아냈고, 이름 없는 길모퉁이에서 더 선명한 감정이 피어났다. 비가 그친 후 젖은 보도 위로 미끄러지듯 반사되는 빛, 카페 창문 너머로 스며 나오는 바흐의 선율, 가로등 아래에 웅크린 이의 옷깃, 그가 사랑한 파리의 아름다움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는 파리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비밀은 걸어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가 걸어간 길은 구불구불했고, 목적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파리는 처음 만난 연인처럼 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파리, 점점 더 희미해지는 기억의 형태로나마 겨우 이어지고 있는 파리, 혹은 마음을 찢는 듯한 소식으로만 도달하는 파리 — 아주 소중했던 친구의 죽음, 한때 찬란했던 가문의 몰락, 예전에는 고상한 사교 모임이 열리던 어느 집의 철거 — 속으로 떠난 감성적이고도 회화적인 여정의 끝에 와 있다.

루 드 라 페 거리(la rue de la Paix), 카페 드 파리(le Café de Paris), 롱샹 경마장(l’hippodrome de Longchamp), 바렌 거리(la rue de Varenne)의 호텔들, 대사관들,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la rue du Faubourg-Saint-Honoré)의 사교 클럽들이 30년 넘게 한 시대의 중심 축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몇 해 전, 파리를 기리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나는 대략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전쟁이 난다면 적국의 비행기들은 파리에서 풍겨 나오는 역사와 우아함, 사랑의 속삭임에 사로잡혀 제 갈 길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고, 신의 섭리 같은 어떤 존재, 거부할 수 없는 마력 같은 것이 그들에게 되돌아가라 명령할 것이다. 이 세상의 지형 속에서 이 마법과 향기로 가득한 식물이 뿌리째 뽑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 레온-폴 파르그의 《파리의 보행자》




지금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파르그에게 파리는 언제나 사라져 가는 것들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그는 늘 눈부신 미래보다 퇴색되어 가는 과거의 잔향을 더 오래 붙잡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퍼했다. 오래된 친구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한 때 유명했던 가문이 몰락하고, 저명한 인사들의 사교 모임이 열리던 어느 집이 철거되는 모습을 그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매일 조금씩 지워지는 장면들 속에서 도시가 가진 우아함을 더 선명하게 떠올리려 애썼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이층 창틀, 문간에 놓인 오래된 우유병, 더 이상 멈추지 않는 전차의 선로는 그가 품은 도시의 잔상들이었다.


그는 파리를 기억을 되살려내는 장소로 만들었다. 실제로 그 기억 속에 도시가 지나온 시간과 파르그 자신의 삶과 감정이 겹겹이 스며 있었다. 하지만 기억들을 박물관의 전시품처럼 전시되고 보존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늘 바스러지고, 날아가고, 흐릿해져 갔다. 그래서 파리라는 도시와 그곳에서 함께한 기억들을 더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시간은 파리를 재단하지 않는다. 함께 낡고, 부서지고, 살아내고, 또 새롭게 지어진다. 그는 변화 속에서 소멸하는 것들의 고요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사랑한 것은 파리의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파리가 끝없이 사라지는 그 과정이었다."



그의 작품은 그렇게 단순한 도시 산책기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연서(戀書)가 되었다. 그 편지를 읽고, 한 번 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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