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 장소를 소진시키려는 시도》 by 조르주 페렉
우리는 종종 파리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한다.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몽마르트르 언덕, 세느 강의 다리들... 그리고 인스타에 쉴 틈 없이 올라오는 이미지들은 파리를 무슨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1974년 가을,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은 파리 6구의 생-슐피스(Saint-Sulpice) 광장 한복판에 앉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파리를 집요하게 기록했다. 그는 누군가의 찻잔 옆에 놓인 설탕 봉지, 길가에 버려진 신문 쪼가리, 의자 위에서 고양이처럼 웅크린 사람의 뒷모습 같이 아무 일도 아닌 순간들에 집중했다.
《파리의 한 장소를 소진시키려는 시도(Tentative d’épuisement d’un lieu parisien)》라고 이름 붙인 그의 도전은 10월의 어느 날 시작되었다. 페렉은 광장 옆에 있는 카페에 앉아 있었고, 그의 테이블 위에는 공책, 펜, 카페 크렘 한 잔이 전부였다.
가장 사소하고 반복적인 일들 뿐이었다. 아이들은 광장 가장자리의 벤치를 뛰어다녔고, 유모차는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우체부는 종이 가방을 들고 카페 문을 밀고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왔다. 성당 앞에는 사진을 찍는 관광객 무리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흩어져 어딘가로 이동했다. 96번 버스가 광정을 시간에 맞춰 그의 앞을 지나갔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버스는 다시 그의 앞을 지나갔다. 그가 광장을 바라보는 동안 버스는 몇 번이고 지나갔고, 또 지나갔다.
광장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광장에는 햇살이 내려앉았다가 천천히 기울고, 조용히 사라졌다가 다시 드리우기를 반복했다. 빛은 사물의 윤곽을 따라 흘렀고, 나무 그늘 아래 벤치의 그림자는 몇 분마다 조금씩 위치를 바꾸었다.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름은 없었다. 남자, 여자, 노인, 아이, 경찰, 학생, 노점상 같은 단어들로만 부를 수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왜 그 옷을 입었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어떻게 걸었는지, 어떤 간격으로 지나갔는지, 몇 초간 멈춰 서 있었는지만을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장면을 그곳을 지나가는 누구에게나 처음 맞닥뜨리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그의 텍스트는 낯설지 않다.
그가 붙잡는 것은 도시의 얼굴이 아니라 도시의 움직임이었다. 움직임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어디선가 자전거가 나타나고 사라졌다. 개 한 마리가 주인과 산책을 했고, 누군가는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고 다시 천천히 멀어져 갔다.
도시는 일정한 속도로 흐르지 않았다. 멈추고, 기다리고, 다시 시작하고, 돌연히 무언가를 지워버린 듯 뚝 끊어져 있었다. 똑같이 1초에 맞춰서 공평하게 흐르지 않았다. 아침에는 사람들이 쏟아지고, 점심 무렵에는 모든 게 늘어졌다. 오후가 되면 그림자가 길어지듯 시간이 흘렀다. 바쁜 도시는 서둘러 흘렀고, 한가로운 파리의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도시가 흘라가는 리듬은 어떠한 일련의 사건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빈칸으로 만들어졌다. 두 버스 사이, 두 커피잔 사이, 두 시선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따라 도시의 분위기가 결정되었다.
그렇게 도시의 분위기는 반복되는 장면, 시간, 장소를 바라보면서 결정되었다. 이렇게 지루하기에 짝이 없는 순간들이 어떤 리듬으로 도시가 흘러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날씨가 변하는 것,
사람들과 자동차들과
구름이 지나가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바로 그것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파리를 기록하는 것으로 페렉은 사람들에게는 중요하게 여겨지는 무언가가 어쩌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렇게 길 위해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종종 삶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 혹은 중요한 시기, 눈에 띄는 변화, 어쩌면 기억에 남을 중요한 장면들이 인생을 변화시켰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진짜 삶은 대부분 기억되지 않을 만큼 평범하고 아무 일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간다. 그런 공백들이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하루는 과연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묻는다. 그의 답은 간단하고 또 명료하다. 96번 버스의 반복, 정류장에 서 있던 빨간 모자의 아이, 한 번도 말 걸지 못한 노인의 고요한 뒷모습,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하루, 동시에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오늘 우리 하루를 가득 채우고 있다.
생-슐피스(Saint-Sulpice) 광장은 파리 6구에 위치한 광장으로, 생-슐피스(Saint-Sulpice) 성당 옆에 위치하고 있다.
생-슐피스 성당(Église Saint-Sulpice)은 파리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으로,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건축되었다. 성당의 정면은 독특한 두 개의 불균형한 탑과 고전주의 양식의 석조 기둥이 특징이며, 내부에는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광장 중앙에는 생-슐피스 분수(Fontaine Saint-Sulpice)가 있는데, 19세기 중반 건축가 루이 비스콘티(Louis Visconti)에 의해 설계되었고, 프랑스의 유명한 17세기 설교가 네 명의 조각상이 둘러싸고 있다.
광장은 주변에는 자동차이 비교적 적고, 중심에는 벤치와 나무가 배치되어 있어 현지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카페 드 라 매리(Café de la Mairie)와 같은 소규모 카페와 서점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