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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라는 무대에서 바라본
오래된 도시

《Croquis parisiens》 by J.-K. Huysmans

by 프렌치 북스토어

파리는 항상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정작 손에 잡히는 순간은 드물다. 오스만 대로를 따라 서 있는 석조, 세느강 위를 떠다니는 노을빛이 비추지만, 사람들과 뒤섞여 걷다 보면 오래된 도시에 서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일상을 걷고 있는 걸까?


매일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내 앞을 지나쳐 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낯설다. 위스망스(Joris-Karl Huysmans)는 바로 이 언뜻 스쳐가는 도시의 얼굴들을 집요하게, 그러나 기이할 정도로 섬세하게 붙잡아내고 있다.


《파리를 크로키하다(Croquis parisiens)》, 제목 그대로, 파리를 스케치하듯 그려낸 작품에서 그는 건축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고, 풍경도 아닌, 사람들의 걸음, 간판의 각도, 빛바랜 담벼락과 오후의 냄새를 담았다.


그의 시선은 마치 오래된 연필로 그린 드로잉 선 같다. 흐릿하지만 정확하고, 무심한 듯하지만 따듯하다. 그의 관찰 속에는 일상의 무게가 있고, 낯선 낭만이 있고, 무엇보다 도시를 살아가는 존재들의 섬세한 감정들이 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파리의 그늘과 속살이, 그의 글 안에서는 조용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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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파리의 아침은 조용히 스며든다. 누구의 발자국도 나지 않은 보도블록 위로, 희뿌연 안개가 가볍게 내려앉는다. 거리는 아직 잠들어 있고, 가게 셔터에는 새벽의 냉기가 고여 있다.


위스망스의 눈은 이러한 침묵 속에서도 움직이는 생명을 포착해 낸다. 어둠과 빛의 경계, 사람과 도시가 동시에 깨어나는 그 찰나의 순간들을 잡아 냈다.


그의 글에서는 카페의 유리창 너머, 첫 번째 커피잔을 닦는 주인의 손길이 보인다. 창문이 김으로 뿌예질 무렵, 빵집 앞에는 고소한 냄새가 공기 속에 퍼지고, 하루를 여는 가장 단순한 의식이 시작된다. 신문 배달부가 골목을 지나가고, 우체국 앞에는 이미 모자를 눌러쓴 남자들이 줄을 서 있다. 기다림 속에서도 부스럭거리는 조급함, 하지만 어디에도 서두르지 않는 도시 특유의 완만함이 느껴진다.


그가 남긴 파리의 아침은 흔하디 흔한 낭만이라는 웅덩이에 기대지 않는다. 젖은 돌길의 미끄러움, 철제 창틀에 맺힌 이슬, 갓 문을 연 가게 간판의 매끈함에 집중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려낸다. 부풀어진 외투 속에 몸을 숨긴 행인,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장바구니를 든 여인, 그리고 아침 햇살을 외면하듯 모자를 푹 눌러쓴 중년의 사내까지 그는 시선에 담겨 있다.


그 어떤 극적인 사건도 없는 글, 바로 이렇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아침이 우리가 살고 있는 파리의 리듬을 만든다. 일상이라는 무대, 본격적인 연극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점검을 하는 사람들, 조용하고 정돈되어 있지만, 동시에 조금은 나른하다.


거리의 끝, 시야에 들어오는 건 늘 사람만은 아니다. 때로는 녹슨 철제 간판 하나, 창틀 사이로 드리운 레이스 커튼,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에 비친 길의 이름을 알려주는 기울어진 문패 한 조각이 도시의 얼굴을 대신한다.


한 오래된 정육점 간판은, 금빛으로 칠해진 소의 형상을 간신히 간직하고 있다. 페인트는 벗겨졌고, 문자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흐릿하다. 위스망스는 그 닳은 표면에서 옛날 주인의 손길과, 전성기의 분주한 소리들을 상상한다. 그에게 파리의 간판들은 그곳에서 어떤 시간을 품었다는 공간의 초상이다.




이 들판을 따라 오른편으로는 실핏줄처럼 가느다란 강이 흐르고, 그 옆으로 난 길은 다리 밑 아치를 지나 도시의 성벽 속 작은 문으로 향한다. 곳곳엔 비교적 비옥한 땅에 채소밭이 푸르게 번성하고 있고, 팔팔한 포플러 나무 여덟 그루가 한 집을 에워싸듯 서 있다. 그 집 벽은 분홍빛 회반죽으로 곱게 덮여, 노랑과 초록빛 잎사귀가 망사처럼 드리워진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지붕 가까이에 이런 글귀가 보인다. “포도주 판매소”.

그 싱그러운 색채의 조화, 물가에 기대 선 정자들을 보면, 공연 무대의 여관 세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머릿속에선 그 안에 있을 법한 장면들이 그려진다. 사기 접시와 주석 주전자가 놓인 호두나무 장식장이 있고, 누군가 조용히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약간 시큼한 지방 포도주를 홀짝이며, 거대한 둥근 식빵을 자르고, 파슬리와 부추가 박힌 오믈렛을 베이컨과 함께 곁들여 먹는 모습이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 그곳에 다가가면, 그렇게 아늑하고 정겨워 보이던 그 선술집은 어느새 도적 소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분홍빛 웃음을 머금던 그 벽은 퇴색했고, 추하게 일그러진 지붕과 휘어진 처마가 낡고 무거운 세월을 들려준다. 벽의 빛은 엽기적인 붉은빛으로 바래 있고, 어느새 이 오두막은 마치 어둠 속에서 사람을 덮치는 무시무시한 여인을 연상시킨다.

거칠게 벗겨진 회반죽 틈새로 검은색 물감으로 새겨진 글자들이 드러난다. 계절의 흐름 속에서 일부만 남은 글씨들은 이렇게 속삭인다. “튀긴 토끼 요리, 맥주와 와인, 포플러 나무의 만남의 장소.”

- 《파리를 크로키하다(Croquis parisiens)》




그리고 창문들. 위스망스의 글에는 종종 그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밖을 향한 것이 아니라, 안을 향해 기울어진 시선이 눈에 들어온다. 한 낮, 햇빛이 반사되는 유리창 속에는 커튼 사이로 식탁이 보이고, 의자가 비스듬히 놓여 있다. 사람은 없지만, 삶이 있다. 어쩌면 그가 가장 예민하게 감지한 것은,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온기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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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도시를 여행하고, 사진을 찍고, 정보를 소비한다. 하지만 오래된 도시는 나와 함께 늙어가는 존재와도 같다. 파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파리의 결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오래된 사람처럼.


빛바랜 벽에 손을 얹고, 복도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채, 사람들의 걸음에서 도시의 맥박에 귀를 기울이지만, 파리는 영원하지 않고, 또 완벽하지도 않다. 오히려 불완전한 것들, 닳은 것들, 사라지는 한낱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운 그 말, 익숙한 일상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경험하려는 시도, 그게 위스망스가 느끼고 싶었던 익숙한 낯섦일지도 모른다.


그런 클리셰 같은 시선을 시기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바라보려 했던 마음의 여유, 자신만의 눈을 고집할 수 있었던 용기, 그리고 도시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었던 그만의 리듬에 질투를 느낀다. 천천히, 조용히, 그리고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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