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Mystères de Paris》 by Eugène Sue
파리를 처음 걷는 이들은 종종 이 도시에 '빛의 도시'라는 이름을 붙인다. 정오의 세느강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오스만 양식의 대로는 정갈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하늘로 솟은 에펠탑은 해가 지고 나면 조명을 밝히고,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는 밤이 되면 투명하게 빛난다. 그 도시 속 찬란함은 어느새 여행자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봉인된다.
하지만 빛이 드리우는 방향만 바라보며 걸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빛은 언제나 어딘가에 그림자를 남긴다는 사실을 잊었던 걸까? 아니면 무시한 걸까? 눈부신 파리, 그 이면에도 보이지 않지만 항상 함께 존재해 온 어두움은 있었다.
유진 수(Eugène Sue)는 이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펜을 들었던 작기이다. 그가 남긴 파리는 가스등이 깜빡이는 한밤중의 파리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뒷골목,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좁은 통로, 표지판 없는 거리, 그곳에서 도시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가 그린 도시는 잠들었다고 믿는 순간에 비로소 깨어났다. 낮의 소음이 가라앉고,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멀어지면, 파리는 서서히 제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파리의 신비(Les Mystères de Paris)》 속의 파리는 그렇게 한밤중에 시작되었다.
유진 수는 이 어두운 거리들을 맨눈으로 걸으며 기록했다. 낮에는 숨어 있던 존재들은 밤이 되어서야 마주할 수 있었다. 불완전한 인간들, 하지만 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진짜 심장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상점의 진열대 뒤에 있지 않고, 기념비에도 새겨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버린 이불 아래에서, 부서진 의자 옆에서, 거리의 틈새에서 발견되고는 했다.
작품 속 파리는 겉과 속이 다른 도시이다. 오늘의 파리도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길게 뻗은 길 안쪽에는 숨겨진 골목들이 있고, 우아한 건축물의 지하에는 어둡고 습기가 가득한 공간이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계단 끝에는 초라하게 방치된 방으로 연결된다. 오직 몸을 숙이고, 냄새를 맡고, 살을 부딪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파리의 속살 같은 풍경이다.
이곳엔 주소가 없다. 누구를 지칭하는 이름도, 그를 구분 짓는 신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누군가의 이야기만 남아 있을 뿐이다. 비 오는 밤, 하수구 근처에서 잠든 소녀, 하룻밤을 팔아 내기 위해 지나가는 행인을 향해 말을 거는 여인, 한 끼 식사를 위해 세 시간을 걷는 노인, 그리고 조용히 누군가의 부상에 붕대를 감아주는 이웃들은 파리라는 거대한 제도 밖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 속에 있다.
이름으로 가득한 도시
아이러니하지만 파리는 이름으로 가득한 도시이다. 거리마다 이름이 있고, 광장에는 기념비에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교차로 한가운데에는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동상이 세워져 있고, 심지어 건물 벽면에는 이곳에 누가 살았는지를 알리는 작은 안내문까지 붙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파리는 달랐다. 이름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사람이 아니라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이 그곳에 있다. 법적 신분을 갖지 못한 여인,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주소지를 말할 수 없는 무명인들은 기록되지도 않고, 기억되지도 않는다.
도시가 무엇을 기억하고, 또 무엇을 지우는가는 철저하게 선택되어진다. 선택되어진 이는 기억되고, 선택되지 못한 이는 영원히 잊힌다.
누구의 선택이었을까?
하지만 한 가지 안도할 수 있는 사실은 도시를 기억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불빛 아래의 풍경을 간직할 것인지, 아니면 그림자 속에서 울려 퍼지는 낮은 숨결까지 끌어안을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작품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도시에 말 없는 삶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도시를 걷는 일은 결국, 보지 못했던 것들에 눈길을 주는 일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골목에 앉아 누군가의 시간을 상상하는 일은, 추억이 아니라 연민이고, 회상이 아니라 응시이다.
오늘도 파리는 빛을 낸다. 사람들은 본능처럼 그 빛으로 몰려들고, 또 어딘가에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진을 찍고, 눈으로, 입으로, 귀로, 손길로 기억을 간직하려 애를 쓰지만, 그 모든 것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는 여전히 말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