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Ventre de Paris》 by Émile Zola
사람들이 어떤 도시와 마주할 때, 그곳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나 예술 작품, 혹은 살아 숨 쉬는 역사로 접근한다. 파리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매력은 실제로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든다. 오래된 거리, 루브르 박물관, 세느강의 물결, 에펠탑,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까지 파리에 젖어들 수 있는 수많은 이유들이 존재한다.
모두가 그렇듯 우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도시의 속살로 관심이 옮겨 간다. 고풍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겉모습 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달아오르기 때문이다.
파리는 누군가의 사랑을 거부한 적이 없다. 물론 그 속살을 드러내는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에밀 졸라는 파리를 사랑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가 파리를, 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속살을 파헤친 흔적을 보면 애증이 묻어난다.
특히 《파리의 배(Le Ventre de Paris)》에서 그는 도시 안의 풍경을 보고, "이것이 파리다. 냄새나고, 뜨겁고, 뒤섞이고, 소화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도시의 가장 깊숙한 곳, 인간 군상의 욕망과 냄새와 소음이 교차하는 레 알(Les Halles) 시장에 집중했다.
고요가 감도는 한밤중, 인적 드문 거리의 텅 빈 새벽. 파리로 향하는 시장 상인들의 짐수레가 덜컹이는 바퀴 소리를 내면서 언덕을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수레바퀴의 규칙적인 소리는 집들의 벽면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길 양쪽, 희미한 느릅나무들 너머로 늘어선 집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뇌이 다리(pont de Neuilly) 위에서는 양배추를 실은 수레 한 대와 완두콩을 실은 수레 한 대가 낭테르(Nanterre)에서 내려오는 순무와 당근 수레 여덟 대와 합류했다. 말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꾸준하고도 느린 걸음으로 오르막길을 소리 없이 오르고 있었다. 야심한 밤, 그들의 발걸음은 더욱 느려 보였다.
채소 더미 위에 엎드려 누운 마부들은, 회색과 검은 줄무늬의 외투로 몸을 감싸고, 손목에 고삐를 감은 채, 그대로 선잠에 빠져 있었다. 어둠을 뚫고 가스등 하나가 유일하게 빛을 발아고 있었다. 반짝이는 신발의 징, 푸른 작업복의 소매, 챙이 눌린 모자가 그 빛 속에서 잠깐 드러났다. 그 뒤를 커다란 붉은 당근 다발, 하얀 순무들, 그리고 양배추와 완두콩의 푸르름이 밤 속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인근의 다른 도로 위에서 굴러가는 수레들이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그건 바로 또 다른 행렬이 어둠과 깊은 잠에 빠진 도시를 가로지르며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새벽 두 시, 파리라는 검은 도시는 지금, 그 먹을거리의 진동 소리에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 에밀 졸라, 《파리의 배(Le Ventre de Paris)》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도시가 깨어나기 전 가장 먼저 소리 내기 시작하는 곳이 바로 시장이었다. 작품의 시작에서 보여주는 울퉁불퉁한 파리의 길 위를 굴러가는 수레 소리, 그 수레가 향하는 곳이 바로 레 알이었다. 시장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는 것은 도시가 곧 살아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깨어난 레 알 시장의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달큰한 상추와 흰 순무, 붉은 고기 덩어리들과 선홍빛 돼지비계, 반짝이는 생선 비늘과 그 옆에서 썩어가는 껍질들은 생명과 부패가 같은 자리에서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풍기기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주목할만한 부분은 그곳에서 풍겨 나는 냄새다. 아침을 여는 축축한 돌 냄새, 당근의 흙냄새, 쿰쿰한 치즈 냄새, 채소 더미에서 풍겨오는 달큰한 향기, 물비린내와 우유의 구수한 향기, 고기의 무겁고 축축한 피 내새가 섞여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것 같은 공간을 만들어 냈다.
이 모든 것을 부스고, 소화시키고, 또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내는 곳이 레 알, 시장이었다.
그리고 냄새와 함께 시장을 가득 채운 것은 소음이었다. 살아있는 도시의 울림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할 만큼, 이곳은 한순간도 고요하지 않았다. 상인들의 외침, 손님들의 흥정, 바구니와 수레가 땅을 긁는 소리, 그리고 육류를 자르는 칼의 날카로운 파열음까지 모든 것이 마치 짜여진 악보대로 연주되는 것처럼 뒤섞여 각자의 리듬에 맞춰 울려댔다.
그 속에서 도시의 가장 솔직하고 대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사는지, 어떤 냄새가 나는지. 사람들은 웃고 있는지, 아니면 화를 내는지, 속고 속이고 어쩌면 속지 않으려고 흥정하는 이들이 경계하는 모습들을 나는 도시의 민낯이라고 부른다.
레 알에는 서로 다른 민낯이 공존했다. 부드러운 치즈를 조심스럽게 고르는 귀족 부인의 손끝과 밤새 무거운 짐을 끌고 와 땀으로 얼룩진 노동자의 어깨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고기 앞에서는 계급이 사라진 듯 보였고, 흥정하는 목소리의 높낮이, 손에 쥔 지폐의 빛깔, 냄새에 익숙한 얼굴과 움찔하는 얼굴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했다. 시장은 모든 것을 섞는 듯하면서도, 냉정하게 구분 짓고 있었다.
졸라는 이런 파리를 낭만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시가 가진 본능의 리듬을 포착하는데 집중했다. 그는 이 속에서 도시가 가장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숨기지 않는 곳, 꾸미지 않는 목소리, 본능을 드러내는 리듬은 도시의 폐부이자 거울이었다. 도시가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숨기며, 또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를 시장은 누구보다 정직하게 보여주었다.
레 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철과 유리로 된 파빌리옹도, 생선과 치즈와 땀과 분노가 뒤엉킨 그 활기도 사라졌다. 대신 말끔한 쇼핑몰과 유리 지붕 아래에서 도시의 풍경은 훨씬 조용하고 정돈된 얼굴로 변했다. 하지만 파리는 여전히 그 복부 어딘가에서, 조용히 소화하고,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다.
레 알(les halles) 시장은 중세부터 1960년대 말까지 파리 1구에 위치해 있던 신선 식품 도매시장이었다. 19세기 중엽, 오스만 남작의 도시개조 계획에 따라 시장은 철과 유리로 된 거대한 파빌리옹 구조물로 재편되었고, 한때는 근대적 도시의 상징으로 불리고 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교통 혼잡과 위생 문제로 인해 이 거대한 시장은 점차 시대에 뒤처진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결국 1969년, 파리 중심에 자리한 이 시장은 철거되었고, 식품 유통 기능은 외곽의 륑지(Rungis) 시장으로 이전되었다.
레 알 시장이 철거된 자리는 포럼 데 알(Forum des Halles)이라는 지하 쇼핑몰과 문화 공간으로 대체되었고, 현대식의 거대한 유리 지붕이 있는 라 카노페(La Canopée)로 재탄생했다. 오늘날 이곳은 파리에서 가장 큰 환승역이 있는 교통의 중심이자, 소비와 문화가 뒤섞인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