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au XXe siècle》 by Jules Verne
예술이 없는 파리를 상상할 수 있을까? 시도, 음악도, 그림도 사라진 파리는 불편한 껍데기 같다.
쥘 베른(Jules Verne)의 《20세기 파리(Paris au XXe siècle)》는 익숙한 도시의 풍경을 완전히 전복시킨다. 낭만과 예술, 감성이 흐르던 도시가 기술과 효율만이 작동하는 거대한 공장처럼 바뀐 것이다. 베른이 상상한 20세기의 파리는 문학, 음악, 회화, 시가 철저히 배제된 도시였다.
그가 상상했던 도시에선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 작품은 존재하지만 작품들을 찾는 사람들이 없다. 쓰인 문학 작품은 읽히지 않고, 연주되는 음악을 듣는 이가 사라졌다. 벽에 걸린 그림은 보존되지만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는다. 실용적이지도, 또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100년 전에 쓰인 쥘 베른이 상상한 1960년의 파리는 모든 것이 똑같지만 그 속은 공허하다. 오래된 극장도, 사람들이 열광하던 광장도, 탑도, 거리도, 도서관도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책장을 넘기지 않는다. 극장은 문을 닫았고, 홀에는 쌓여있는 먼지뿐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문학 수업을 받지 않고, 통계와 회계 알고리즘을 공부한다. 미술은 직선과 색상을 계산하는 산업 디자인의 하위 개념으로 축소되었고, 음악은 제품 광고의 배경음으로만 존재한다.
그 속에서 주인공 미셸은 라틴어 시로 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는 사람은 없다. 그 흔한 환호나 감동도 없이 공허한 박수로 수상을 알린다.
아무도 시의 의미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상을 받는 그조차도 자신이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자책한다. 시인이라는 말은 실용적이지 않다는 의미이고, 실용적이지 않기 때문에 곧 불편함으로 간주된다. 불편함은 효율적이지 않고, 효율적이지 않으면 도태되고, 도태된 이는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하는 존재로 낙인찍히게 된다.
예술은 이 세계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쓸모는 것들은 모두 시들어 버렸다. 감정은 측정할 수 없고, 예술은 생산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벅찬 감동은 더 높은 효율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정의 내려졌다.
예술이 사라지면서 도시에서는 사랑도 사라졌다. 순수한 사랑을 좇는 사람들은 시대에 뒤처진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순진하고 바보 같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감정은 비논리적이고, 비생산적이고, 무엇보다도 비효율적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도시의 흐름을 방해하는 노이즈에 불과하다.
주인공 미셸은 그 속에서 오류처럼 존재한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시를 쓰고, 음악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변해버린 파리에서는 이러한 그리움조차 이질적인 코드로 분류된다.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여기고, 불편해하고, 결국은 배제한다. 사회 시스템에 맞지 않는 결함으로 분류되어 병리적 특성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럼에도 미셸은 시를 쓴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 이해받지 못하는 감정,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문장들을 계속 써내려 간다. 그리고 그는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시를 쓴다.
미셸은 차갑게 식어버린 파리에서 유일하게 뜨거운 존재이다. 음악을 그리워하고, 시를 사랑하고, 그림 앞에서 멈춰 설 줄 아는 인물이다. 그가 바라보는 도시는 빛과 여운, 침묵과 떨림으로 가득하다.
결국 그는 다른 이들처럼 기능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불완전한 인간으로 취급되지만, 그만이 아이러니하게도, 웃고, 슬퍼하고, 꿈꾸고, 기억한다. 이 도시의 규율을 어긴 것이 아니라, 도시가 그를 잃어버렸다.
삶이 지워진 도시, 마치 거대한 공장처럼 빠르고, 편하고, 효과적이지 않다고 불평하는 도시에서 호흡하고 걷고 일어나고 일하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고 산다.
파리가 사랑받아 마땅한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
감정을 불러일으켜주기 때문이다.
낯선 도시에 잠시 머물면서 효율적인 동선으로 최대한 많은 관광지를 들린다고, 파리를 여행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치 차가운 도시를 여행하듯 꺼내보지도 않을 사진 몇 장 남기기 위해 빠르게 걷는 것도 추천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헤매고, 돌아가고, 때로는 아무 계획 없이 좁은 골목에 들어서기도 하고, 낯선 벽에 붙은 오래된 포스터 앞에서 멈춰 서는 뜨거움이 필요하다. 한 자리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고, 문 앞에 꽃이 놓인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아무도 찾지 않는 이름 없는 서점에서 책을 사고, 지하철 안에서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에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꺼내는 비효율이 필요한 도시가 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