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Fantôme de l'Opéra》 by Gaston Leroux
장식이 가득한 외벽, 금빛 조각상이 얹힌 지붕, 고전과 상상이 겹쳐진 듯한 건물 외관은 한눈에 봐도 화려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도시 심장부에 세워진, 하나의 커다란 무대 같다. 그리고 그 붉은 휘장을 걷어내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한 극장, 무대 위 조명,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울려 퍼지는 오페라홀 아래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세계가 존재한다. 지하에는 물이 흐르고, 크고 작은 방들이 있고, 미로 같은 복도 끝에는 굳게 닫힌 문들이 존재한다. 마치 도시가 감추고 싶은 모든 것들이 들어있을 것 같은 상상을 자아낸다.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는 처음부터 화려해야 했다. 파리라는 도시가 자신을 문명과 예술의 수도로 선포하던 19세기, 젊은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Charles Garnier)는 도시가 꿈꾸는 환상의 형상을 눈앞에 실현해야 했다.
그는 전통적인 신고전주의에 입각한 균형 잡힌 구조 위에, 극단적으로 장식적인 조각들과 대담한 곡선을 얹었다. 기둥 하나, 난간 하나마다 상상력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고, 금박으로 뒤덮인 파사드는 도시의 웅변처럼 사람들을 압도했다. 그리고 극장 내부에는 천장을 수놓은 천사들과 악사들, 대리석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유려한 곡선, 커다란 샹들리에 아래 붉은 벨벳으로 덮인 좌석들을 배치했다.
하지만 빛나는 장식이 많을수록, 그 그림자 또한 진해진다.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서, 문학은 상상을 뿌리를 내렸다. 화려한 천장의 아래,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공간, 바로 그곳에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는 유령을 만들어 냈다. 《오페라의 유령(Le Fantôme de l’Opéra)》은 극장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건축과 사람, 이야기와 그림자들이 얽힌, 숨기고 싶은 가장 깊은 감정을 한 인물의 울림으로 되살려냈다.
도시의 건물들은 종종 하늘을 향해 있었지만, 오페라 가르니에는 다른 방식으로 권위와 상징을 표현했다. 더 높이 짓기보다 아래로 깊게 내려앉은 공간을 품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극장의 가장 낮은 층, 허락된 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에는 실제로 물이 흐른다. 건축 당시부터 문제가 되었던 지하수의 존재는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적 위험이었지만, 샤를 가르니에는 그 흐름을 막는 대신, 그 물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 극장을 세웠다.
그렇게 탄생한 지하 저수조(le lac souterrain)는 도시의 심장 아래 흐르는 조용한 물이 되었다. 검고 깊은 그 물은 빛을 반사하지 않으며, 벽돌과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침묵의 공간 안에서 도시의 숨결이 낮게 울리는 곳이 되었다.
어두운 수로를 품고 있는 건물 내부 구조는 유령이 태어나는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작품 속에서 에릭은 그 물 위에 작은 보트를 띄우고,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는 인간이자 괴물이었고, 동시에 도시가 감추고 싶은 감정의 잔해였다.
내용과는 별개로 작품은 파리라는 도시의 가면을 벗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면을 응시하게 만든다. 에릭이라는 인물은 실제로 가면을 쓰고 등장하지만, 그보다 더 두껍고 단단한 것은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회적 시선, 편견, 거절이었다.
가면은 때로는 위장이고, 때로는 보호막이 된다. 그리고 때로는 감추고 싶은 모습을 품고 있는 껍질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르니에가 그렇다. 극장의 화려한 장식들, 반짝이는 조명과 붉은 커튼…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을 실현시켜 줄 뿐이다. 그리고 파리도 마찬가지. 정돈된 대로, 우아한 카페,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처럼 도시는 스스로를 연출하고, 그 무대 위에서 삶은 하나의 장면으로 조각된다.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이 5번 박스석(Box No. 5)이다. 아무도 예약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그 공간, 어쩌면 모든 진실이 숨어있는 공간으로, 가장 어둡고, 가장 서늘한 그 빈자리는 아직도 무대 옆에 그림자에 서 있다.
그는 침울한 눈빛으로 황량하고 차가운 길을 바라보았다. 창백하고 죽은 듯한 밤이 펼쳐졌다. 그 무엇도 그의 마음보다 더 차갑고, 더 죽어 있을 수 없었다. 그는 한때 천사를 사랑했고, 이제는 한 여인을 경멸했다.
도시에는 수많은 건축물이 있지만, 모든 건축물들이 기억을 품고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기능만을 수행하다 사라지는 공간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장소는 분명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품은 채 시간과 함께 늙어간다.
극장은 파리가 자신을 꾸며내고, 숨기고, 때로는 고백해 온 무대였다. 화려한 장식과 대리석 계단 너머에는 수많은 감정이 발자국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장소였다. 무대 위의 감동, 사람들의 눈물과 무대 위 배우들의 환희, 누군가의 분노와 무대 뒤 절망이 집약된 곳이다.
파리는 그런 도시다. 수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그리고 그만큼 많은 이들이 증오하는 도시, 화려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민낯을 가리고 있는 장소, 이방인은 사랑을 꿈꾸고 현지인은 침묵을 하는 곳, 그렇게 서로 뒤엉킨 모습이 더 잘 어울리는 도시가 파리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만들어 주는 중심에 오페라 가르니가 있다. 유령을 만들어 낸 곳, 그 모든 감정의 응어리를 가장 아름답게, 그러나 가장 진실하게 간직해 온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