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Passe-muraille》 by Marcel Aymé
사람들은 파리를 사랑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빛나는 노을 아래 흐르는 센느 강, 노트르담 성당의 첨탑, 몽마르트르 언덕 위로 길게 늘어진 붉은 지붕들, 그리고 아침 햇살이 투과된 커튼 너머의 테라스에서 들려오는 에스프레소 잔의 부딪침을 사랑한다. 마치 오래된 엽서처럼, 영원히 아름답고 조용할 것만 같은 파리를 사랑한다.
파리의 조용한 일상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마르셀 에메(Marcel Aymé)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Le Passe-muraille)》라는 짧은 판타지 소설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파리의 풍경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작품 속에서 파리는 완벽하게 정돈된 침묵 속 감옥이다. 그곳에는 소음 대신 규율이 있고, 격렬한 움직임 대신 반복적인 동작이 계속된다. 사랑 대신 묵묵히 정해진 경로를 따라 걷는 무표정한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거리는 벽으로 둘러 쌓여 있다. 거리로 흘러나올 수 있는 문은 많지만 대부분 열리지 않는 문들이다. 창문은 열려 있지만 아무도 창문을 통해 밖을 보거나, 반대로 안을 보지 않는다.
주인공 뒤튀유는 이런 몽마르트르의 한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산다. 화가들이 물감을 흩뿌리던 다락방 같은 몽마르트가 아니라, 지루한 공무원의 방이 있는 언덕이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대로 일을 하고, 정해진 길로 이동하고, 이미 모든 것이 정해져 예측 가능할 정도로 고요한 도시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
그가 사는 파리에는 일탈이란 없다. 우연이나 사고 역시 없다. 지각하는 이 조차 없는 사무실, 같은 리듬으로 닫히는 창문들,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웃들, 같은 시간에 거기로 몰려나오는 사람들, 그리고 같은 곳을 향해 걷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마치 정해진 기능을 수행하는 완벽한 구조물처럼 모든 것이 자신의 자리를 갖고 있다.
도시는 반복을 통해 스스로를 유지한다. 그 반복은 사람들을 편안하게도 만들지만, 또 무기력하게도 만든다. 뒤튀유는 하루 종일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사무실에서 같은 서류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먹고, 같은 질문을 받고, 같은 단어로 대답을 했다. 심지어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잉크병조차 며칠째, 같은 높이로 고여 있었다.
창밖 파리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도시 전체가 정지된 풍경화 같이 생기가 없었다. 너무 익숙해서, 어쩌면 정확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도시는 가장 큰 감옥 같기도 했다.
그 속에서 뒤튀유는 점점 희미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 감정이 필요 없는 대화들, 기억에 남지 않는 시간만 흘려버릴 뿐이다. 이러한 반복은 감각을 마비시킨다. 침묵하게 만들고 기억하지 않게 만든다. 몽마르트르의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 있지만, 뒤튀유는 결코 길을 잃지 않았다. 그가 걷는 길은 이미 수천 번 반복된 궤도 위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일 높은 벽 사이를 지나다녔다. 도시에는 실제로 수많은 벽이 있었다. 그 벽들은 도시가 사람을 분류하고, 구획하고, 침묵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파리는, 그 벽을 너무도 아름답게 세운 도시였다. 관청의 두꺼운 석벽, 아파트 복도의 무표정한 벽지, 감옥의 차가운 회색 콘크리트벽, 심지어 사람들 사이의 침묵마저도 보이지 않는 벽처럼 공간을 나누고 있었다.
벽은 막아서기 위해 존재했고, 무엇보다 구분하기 위해 존재했다. 누구는 안에 있었고, 다른 누구는 밖에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다른 이들은 언제나 닫힌 문 앞에 서 있어야만 했다.
뒤튀유는 이 벽들을 통과하기 전까지, 한 번도 그 경계를 넘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도시가 정해준 선 안에서 살고 있었고, 그 질서 안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파리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파리지엥처럼 보였다.
침묵이야말로, 파리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구분선이었다. 무질서한 외침은 허용되지 않았고, 삶은 각자의 벽 안에서 조용히, 규칙적으로 흘러갔다. 그곳에는 확실한 경계가 있었고, 그 경계는 종종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누군가가 침묵 사이로 말을 하더라도 파리의 벽들은 소리를 흡수했다. 누가 어디에 사는지, 어느 방에서 어떤 말이 오가는지, 벽 넘어에선 들리지 않았다.
이런 벽을 통과한다는 것, 그 능력은 도시의 질서를 묵묵히 비틀어 놓는 행위였다. 도시가 숨겨둔 모든 계급, 법, 규칙, 침묵,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던 거리감까지도 없애버리는 행위였다.
이러한 대단한 일이었음에도, 뒤튀유가 처음 벽을 통과했을 때, 도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파리는 이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벽을 통과한다는 일탈조차, 도시의 무관심 속에 묻혀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뒤튀유는 처음으로 도시 밖의 감각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오래 벽 안에 갇혀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자신의 능력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마흔세 살이 되던 해였다. 어느 날 저녁, 그가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갑자기 정전일 발생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주변을 더듬기 시작했다. 불이 들어오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 그는 3층 복도에 나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현관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기 때문에, 그가 방금 겪은 이상한 사건을 두고 곰곰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나왔던 방식 그대로, 벽을 통과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그가 겪은 이상한 능력은 그의 어떤 욕망과도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다음 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동네 병원으로 가서 자신의 상태를 의사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의사는 갑상선 벽의 나선형 섬유가 굳어지는 희귀한 질환에서 그가 겪는 이상한 현상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의사는 그에게 극심한 과로라고 결론지었고, 1년에 두 알씩 복용할 수 있도록 쌀가루와 센타우로스 호르몬의 혼합물인 트레가 파이레트 분말의 흡수를 처방했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Le Passe-muraille)》
그날도 파리는 어김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저녁 뒤튀유는 자신의 집 벽을 통과했다. 그는 문도 열지 않은 채, 그냥 벽을 지나쳐 나왔고, 또 지나쳐 들어갔다.
그의 첫 번째 일탈은 이렇게 아무런 경고 없이 시작되었다. 특별한 결심도 하지 않았고, 누구의 도전도 받지 않았다. 오직 벽이, 어느 순간 그에게 열렸다는 사실 하나만이 그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그 틈은 작고 미세해서 다른 이들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틈 사이로 처음 스며든 감각은 무엇보다 날카로웠다. 그것은 처음 느껴보는 자유이자, 어떤 거대한 경계에서 미끄러져 나간 불안한 쾌감이었다.
그는 점점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실험해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용히,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 벽을 통과해 남의 방을 가로질렀다. 지하실을 훑듯 걸어 들어갔다가 나왔다. 도시의 구조가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자, 공간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왔다. 계단은 무의미해졌고, 문은 더 이상 열릴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뒤튀유만이 도시가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질서와 경계, 경로와 목적지를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파리는 그에게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벽 너머에는 도시가 드러내지 않던 모습들이 숨어 있었다. 뒷문 뒤에 놓인 좁은 복도, 오래전 봉인된 계단, 지하실과 지상 사이의 어둠, 방치된 창고의 먼지 낀 창틀, 아무도 오지 않는 다락방이 존재했다. 옷들을 장롱에 쑤셔 박아두고 깔끔해진 방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파리라는 도시는 겉으로는 정돈되어 있었지만, 그 벽 하나만 지나면 수없이 많은 불균형과 불협화음, 그리고 잊힌 목소리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다. 거리의 표면이 아니라, 그 아래 얇게 숨겨진 어둠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벽을 지나 뒤튀유가 마주한 곳은 바로 그곳이었다.
가까이에서 보아야 도시가 얼마나 많은 것을 숨기고 있었는지, 또 우리가 사랑한 그 도시가 얼마나 많은 벽을 세우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벽들이 얼마나 조용히, 그러나 철저하게 사람들을 구분하고 밀어냈는지까지도.
파리를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파리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뒤튀유는 처음엔 복수를 선택했다. 자신을 조롱했던 상사, 무시하던 동료들에게 그는 벽을 지나 그들의 사적인 공간을 드나들며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응징을 시작했다. 그것은 범죄가 아니었다. 단지, 일상의 비열함을 침묵 속에서 되갚는 방식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쾌락으로 변모했다. 남의 집을 드나들고, 은밀한 공간을 훑고, 아무도 허락하지 않은 방에 들어갔다. 밤이 깊을수록 그는 더 멀리, 더 깊이 도시의 피부 속으로 파고들었다. 감옥도, 금고도, 은신처도 그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파리의 어둠을 유영했고, 그 어둠 속에서 자신만의 질서를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리는 질서를 잊지 않았다. 뒤튀유가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도, 도시의 리듬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거리의 전등은 규칙적으로 켜졌고, 지하철은 정해진 시각에 도착했다. 사무실 사람들은 서류를 분류했고, 그가 빠져나간 자리는 너무도 빠르게 봉합되었다.
도시가 가장 잘하는 일은, 잊는 것이다. 자유로움에 취해 있던 그는, 자신이 사실상 도시의 공식적인 질서에서 완전히 탈락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벽은 다시 닫히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게 통과하려 했던 벽 앞에서, 그의 몸이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런 경고도 없었고, 아무런 신호도 없었다. 단지 도시가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다시 규칙을 회복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그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도시는 그를 가둔 것이 아니라, 그를 남겨둔 채 떠난 것이다. 그 누구도 그를 찾지 않았고, 그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는 벽 속에 갇힌 채, 도시의 내부 어딘가에 조용히 머물게 되었다. 그렇게 일탈은 끝났고, 자유는 사라졌으며, 파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돌아갔다.
일탈이 별거처럼 보여도 일탈을 감행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고민과 결심만큼 그리 대단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가까이에서 본 파리처럼 더럽고 어둡고 또 축축한 도시도 다리 아름다워지고,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간다.
파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같은 모습으로, 같은 리듬으로, 같은 풍경 속에서 그 틈에서 벗어났던 시간을 기억한 채 흘러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