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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은 언제나 뒤늦게 도착한다

《Le Paysan de Paris》 by Louis Aragon

by 프렌치 북스토어

도시는 기억보다 느리게 사라진다. 건물은 무너지고, 상점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떠나가지만, 그곳에 깃든 감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라진 후에야, 사라진 도시는 말을 걸기 시작한다.


사라졌기 때문에, 잊었다고 믿고 있었지만, 빛의 결, 냄새의 잔상, 벽에 스쳐간 손끝의 감촉은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에 남아 있다.


루이 아라공(Louis Aragon)이 1920년대 말, 파리의 한 구석에서 마주한 풍경은 철거를 앞둔 오페라 파사쥬(Le Passage de l’Opéra)의 쇠락한 모습이었다.


아라공은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도시에서 사라져 가는 마지막 체온을 감지했다.


낮게 깔린 유리 천장 아래, 햇빛은 얼룩처럼 스며들었고, 닫힌 상점의 철문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처럼 적막했다. 쇼윈도 안 마네킹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벽에는 오래된 포스터가 반쯤 찢긴 채 매달려 있었고, 깨지고 달아 없어진 낡은 바닥만이 한 때 많은 이들이 찾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더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어진 그 길은 모두가 그저 사라질 풍경이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에게 파사쥬는 시간이 응축된 통로였다. 낡은 시각적인 풍경이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는 감각적 구조물이었다.







아라공이 바라봤던 것은 사라지는 장소가 남기는 감정의 표면이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아니면 기억이 깃든 장소가 파괴된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작은 통로가 사라진다고 결정된 순간부터 오페라 파사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주고, 도시와 사람이 무의식의 층위에서 만나는 통로 역할을 했다.


이제는 사라진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욕망이 진열되어 있었고, 부끄러움이 매달려 있던 곳, 텅 빈 마네킹의 눈빛이 자리 잡고 있었고, 빛바랜 책 더미가 쌓여 있던 장소,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고, 바닥에는 그림자자 사라지지 않았던 통로에는 공허함만이 남았다.


아라공은 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오직 직관과 감각만으로 이 공간을 기술했다.



신비의 문은
인간의 작은 결함 하나로 열리고,
우리는
어둠의 왕국 안으로 들어선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시 속에서 감정을 증폭시키는 장소는 이제는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된 곳이나, 가장 큰 균열이 존재하는 장소, 아니면 그 불완전한 틈이다.


이런 장소에서는 무생물조차도 도시의 욕망을 대변한다. 버려진 구두 한 켤레, 낡은 카운터에 놓인 계산기, 먼지 낀 거울 같이 모든 것들은 무정한 사물로 도시를 구성하고 있었지만, 이조차 도시의 의식을 만들어내는 조각들이었다.


실제로 파사쥬는 한때 욕망이 분출되던 장소였다. 매춘이 이루어졌고, 은밀한 책들이 팔렸다. 사람들은 각자 필요한 것들을 '쇼핑'하기 위해 이곳에 드나들었다.


모든 도시에는 감춰진 장면들이 있듯이, 그는 이 짧은 통로에서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부분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하찮은 먼지처럼 남아 있는 누군가의 내면과 삶의 부스러기들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만의 세계가 존재하는 곳, 그것이 사라지는 현장을 목도했을 때, 안도감이 밀려올까? 아니면 아쉬움이 올라올까? 더는 지도 위에 찍히지 않고, 관광 안내서에도 실리지 않는 곳이 된 오늘, 오직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선명히 남아있는 장소, 그런 장면이 되어버렸다.


《파리의 농부(Le Paysan de Paris)》안에 짧게 쓰인 글은 난해하기만 하다. 초현실적으로 늘어선 이해할 수 없는 문장에는 어떠한 해설이나 안내도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작은 통로를 기억하는 행위가 하나의 문학이 된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의 내면을 움직이고, 기억을 환기시키고, 감정을 움직이는 글이 된다.



이 도시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스핑크스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멍하니 걷는 사람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앞에서 멈추고 응시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사라지는 공간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잊힌 감정들이 남아 있는지를 깨닫게 만드는 하나의 거울이 된다. 도시는 외부 세계가 아니라, 내면으로 향하는 입구가 될 수 있고, 아라공은 그 문 앞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느껴보았을 그러나 말로 옮기지 못했던 감정의 조각들을 시처럼, 환상처럼, 그러나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꺼내 보였다.


그렇게 사라지는 장소가 남기는 감각들, 그 잔향은 도시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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