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보여주는 미래의 도서관

디지털 전환, AI, 그리고 인간 중심 공간으로의 변화

by 프렌치 북스토어

한때는 정적 속에서 지식을 지켜오던 도서관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지도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책장을 넘기던 손끝의 기억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요즘 프랑스 도서관들은 지식 창고 같은 향은 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 냄새가 더 많이 난다.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지고, 질문을 품고 찾은 사람에게 길을 보여주고, 연결을 갈망하는 누군가에게는 공감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그럼 이쯤에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도서관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



▍종이에서 픽셀로


도서관이 예전처럼 많은 장서가 있어야 할 이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종이 책은 이미 낡은 매체가 되어버렸다. 이제 어떤 책을 새롭게 들여놓을까보다, 이미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에서 어떤 책을 버려야 할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종이 책들은 여전히 웜톤이지만, 더 이상 따뜻함만을 고집할 수는 없게 되었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흐름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 중이고, 도서관도 그 전환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이제는 종이에서 픽셀로의 거대한 도약을 만들어 낼 때이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이 조용한 변화에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는 2021년, 디지털 시대의 지식 보존을 위한 법안을 도입했다. 전자책, 디지털 음악, 비디오, 사진, 지도, 디지털 악보까지, 다양한 형식의 디지털 콘텐츠를 국가에 의무적으로 기탁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우리 나라도 ISBN이 있는 저작물은 무조건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그 대상이 훨씬 넓고 관리 범위도 광범위하다.


이러한 결정은 디지털 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하려는 프랑스의 비전이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자료를 영구적으로 남기기 위한 기술도 이미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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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디지털화는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이 운영하는 디지털 도서관 갈리카(Gallica)를 통해서 진행 중이다. 이 플랫폼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보관 중인 클래식한 인쇄물부터 원고, 지도, 음성 기록, 비디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디지털 자료가 등록되어 있다.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도서관에 실제로 들어가보면, 프랑스 문학부터, 역사, 과학, 예술, 인문학 등 다양한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어린이 코너에 가면 아이들을 위한 색칠놀이 도안부터 종이 인형 옷 입히기까지 각양각색의 디지털 자료들까지 활용할 수 있다.


갈리카는 디지털 저장소를 넘어 문화 파트너십을 통해 범위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국립 스포츠 박물관, 학술 연구소 같은 기관들과 협약을 통해 그들만의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한다. 각 단체는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직접 큐레이션하고, 지역성과 전문성을 갖춘 문화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확산시키는 목적으로 디지털 도서관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오래된 자료를 아카이빙하는 수준을 넘어 선다. 문화 유산과 디지털 콘텐츠의 접근성을 보장함으로써 지식을 민주화하려는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그 중에는, 질높은 자료들을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는 결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시선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수 없이 많은 에펠탑 사진들이 있지만, 에펠탑을 보기 위해 파리를 찾고,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한 점의 그림을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는 매일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처럼, 콘텐츠의 공개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더 스마트한 대중을 위한

▍스마트 도서관


도서관이 정보를 보관하는 장소에서 정보의 흐름을 설계하는 공간으로 진화하는데, 더욱 가속도를 붙여주는 것이 인공지능(AI)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은 이런 흐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2021년 10월, BnF는 국가 디지털 인프라 TGIR Huma-Num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BnF DataLab을 설립했다. 데이터랩에서는 방대한 디지털 컬렉션을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미래형 도서관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유럽 주요 문화 기관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뉴스아이(NewsEye)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각 유럽 국가에서 수세기에 걸쳐 쌓아온 방대한 양의 신문, 잡지와 같은 언론 아카이브를 활용하기 위한 시도들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에 인공지능(AI)과 첨단 데이터 마이닝 도구를 활용해서 디지털화된 언론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해서, 보다 쉽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탐색하고 추출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수많은 신문 기사 속에서 특정 주제, 인물, 사건에 대한 정보를 자동으로 식별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석하거나, 인과 관계에 맞게 사건을 해석하는 등 기존에는 수작업으로 해야 했던 작업들을 인공 지능과 디지털 기술로 대체함으로써 더욱 깊이 있는 연구를 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일반 시민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기술을 활용한 언론 자료 분석,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 도구 개발은 현재 프랑스 도서관 분야에서도 가장 핫한 주제 중에 하나이다.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결국 인간과 기술의 협업이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프랑스 도서관계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는 활발한 듯 보인다. 많은 사서들은 AI가 도서관 업무 환경을 개선할거라고 말하지만, 인간의 판단력을 대체하거나, 데이터와 사람을 연결하는 중재자의 역할까지 대신할 수 있다는 의견에는 전반적으로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AI는 방대한 자료를 빠르게 분석하고 관련 정보를 활용하는데 탁월하지만,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의미를 가지고,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서의 역할은 점점 더 기술을 활용한 큐레이터, 그리고 윤리적 정보 중재자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정보를 선별하고, 해석하며, 또 신뢰성을 지켜내는 기관으로 역할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리옹 시립 도서관과 프랑스 도서관학교 Enssib는 이러한 사서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도서관의 사서들은 일반 시민들이 생성형 AI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다. 이 워크숍에서는 AI가 만든 콘텐츠를 어떻게 분석하고, 어떤 편향이나 허위 정보가 숨어 있을 수 있는지를 실제 사례를 통해 학습한다. 기술을 이해하고, 비판하고, 또 그 안에서 윤리적이고 책임 있게 사용할 수 있는 공적 교육은 이미 시작되었다.


BnF에서는 5가지 AI 윤리 원칙을 아래처럼 정리하고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AI 사용

신뢰할 수 있는 AI 구축

개인 권리 존중

편향과 차별 방지

환경 영향을 줄이는 기술 활용


이러한 원칙들은 도서관이 단순히 새로운 기술(AI)을 사회적 기술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와 함께, 전체 구성원이 고민해봐야 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기준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그 자세한 내용을 세세하게 뜯어보지 않더라도,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방향성을 갖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것인가에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미 진전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게 주목해야한다.


어쩌면 프랑스의 도서관들은 기술을 받아들이되 감성을 잃지 않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이 바꾸고 있는 것은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이 아니라, 도서관 자체의 풍경이 되었다. 책이 데이터로, 독서 공간은 시스템으로, 그리고 사서 추천 도서는 디지털 큐레이팅으로 바뀌어 가겠지만, 그 속에서 이 모든 지식은 언제나 사람을 향하고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미지 정보

1, 2, 3. 아이들을 위한 디지털 자료들, 갈리카(Gallica), Bn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