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어제 파리에는 비가 내렸다. 아침부터 구름이 낮게 깔리더니 오후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더니 저녁이 다 되어서야 그쳤다. 가을에 내리는 비는 파리의 여름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는 주말 피크닉 계획을 세우지 않고, 계절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들은 스산한 계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카페 앞 테라스에 꺼내 놓았던 테이블을 정리하고, 두꺼운 외투를 꺼내서 입기 시작한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파리의 겨울은 무척이나 습하다. 공기는 무겁고, 또, 차갑다. 창문을 닫아도 방 안까지 스며드는 눅눅함은 봄까지 계속된다. 물을 가득 머금은 축축한 공기 때문에 매일 아침 환기는 필수다. 하루라도 환기를 하지 않으면 방 한쪽에 고여있던 공기가 여지없이 결로를 만들어내고, 그곳에는 곰팡이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제습기로도 걸러지지 않는 불쾌감은 어린 시절 한국의 여름을 떠올리게 만든다. 축축하게 젖은 흙냄새를 맡으면서 등교했고, 비 오는 날에는 눅눅해진 실내화에 발을 넣어야 한다는 사실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교실 뒤에는 쓰레기통이 우산꽂이가 되어 있었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갔다.
이상하리만큼 기억은 늘 이렇게 기괴한 방식으로 되살아난다. 가을비에서 겨울 풍경으로, 파리 겨울의 눅눅함에서 과거 실내화의 눅눅함으로, 그리고 우산을 들고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던 일까지. 기억들은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잘려진 장면과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떠오른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은 바로 그 불완전한 기억의 방식을 문학으로 옮겨 놓았다.
소설은 기억을 직선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소설 속 화자는 노년의 자리에서 과거를 회상하지만, 그녀가 떠올리는 시간은 앞뒤로 마구 혼재되어 흘러간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는 그 순서가 바뀌어 있다. 뇌리에 깊게 새겨졌던 장면이 먼저 등장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시시한 장면이 뒤에 따라 나오는 식이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과정에는 감각의 단서들이 작용한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 방 안을 도는 선풍기의 소리, 몸에 달라붙는 얇은 원피스의 감촉, 차가운 자동차 가죽 시트, 방 안에 배어 있는 담배와 향의 냄새 같은 물질적 감각이 먼저 떠오르고, 그 위에 세부적인 배경이 따라붙는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소녀는 몇 개의 결정적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강을 건너던 배 위의 첫 만남, 검은 차 안의 침묵, 차가운 방바닥, 창문 밖의 빛 같은 장면처럼 가슴속에 사무쳤던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다. 같은 장면이 반복될 때마다 서술하는 어휘는 미세하게 달라진다. 동시에 기억의 디테일은 조금씩 되살아난다.
그녀의 기억은 그녀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당시 프랑스가 식민지배를 하던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은 사회적으로는 지배층에 속했지만 경제적으로는 가난에서 허덕여야 했다. 그녀의 집은 파단했고, 어머니는 경제적 불안과 아들들의 방탕한 모습에 지쳐 있었다. 생계를 책임지기에는 너무 연약한 어머니 때문에 그녀는 늘 부족함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메콩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 한 중국계 청년을 만나게 된다.
그는 재벌집 아들로 경제적으로는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둘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 대한 끌림을 감지한다. 소녀에게는 자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만남은 사이공의 호텔 방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누는 비밀스러운 사랑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 둘의 관계는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미성년과의 사랑, 더구나 식민시절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의 관계는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들은 결국 이별을 선택하게 된다. 소녀는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나가고, 청년은 말없이 그녀를 떠내 보낸다.
작품은 철저하게 소녀의 기억에 의존한다. 실제 작품 속 어떤 기억들은 희미하고, 또 중간중간 연결이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존재한다. 중간에서 장면이 끊기는가 하면, 대화는 완성되지 않는 채 남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기억의 불완전성을 재현하는 것처럼, 사건의 실체를 기억해 내기 위해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서 떠올린다.
비 오는 날 창문을 타고 내려오는 빗방울은 기억의 작동 방식을 시각적으로 그려낸다. 처음에는 작은 점으로 맺혀 있던 물방울이 점점 커지다가, 근처에 있던 다른 물방울과 만나면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뀌고 만다. 그 궤적은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꺾이기를 반복하다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곳에서 사라진다. 빗방울이 유리창에 남긴 흔적들은 마치 뇌에서 시냅스들이 번져나가는 줄기처럼 불규칙한 선과 얼룩이 겹쳐지면서 하나의 무늬를 만든다. 그리고 그 무늬 끝에는 기억 속 한 장면이 있다. 유독 눅눅하게 느껴졌던 실내화처럼.
소설도 똑같은 방식으로 흘러간다. 강을 건너던 배, 검은 차 안에 감돌던 어색한 침묵, 방 안의 냄새와 온도처럼 사건의 이유와 결과와는 무관한 시퀀스를 만들어낸다. 이런 스토리라인을 기존의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뒤라스는 장황한 설명 대신 있는 그대로의 보여주는 것을 선택했다. 굳이 해석하지 않고 반복해서 보여주는 방식, 장면들 사이에 공백을 넣고, 연속적이지 않게, 불현듯 되살아나는 단편들의 집합으로 기억을 보여주었다.
미완의 사건이 완료된 사건보다 더 오래 기억되는 이유를 굳이 심리학에서 빌려오지 않아도 우리는 그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이어지지 못한 관계, 하지 못했던 말들,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이야말로 더 오래 남는 법이다. 마치 결말로 닫힌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금세 퇴색되어 버리는 것에 반해 닫히지 못한 이야기는 틈새를 만들고 반복해서 되살아난다. 기억의 공백이 짙으면 그 여백을 메우려 다시 떠올리게 된다. 기억이 완전해질 때까지 소환하고 또 되뇌게 된다. 그렇기에 만약 기억에도 생명이 있다면 불완전함이야말로 기억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숨은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침묵, 그리고
완성되지 못한 서사
작품이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는 끝내 완성되지 않은 서사에 있다. 뒤라스가 붙잡은 것은 완결된 서사가 아니라, 끊어진 장면들의 잔존이었다. 이 둘에게는 말해지지 못한 침묵이 존재한다. 서로를 향한 애틋함도, 어쩌면 서로를 향한 의미도, 이별 뒤에 남은 상실의 시간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침묵은 이야기를 완결시키지 않는다. 침묵이 대화를 미완의 상태로 남겨 두는 것처럼, 서로를 향한 침묵은 그 관계를 미완으로 남겨 두었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의아한 부분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는 서로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일도, 미래를 약속하는 일도, 또 서로가 얼마나 그리워했는지에 대한 짧은 대화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반복해서 떠올리는 장면들은 이 둘의 관계가 갖는 깊이를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파리 겨울에 내리는 비는 한국 여름의 그것처럼 끝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소나기처럼 잠깐 왔다 가는 사건도 아니고, 장마처럼 쏟아지듯 내리지도 않는다. 낮게 깔린 상태로 도시를 덮어버린 구름, 거리는 젖어 있고, 물기가 마르기도 전에 다시 비가 내린다. 하나의 층이 또 하나의 층을 만들고, 그 층은 다음에 내릴 비를 더 잘 붙잡아 둘 수 있게 준비한다. 기억도 그렇게 겹겹이 쌓인다. 한 번에 끝나지 못한 감정, 말하지 못했던 문장, 확인하지 못한 감정이 다음 장면을 붙잡는다.
사라진 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결말이 없다는 이유로 남는다. 창문에 남은 물자국처럼,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는다. 우리는 그 얼룩을 보며 비를 떠올리고, 비를 들으며 또 다른 장면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