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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nch Toast Mafia May 25. 2021

완전 봉쇄 중 팀 이벤트

펜데믹의 기록 - 1. Fun must go on.

    2020년 6월 초, 딱 1년 전의 이야기. 캘리포니아 전역이 완전 봉쇄 상태에 들어갔고 필수적이지 않은 일상의 모든 군더더기를 쳐내고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었다. 문득 매일의 관성에 끌려가고 있다는 아찔한 위기감이 들자, 당연한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업무는 제쳐두고 나름의 일탈을 구상했다. 꿍꿍이를 품을 때는 보는 이가 없는 재택근무 환경이 쓸모가 있다. 팀 이벤트를 열어야겠어. 그날 오후 매니저한테 대뜸 질렀다.


내가 우리 팀 친목 이벤트를 해볼까 하는데, 서포트 좀 해주겠어?


    눈에 불을 켜고 반기더라. 그럴 만도. 지금껏 이런 팀 사기진작 및 관계 도모를 위한 친목 모임을 계획하는 것은 매니저의 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행사는 개발 중인 제품 및 기능이 몇 달의 검증을 거쳐 마침내 출시됨을 기념하는 의미로 정기적으로 진행하게 되지만, 팬데믹이라는 큰 물살에 존재를 감춘 지 오래였다. Socials(친목, 사교 모임)이라는 이름을 달고 수없이 많은 이벤트가 있었는데 남들이 자리 깔아줄 때 실컷 즐겨 둘걸, 궁하니까 내가 나서고 있더라.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무기력감과 사회 활동의 완전 단절이 나같이 은둔하기 좋아하는 쿰쿰한 사람도 사회적 유대를 느끼려는 발악을 하게 하는구나 깨달았다.


     시간은 금요일, 오후 약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정도가 적당하겠군. 그 정도로 애매해야 이벤트가 끝남과 동시에 업무를 손에서 놓아도 무리 없을 테니 말이다. (가장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혼자 낄낄거렸다) 행사명은 Team's First-ever Virtual Socials (우리 팀의 '첫 원격' 친목 모임). 작명에 필요 이상으로 고심했지만 이것이 최선이었다. 쥐어짜서라도 신났으면 했다. 모두 잠시 쉬어가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을 담아 놀 궁리를 굴렸다.


    고민 끝에 두 가지 게임을 선정했다. Scavenger Hunt(보물찾기)와 Pictionary(그림 맞추기). 둘 다 간단하고, 미국 모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임이다. 더군다나 원격으로 진행하기에 큰 무리가 없을 터. 보물 찾기로 사람들을 가볍게 움직이게 하고, 그림 맞추기로 본 게임을 진행한 다음 두 게임에서 획득한 점수를 뽑기 응모권으로 바꾸어 끝으로는 경품 추첨을 하기로 했다.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높은 점수를 가진 사람의 당첨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하되 게임을 못한 사람도 혹시나 하는 마음 붙들고 추첨 이벤트까지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경품은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최고지. 내가 주최하는 이벤트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한 명은 정 없으니까 두 명 뽑고 상품은 아마존 기프트카드 100불로 정했다. 나를 제외하고 12명이 참가하니까 확률도 나쁘지 않잖아?




Scavenger Hunt. (보물찾기)

    나는 미국식(? 확실하지는 않음) 보물 찾기를 대학에서 처음 해봤는데 꽤나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팀을 짜서 수수께끼를 풀어 한 장소에 도착하게 되면, 그다음 힌트를 얻어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식으로 신입생들이 서로 친해지고 학교 구석구석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고안된 이벤트였다. 이 경우는 원격으로 열리는 행사이기 때문에 보물은 모두 각자의 집에서 어렵지 않게 (너무 쉽지도 않게)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세심히 골랐다.


Company swag (회사에서 공짜로 받은 물건)

Mug with letters on it (글자나 문구가 적힌 머그컵)

Something from your quarantine impulse buys (코로나 봉쇄 때문에 충동적으로 구매한 어떤 것)

Something you believe only you possess, none of other team members (팀원 중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어떤 것)

Your favorite book (가장 좋아하는 책)

Bonus Point: [Riddle] The more I dry, the wetter I become (보너스 점수: [수수께끼] 더 마를수록, 더 젖게 되는 나는 무엇일까요?)


    보너스를 포함해 여섯 가지 물건을 찾아오는 데 있어 내가 중점을 둔 것은 가지고 온 물건이 소재가 되어 서로 재밌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가정집에서는 각양각색의 문구가 적힌 머그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방문했던 관광지를 기념하는 컵이나 부모인 경우 웬만하면 World's best [Mom/Dad] (세계 최고의 엄마/아빠) 같은 컵쯤은 구비하고 있다. 물건에 얽힌 추억을 잠깐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말랑해지길.


내가 좋아하는 머그컵 둘. 나는 미니언 컵을 자랑하려 했는데, 어디 견주어도 손색없이 Geek인 동료들은 Keep Calm and Query On 머그컵에 더 반응했다.


    나는 충동구매한 물건으로 집에서 만드는 버블티 키트를 보여주면서 내 핏속에는 타피오카 버블들이 둥둥 떠다닌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나만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물건으로는 내가 만든 도자기를 자랑했다. 고맙게도 동료들 또한 즐겁게 첫 게임을 따라주었다. 어린 시절 그림일기를 가져오거나 (이 동료는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 고향 부모님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우리 집에만 있는 것'으로 마침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레트리버 반려견을 데려온 사람도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충동구매 중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본인이 최고로 인정하는 맛의, 1년은 거뜬히 먹을 듯한 피타 브레드 뭉치'도 있었고 (이스라엘에서 온 동료이다) 와인병을 가져와 이것만 있으면 난 문제없지 하며 너실대는 매니저, 힘들게 구했다면서 닌텐도 스위치를 가져온 신입도 있었다. 물건 하나를 가져와서 이게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다며 우기려 잔꽤를 부리는 동료도 있었다. (물론 오늘은 내가 보스니까 돌려보냈다. 어이 좀 더 움직이라고! Get your ass moving!) 시작하자마자 정신없이 온 집안을 뛰어다니게 했으니 계략은 성공.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변 환기를 시키고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가져온 물건들로 수다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은 쉬이 흘렀다.


Pictionary (그림으로 설명한 단어 맞추기)

    픽셔너리의 규칙은 간단하다. 제시어가 주어지고 제한 시간 안에 그림을 그려 최대한 설명해야 한다. 온라인 픽셔너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는 "Online pictionary"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골랐다. (검색 시 상위에 노출되는 Drawsaurusskribble.io 두 곳 다 무료 서비스로 기능은 충분했다) 제시어의 난이도도 설정 가능한데 이전 픽셔너리를 해보았을 때 충격적으로 못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장 쉬운 난이도로 골랐다. 한쪽으로는 줌을 켜서 대화하고 다른 화면으로는 픽셔너리 게임을 했다. 나는 다들 즐거워하는 순간이 오면 화면 캡처도 하느라 분주했다.


    여기서 픽셔너리 그림 중 캡처해둔 몇 가지.



단 3명만 맞춘 제시어. 이게 뭘까요? 정답은 King Kong (킹콩). 재밌는 오답으로는 촛불 (재밌지 않은 오답으로는 9/11) 등이 있었다. 완성 그림을 보고 맞추는 게 아니라 그리는 사람이 그리는 도중에 사방에서 날아드는 오답이니 너무 한심하게 보진 말자.


이 그림의 정답은 Roller Coaster (롤러코스터). 당연한 거 아니야? 할지 모르지만 롤러코스터의 차체와 사람은 가장 마지막에 추가된 것이다. 롤러코스터의 철로를 그리는 중 날아들던 오답들에는 Golden Gate, (금문교. 이건 나쁘지 않은 추측) Asymptote, (점근선. 음 정말 정답일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Sine wave (사인 곡선) 등이 있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오답은 Gradient descent.(그라디언트 디센트. 검색해보니 경사 하강법이라고 번역된다) 기계학습에서 loss function을 최소화하는 데 쓰이는 기법 같은 건데 몰라도 된다. 우리 모두 데이터를 다루는 Data junkie(데이터 중독자) 같은 사람들이라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시길. 다들 이 지독한 내부 농담에 깔깔대며 웃었다.


    게임이 끝난 후에도 서로 그린 그림으로 놀리기도 하면서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이벤트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추첨은 인터넷에서 간단한 돌림판을 돌리는 서비스를 찾아 각자 획득한 점수만큼 이름을 넣어 추첨했다. 상품은 우습게도 보물찾기 뒤에서 2등과 픽셔너리 꼴찌가 가져갔다. 당첨된 동료 중 하나는 너무 즐거웠다며 강요하다시피 당첨 상금의 반을 내게 보내주었다. 이후 평도 아주 좋아서 팀 내에서 서로의 그림 그리는 실력은 자주 회자되었고, 매니저의 강력 추천으로 (이쯤 되면 귀찮기 시작한다) 다른 팀들에게 우리 팀이 진행한 원격 팀 이벤트를 알릴 기회도 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내가 팬데믹이라는 기간 동안 가장 잘한 '일이 아닌 회사 일'이란 생각이 든다. 산적해 있는 업무의 관점이 아닌, 저마다의 현재와 이야기가 있는 개개인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일. 그 잠시 잊혔던 여유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당시 누구보다 스스로가 얼마나 필요로 했는지 이제야 눈에 읽힌다.




보물찾기 마지막 보너스 문제의 정답은 '수건'이다. 초등학생 수준의 수수께끼에서 골라왔지만 맞추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못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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