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가 이직을 한단다. 요즘 흔하게 보이는 오고 가는 소식이 아니라,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Dreams do come true! 급의 대단한 경사인 듯했다. 링크드인에 올라온 글에 묻어나는 설렘, 기쁨, 환희 온갖 긍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덮쳤다. 처음 탁 든 느낌은, 부러움. 좋겠다... 정말이지, 너무 부러워서 속이 살짝 울렁거릴 정도로. 그런데 말이지. 왜 이렇게까지 질투심이 드는 걸까?
누군가는 제 사업을 시작해보기로 했다며 비장하게 돌아 섰고, 또 누군가는 연로하신 아버지를 가까이서 간병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룹의 수장 격이었던 누군가가 시작한 스타트업 쪽으로의 인력 유출도 몇몇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크게 흔든 일은 나를 가장 믿어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상사 둘의 퇴사 소식. 한 분은 갓 대학을 졸업한 나를 직접 뽑고 오랜 시간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은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내 직속 상사로 위 아래로 인정받는 매니저였다. (좋은 매니저는 하늘에서 내려준다고 한다던데... 난 이제 망한 건가) 둘 다 워낙 뛰어나 가까이 함께 일할 수 있음에 든든했으나 결국 그 능력을 인정받아 훨씬 좋은 조건으로 이직해 회사를 떠났다.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을 지도. 그분들이 나의 성장을 한껏 축하해준 것처럼 나도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기뻐했지만, 한 편으론 끈 떨어진 연 마냥 쓸쓸해졌다. 내가 다시 새로운 사람과 믿음을 쌓고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이 컸다. 하지만 그때도 이런 꼬장꼬장하고 못난 질투의 감정은 아니었던 것 같아.
Dreams come true. 그 말부리에 마음이 걸려 넘어졌다. 단순히 조금 더 나은 조건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의 이상향에 다가가는 느낌, 그 희열이 너무 부러웠다. 꿈이라니! 학생 때야 세상 물정 모르고 저만의 꿈을 꾸고 상상하며 행복감에 젖어들기 쉬웠지, 어른이 된 지금은 단어를 입에 올림과 동시에 101가지 장애물과 불가능한 이유가 같이 떠올라 괜스레 부끄러워지고 만다.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나도 꿈이 갖고 싶어'가 아니라 '나도 스스럼없이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쪽에 가깝달까? 저렇게 공공연한 장소에서 감히 이상에 대해 말하고 쟁취했다고 선언할 수 있는 대담함(dare)이 탐이 났다.
어쩌면 2-3년마다 찾아오는 퇴사병일지도 모르겠다. 하필 시기가 맞물려 나가야만 할 것 같은 핑계를 더욱 쉽게 접하는 걸지도 모른다.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 (뜻풀이로는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다' - 미국 버전의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표현이다) 그런 거라니까. 한차례 퇴사병치레를 하고 난 다음에는 떠나는 데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지만, 있는 자리에서 희망을 찾고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도 큰 인내와 단단함이 있어야 했다는 소소한 위안이 늘 남곤 했다. 사실 거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집에서든, 건넛집에서든 내가 하는 일이 결국 잡초 뽑는 일이면 잔디가 좀 푸르면 어떻고, 누런 색이면 또 무슨 상관이겠는 가. 꼬꼬마 때부터 나를 봐온 멘토는 상담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 지 적재적소에 묻곤 하는 데, 어찌 된 일인지 같은 질문에 시간이 갈수록 대답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결국은 도돌이표. 어떤 쪽이든 나는 dare를 갈망한다. "Daring Greatly."*
말 나온 김에 Brené Brown quote으로 마무리 -
You either walk inside your story and own it or you stand outside your story and hustle for your worthiness.
*Daring Greatly는 사회 복지 및 심리 연구원이자 작가인 Brené Brown의 책 제목이다. 한국 번역서 제목은 "완벽을 강요하는 세상의 틀에 대담하게 맞서기" - 라는 데 이게 최선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