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기는 싫습니다만

by 도하링
다시 태어나느니, 그냥 죽겠습니다


드라마나 웹소설을 자주 보시나요?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환생' 혹은 '전생'.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하죠. 머리는 그대로 두고 어릴 때로 다시 돌아가면 어떨까. 그러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저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제 결론은 항상 같습니다. 다시 태어나느니, 차라리 죽겠다.


치열하게 살지도 않았으면서, 열심히 살지도 않았으면서, 죽어라 고생하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내심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랑스러운 삶은 아니지만, 먹고살 만큼 벌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다시 돌아가면 지금보다 잘 살 수 있을까?


지금보다 잘 살려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또 부딪혀야겠죠. 상상만 해도 참 끔찍합니다. 아침 8시 50분까지 등교해서 50분 수업하고 10분 쉬어가며 4시까지. 그리고 학원 가서 영어단어 외우고 수학문제 풀고. 상상만 해도 ㅈ같네요. 안 그래도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인데 심지어 미래도 알고 있다? 저에게는 고문일 거 같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더 나은 대학에 들어가고 더 나은 회사에 들어간다면 어떨까요. 언제 뭐가 유행했고 뭐가 무참히 끝났는지 잘 알고 있으니 사업을 하고 싶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면 돈이 없으테니 아마 못하겠죠. 다시 또 신입으로 입사해 나이 많은 상사 비위나 살살 맞춰가면서 일 배우고 경력 쌓고 ㅅㅂ 그냥 차라리 죽겠다고요.


다시 태어난다면, 이번 생의 기억은 확실히 지워져야 합니다.


우울증을 앓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물론 걱정이 있고 막막한 순간이 있지만, 우울하지는 않습니다. 달라진 마음 가짐을 상기해 보면, 꿈과 희망을 놓아버린 후로 마음이 편해진 것 같습니다. 그저 오늘 하루 즐겁게 사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언제 어떤 순간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것이 인생 아닙니까? 그런 불확실성의 미래를 계획하고 통제하려기 보다, 그저 순수하게 즐기는 것이 낫겠다 싶더라고요. 계획대로 되면 그건 1회 차 인생이 아니니까. 어쩌면 2회 차가 와도 우리는 인생 설계에 실패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포기'라는 단어를 정말 싫어합니다.


꿈을 포기했다고 말하기엔 그 꿈의 대가와 과정, 결과 모두 알지 못했으니까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것은 소설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신이 쓰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놓아버렸을 뿐이에요. 흘러가는 대로. 다만 끝내 책임은 지겠다는 다짐으로.


4월의 풍경, 다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건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이맘때, 동네에 벚꽃이 환하게 피었습니다. 그곳을 걸으며 첫사랑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 얼굴이 꼭 환하게 핀 벚꽃 같았거든요. '내 망상일 뿐이다', '내가 찾아가지 않는 한 우연히라도 마주 보게 될 일은 없을 거다'라고 생각하며 떠오르는 그 아이 생각을 억지로 지워대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정말 거짓말처럼, 제 앞에 그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세상 다 녹여버릴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영화 같은 순간에 온몸이 굳을 정도로 긴장한 저는 어버버 하다 대답도 못하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느니 차라리 죽겠다 했건만, 그 순간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수 없네요.


다시 돌아간다면, 꼭 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인생이라는 게 이렇죠. 그때 그 아이가 앞에 나타날 걸 알았더라면 좀 더 허리를 펴고 긴장을 추슬렀을 텐데. 그런 영화 같은 순간이 내게 일어날 거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요.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무슨 말이든 했어야 합니다. 안녕, 반갑다, 어디가?, 좋아해, 사랑해, 예쁘다, 잘 가, 오랜만이야. 뭐든 말을 했어야 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하는 같잖음이 아무 말도 못 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도 순수하게 인생을 즐겼더라면, 적어도 대답은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뭐하고지낼까존나궁금하다


고등학교 나오고 대학에 입학하고 자퇴하고 취업하고 퇴사하고 취업하고. 당연히 후회되는 순간이 있고 '이랬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시행착오가 쌓여 지금의 제가 된 거겠죠. 지금의 이 미완성의 완성으로, 남은 생을 즐겨보렵니다. 끝내 감당하고 책임지겠다는 다짐만 품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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