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때 항상 이 질문을 먼저 떠올립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 나왔는가"
First edition cover of Pollyanna by Eleanor H. Porter, 1913그 질문 하나만 던져도 전혀 다르게 읽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엘리너 H. 포터의 <폴리애나>가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밝고 긍정적인 소녀의 이야기.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찾아내는 아이.
하지만 시대 배경을 함께 들여다보니, 기쁨보다 먼저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기쁨이 왜 먼저 안 보이는지 봐야 합니다
Bethlehem Steel main manufacturing facility (now defunct), Bethlehem, Pa. Jeremy Blakeslee
카네기와 록펠러가 거대한 부를 쌓아 올리던 시절, 1913년,
소설이 세상에 나왔을 때 미국은 2차 산업혁명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세상은 순식간에 바뀌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흐름에 적응하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빈부격차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극심했습니다.
소설 속 폴리애나의 어머니는 부유한 가문의 딸이었습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난한 목사와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 진심이 아무리 깊어도
현실의 무게까지 녹여내지는 못합니다.
가족의 생계보다 자신의 신념을 택한 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딸 폴리를 홀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정적 원인은 앞서 말한 가혹한 시대 배경입니다.
아버지는 생활고 속에서 아내의 건강도 자신의 건강도 끝내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뿐인 딸 폴리만 세상에 홀로 남겼습니다.
가혹한 시대와 타협하지 않는 목사의 가정으로 비춰집니다.
물론 당시 목사 중에도 다른 선택을 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Washington Gladden (February 11, 1836 – July 2, 1918)기술 발전은 언제나 규제보다 빨랐고, 그 틈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워싱턴 글래든'처럼 서민들의 권리를 위해 직접 거리에 나선 목사가 있는가 하면, 생계를 위해 신념의 방향을 바꾼 목사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 배경으로 놓고 보면,
소설 속 아버지는 신념을 지키는 대신 가정을 지키지 못한 남편이자 아버지였습니다.
홀로 남겨진 폴리는 보육원을 거쳐 이모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아이가 기억하는 따뜻함이라고는 아버지한테 배운 '기쁨 놀이'입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폴리가 갖고 싶었던 인형 대신 받은 솔잎 지팡이(목발) 받은 내용이 있습니다.
"다리가 건강해서 지팡이(목발)를 쓸 필요 없어요, 그래서 기뻐요!"
Pollyanna and The Glad Game
아버지가 가르쳐준 것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 속에 놓이더라도
만족을 넘어 '기쁨'을 찾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밝고 긍정적으로 키우는 일은 중요합니다.
동시에, 그 상황 자체가 아이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느껴졌을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힘든 현실을 견뎌온 아버지가,
자신의 방식이 가족을 어떻게 이끌었는지는 미처 돌아보지 못한 채
딸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이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찾아라"였습니다.
다만 그 가르침이 어디서 왔는지 들여다봤으면 합니다
동시에 어른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이가 밝게 자라려면, 아이를 지켜줄 사회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 사회 안전망, 곁에서 책임지는 어른,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을 때 비로소 아이는 안심하고 세상을 밝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쁨을 찾아라"고 가르치는 건 따뜻한 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기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쁨'을 찾으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을 봤으면 합니다.
'폴리애나 현상'은 다른 형태로 반복될 것입니다
'폴리애나 현상'은 힘든 현실을
견디기 위해 긍정적인 시선과 외면하는 부정적인 시선 두 가지를 말합니다.
새로운 혁명도 두 가지 명과 암을 남깁니다
기술은 중립이지만, 사회는 중립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기술 격변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폴리의 아버지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고 탓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 가정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할 책임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AI혁명, 그 기술의 무게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