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은 죽고 거래만 남았다"
2026년 1월 15일, 베네수엘라 야당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그녀는 자신의 메달을 트럼프에게 선물했습니다. 200년 전 라파예트 장군이 볼리바르에게 워싱턴의 메달을 준 일화를 언급하며 "자유를 위한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형제애"를 강조했습니다.
마차도는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상황을 얼마나 명확히 이해하는지, 베네수엘라 국민의 고통에 얼마나 관심 있는지 감동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백악관 대변인은 말했습니다. 트럼프는 앞서 마차도에 대해 "국내에서 지지나 존경을 받지 못한다"며 "리더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베네수엘라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마두로 정권의 2인자였던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그대로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고,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베네수엘라 국방부 장관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트럼프가 로드리게스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파드리노를 그대로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국무부는 파드리노에게도 마두로처럼 현상금을 걸어놨는데 말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표면적으로는 '마약 퇴치'와 '민주주의 회복'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법무부는 마두로 체포 직후 공개한 공소장에서 기존 주장을 철회하고 '태양의 카르텔'이 실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마약 자금에 의해 움직이는 후원 시스템이나 부패 문화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명시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태양의 카르텔'을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며 마두로 축출의 핵심 명분으로 삼았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입니다. 마두로 정권의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은 "태양의 카르텔은 존재한 적이 없다"며 "미국의 진짜 이유는 석유"라고 말했습니다.
미 재무부는 2025년 7월 '태양의 카르텔'을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루비오 국무장관의 지시로 국무부도 같은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제 와서 이것이 실재하는 조직이 아니었다고 인정한 겁니다. 루비오 장관은 수정 공소장이 공개된 다음 날인 1월 5일 인터뷰에서도 여전히 "마두로는 태양의 카르텔 지도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엇박자가 나는 모습입니다.
트럼프는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업들이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에 많은 투자를 했었는데 그들이 우리 회사들을 쫓아냈다. 우리는 그것을 되찾고 싶다"고 노골적으로 말했습니다. 백악관 부비서실장 스티븐 밀러는 더 나아가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은 미국인들의 땀과 기술, 노력으로 건설된 것"이라며 "강제로 빼앗은 것은 미국 재산에 대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절도 행위"라고 비난했습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밝힌 3단계 계획을 보면 우선순위가 명확해집니다.
1단계는 '안정화(Stabilization)'입니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압류해 시장가로 판매하고, 그 돈은 미국 통제로 분배한다는 겁니다. 루비오는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들은 석유를 움직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2단계는 '회복(Recovery)'인데, 여기서 먼저 나오는 게 "미국, 서방 기업들의 베네수엘라 시장 접근 보장"입니다.
3단계는 '전환(Transition)'인데 구체적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는 적절한 때가 되면 치러지기를 바란다"며 말했고 일정을 묻는 기자들에 백악관 대변인은 "언젠가(one day)"라고만 답했습니다.
이제 마차도가 왜 배제됐는지 보입니다. 마차도가 대통령이 되려면 정상적인 민주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군부 재편으로 마약과 부패에 연루된 인사들을 숙청하고, 과도정부를 수립하고, 대선을 실시해야 합니다. 최소 1~2년은 걸리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마차도는 정통성 있는 선출직 대통령이 되고, 투명하고 공정한 석유 계약을 요구할 겁니다. 미국이 마음대로 통제하기 어려워집니다.
반면, 로드리게스는 마두로 체포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국회 연설에서 석유법 개혁안을 제출했습니다. "투자 흐름이 새로운 유전, 한 번도 투자되지 않은 유전, 인프라 없는 유전에 통합되도록" 하겠다며 미국 기업들의 진출 길을 열어준 겁니다.
트럼프에게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당장 중간선거가 다가오고 있고, 빠른 성과가 필요합니다. 여러 재판도 진행 중이어서 강력한 대통령 이미지를 과시해야 했습니다. 마차도 정권이 안정화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겁니다. 로드리게스 체제는 몇 주 만에 석유 거래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사람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베네수엘라 국방부 장관입니다. 2014년부터 국방부 장관을 맡았고, 2016년에는 마두로로부터 식량·약품 배급권과 5개 주요 항구 통제권을 받았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베네수엘라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사람"이라고 평가했지만, 실제로는 마두로보다 더 강력했을지 모릅니다.
파드리노의 이력을 보면 왜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2002년 당시 차베스 정권에 대한 충성으로 만든 권력 통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군사 교본을 저술해 베네수엘라 군 교육기관에서 표준 교재로 사용되고 있어 차세대 장교들을 이념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20년 이상 권력 핵심에 있으면서 베네수엘라 군부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미국은 2020년 파드리노를 마약 밀매 공모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코카인 운송 항공기에 6만 달러 이상의 보호비를 청구하고, 돈을 안 내면 베네수엘라 군으로 파괴했다는 혐의입니다. 이 돈으로 베네수엘라 정치 자금을 댔다고도 합니다. 미국 국무부는 1,500만 달러 현상금을 걸고 "파드리노를 베네수엘라 정부 장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마두로 체포 작전 당시 파드리노는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는 "미국이 로드리게스와 파드리노 국방부 장관과 협상해 마두로 체포 때 저항하지 않도록 했다는 추측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마두로 경호대만 사망했고 핵심 권력자들은 모두 무사했습니다. 마두로 체포 직후 파드리노는 "비겁한 납치"라고 규탄하면서도, 동시에 로드리게스의 임시 대통령 임명을 즉시 인정하고 "베네수엘라 군은 로드리게스 정부를 지지한다"는 공식 성명을 냈습니다.
로드리게스의 이중 플레이도 노골적이었습니다. 1월 5일 취임식에서 그녀는 "납치된 두 영웅에 대한 고통을 안고 왔다"며 "미국에 인질로 잡혀있는 마두로 부부"를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날 소셜미디어에는 "미국 정부와 협력 의제를 제안한다"며 "균형 잡히고 존중하는 관계로 나아가고 싶다"고 올렸습니다. 1월 15일, 연설에서는 "워싱턴에 간다면 끌려가지 않고 당당히 걸어갈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저항의 제스처를 보였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석유법 개혁안을 제출해 미국 기업들의 진출 길을 열어줬습니다.
미국은 로드리게스의 이런 이중 플레이조차 용인하고 있습니다. 로드리게스가 국민들에게 "당당한 베네수엘라"를 연기하든 말든, 미국이 실제로 원하는 건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권'입니다. 오히려 미국은 계속해서 유조선을 나포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1월 15일 로드리게스가 '당당한' 연설을 한 바로 그날, 미군은 베네수엘라 연관 유조선을 나포했습니다.
유조선 나포는 베네수엘라가 여전히 중국과 러시아에 석유 거래를 시도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중국은 수십 년간 베네수엘라가 빚진 600억 달러를 원유로 상환받으며 석유를 싼값에 수입했고, 러시아와는 수십 년 동맹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로드리게스와 파드리노가 이들과의 관계를 하루아침에 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계속된 유조선 나포로 "우리 허락 없이는 석유 한 방울도 못 판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결국 마두로는 제거 가능했고, 파드리노는 제거 불가능했습니다. 마두로는 정치인일 뿐이었고, 그래서 로드리게스로 바로 교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파드리노는 군부 그 자체입니다. 20년간 군을 장악하고, 식량과 약품으로 국민을 통제하고, 자신의 군대를 만들어온 사람입니다. 그를 제거하면 군부에 공백이 생기고, 베네수엘라는 완전한 혼돈에 빠집니다. 군부가 통제하는 석유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면 미국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마차도는 트럼프를 만나 자신의 노벨평화상 메달을 선물했습니다. 200년 전 라파예트 장군이 볼리바르에게 워싱턴의 메달을 준 일화를 언급하며 "자유를 위한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형제애"를 강조했습니다. 회동 후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상황을 얼마나 명확히 이해하는지, 베네수엘라 국민의 고통에 얼마나 관심 있는지 감동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백악관은 회동 직후 "트럼프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재확인했습니다.
독재자 마두로의 정적으로 불리는 노벨상 수상자 마차도가 자신의 메달까지 바치며 간청했지만, 트럼프는 마두로 정권의 2인자였던 델시 로드리게스를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인정했습니다. 1,500만 달러 현상금이 걸린 마약 밀매 연루된 파드리노는 여전히 국방부 장관입니다. 명분은 마약 퇴치와 민주주의였지만, 실제로는 석유였습니다. 카베요 내무장관의 말이 정확했습니다. "진짜 공격 이유는 석유다"
베네수엘라는 사실상 군부가 통치하는 국가입니다. 대통령이 누구든,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최종 결정권은 파드리노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파드리노는 미국의 석유 통제 아래 있습니다. 루비오 장관의 말처럼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석유를 움직일 수 없는" 구조입니다. 현재 표면적으로는 델시 로드리게스가 대통령이지만, 실제 권력 구조는 베네수엘라 군부 그리고 가장 위에는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국방부 장관이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국민과 마차도는 이 구조 밖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