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라 믿었던 것들…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사랑의 기술>로 읽는 직장 문화의 이기심

by freq blue
0000.jpg "일에 자신의 모든 걸 다 걸어야죠" - 대행사 5화, JTBC 드라마

"회사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습니다"


직장인들이 흔히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야근과 주말 출근을 마다하지 않고, 개인 시간을 포기하며, 가족과의 약속도 미루면서 일합니다. 이런 모습은 헌신적이고 책임감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이런 희생이 사실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프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원칙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동료를 위하는 사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프롬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헌신이 아니라 '자기애의 부재'에서 비롯된 이기심입니다.



■ 희생의 이면에 숨은 욕구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기적인 사람의 특징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고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원하며, 주는 데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받는 데서만 기쁨을 느낀다"


직장에서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일을 스스로 나서서 맡습니다. "회사를 위해", "팀을 위해" 희생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속마음을 보면 다릅니다.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거야", "인사고과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거야", "승진 심사에서 유리할 거야". 이런 생각들이 깔려 있습니다.

uyyu.jpg "사람들은 선을 긋는다. 때론 아주 사소하게. 때론 너무나 노골적으로" - 사랑의이해 2화, JTBC 드라마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까요?


겉으로는 남들이 꺼리는 일을 맡아 희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직장에서의 칭찬과 인정, 승진이라는 보상을 받으려 애쓰는 겁니다. "주는 데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받는 데서만 기쁨을 느끼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프롬은 표현합니다.



■ 자기애와 이기심의 차이

ㅎㄱ.jpg "오늘 중으로 현장 복귀 안 하면 전부 다 공장 직원들 책임으로 묻겠습니다, 예?" - 미생 16화, tvN 드라마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 있으면, 그러니까 자신을 사랑하면 이기적인 거 아닌가요?"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프롬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지 못해서 문제라는 겁니다.


"만일 어떤 개인이 생산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있다. 만일 그가 오직 다른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전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프롬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물컵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바닥에 구멍이 뚫린 컵은 아무리 물을 받아도 계속 비어 있습니다. 당연히 다른 컵에 나눠줄 물도 없습니다. 반면, 정상적인 컵은 물을 받으면 다른 컵에 물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프롬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을 구멍 뚫린 빈 컵에 비유합니다.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에서 인정과 사랑을 받으려 합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승진을 해도 금방 다시 공허해집니다. 그래서 더 많은 희생을 하고, 더 많은 인정을 받으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프롬이 말하는 이기심입니다.



■ 직장 문화와 이기심의 공모


기업은 이런 이기심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iii9998.jpg "건물 드나들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는 시선 그것만으로도 전 충분해요" - 나의 해방일지 6화, JTBC 드라마

'회사 식구', '한 배를 탄 사람들', '조직을 위한 헌신' 이런 말들이 개인의 희생을 미덕으로 포장합니다. 급한 프로젝트나 많은 일이 생기면 모두가 남아서 일합니다. 안 그러면 "열정 없다", "팀워크 없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구조는 개인의 불안을 먹고 자랍니다. "나는 여기 속할 자격이 있을까?", "거절하면 배제되는 거 아닐까?",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거 아닐까?" 이런 불안 말입니다.


회사는 이런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우리 조직에 헌신하면 괜찮은 사람이야", "우리 문화에 적응하면 속할 수 있어", "순응하면 배제되지 않아" 겉으로는 해결책이지만, 본질은 불안을 이용한 거래입니다.


초중고, 대학을 거쳐 어렵게 들어온 직장입니다. 여기서 '낙오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 개인을 짓누릅니다. 그래서 개인은 시간, 건강, 자율성을 내놓고, 회사는 소속감, 정체성, 안정감을 제공합니다. 이 거래의 핵심에는 개인의 '자기애 부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 희생과 헌신의 차이


그렇다면 진정한 헌신은 무엇일까요?

koko98989.jpg "직장인이 하고 싶은 일이 어디 있어요? 그냥 다 하기 싫은 일, 그냥 그런 생각 안 하고 하는 거지" - 서초동 3화, tvN 드라마

프롬은 "생산적으로 사랑하는 것"과 "이기적인 것"을 구분합니다.


두 명의 직장인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A씨는 야근합니다. 하지만 일하면서 계속 휴대폰을 확인합니다. 혹시 상사가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나 궁금해서입니다. 인정받지 못하면 속이 끓습니다. 반대로 칭찬을 받으면 또다시 칭찬받아야만 합니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입니다. 프롬은 이를 받기 위해 주는 것처럼 보이는 거래, '이기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B씨도 야근합니다. 하지만 이유가 다릅니다. "이 프로젝트가 중요하니까 지금은 집중할 때"라 생각하며 일에 몰입합니다. 끝나고 나면 피곤하지만 만족스럽습니다. 상사가 인정해주면 기쁘지만, 인정받지 못해도 "나는 내 일을 잘했어"라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야근의 목적이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입니다.


내면이 충만해서 자연스럽게 주는 '생산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프롬은 말합니다.



■ 왜 우리는 이기적인 희생을 계속할까


이기적인 희생이 괴롭다면 왜 계속할까요?


프롬은 이를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라고 부릅니다.

jc.jpg 서울 대기업이 아닌 아산공장에 좌천된 김낙수 -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5화, JTBC 드라마

개인으로 서는 게 불안하니까, 집단 속으로 도망가는 겁니다. "나는 대기업 직원이다", "나는 이 팀의 일원이다" 이런 정체성은 사실상 강력합니다. 이러한 정체성이 없으면 한국 사회에서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사가 요구하는 거래, '희생'을 받아들입니다. 그 희생이 사실은 우리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임을 모르는 채로 말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겁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솔직히 말하면 직장에서 확인받고 싶었던 겁니다. 사회가 만들어 둔 시스템 속에 갇힌 채, 자기 자신을 잃어가며 '희생'합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희생'이라 믿었던 것은 사실 '욕심'이었습니다.



■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것…조직과 동료에게 진정으로 기여하는 길


프롬의 통찰은 불편하지만 정확합니다.

mama.jpg "인정 욕구에 목말라 있고 사회적인 관계를 통해 자존감 찾는 인간에게는 혼자, 맛없는 도시락일지 몰라도 나한텐 오아시스 같은 도시락" - 이번 생은 처음이라 2화, tvN 드라마

직장 내 희생이 이기적인 이유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나 헌신에서 나온 게 아니라, 자기애의 부재에서 비롯된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받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인정, 칭찬, 소속감, 정체성을 받으려고 말입니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 통해 말합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특별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 뒤따르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을 사랑하는 전제이다"


이를 직장 상황에 적용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동료를 진정으로 헌신하는 전제입니다.


해결책은 간단하지만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가득 찬 컵만이 넘쳐서 다른 컵을 적실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희생을 멈추고, 먼저 자기 자신을 채우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조직과 동료에게 진정으로 기여하는 길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일은 이기적인 희생이 아니라 진정한 헌신이 됩니다.


프롬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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