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즘(Bovarysme)'의 재정의

<마담 보바리>는 끝나지 않았다

by freq blue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언제였는지, 또 친구는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 - 영화, 2015년

사회생활에 들어서면서 자기 스스로와 대인관계에서 외로움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집니다. 회사에서는 외롭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시간이 흐릅니다. 스스로 선택한 결과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문득, 퇴근하고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면 "이런 삶이 진짜로 괜찮은 걸까?" 모르겠어지는 순간이 옵니다. 이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엔, 너무 많은 사람이 같은 순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사회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질병으로 걱정합니다. 인구 감소 위기에 정부는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 장려 지원 대책을 내놓고, 기업도 동참합니다.

사회적 관심계층의 생활특성 분석 - 국가데이터처, 2025년 12월 29일

하지만 실제 사무실 안에서는 어떨까요?

기혼자의 워라밸을 지켜준다는 명목 아래, 미혼 직원이 비상 대기조가 됩니다. 챙겨야 할 가족이 없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훨씬 다루기 편한 겁니다. 야근, 주말 출근, 갑작스러운 부서 이동도 가장 적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회사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복지를 보면 더 선명합니다

가족수당, 자녀 학자금 지원, 결혼 축하금. 기업의 복지 제도는 처음부터 기혼자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똑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일하지만, 부양가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미혼 직원은 이 혜택에서 빠집니다.


세금 구조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자녀 가구 감세 혜택이 늘어날수록, 그 빈자리는 미혼 직장인의 세 부담으로 채워집니다. 직장인들이 연말정산을 이른바 '싱글세'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더 교묘한 것은 누군가 육아휴직을 떠나면 남은 직원들에게 업무를 떠넘깁니다. 업무 과중으로 쌓인 분노는 회사가 아닌 휴직을 간 동료를 향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기업에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노노(勞勞) 갈등'을 방치하며 동료를 서로 적으로 돌립니다.


그럴수록 스스로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사내 성과와 승진 경쟁으로 채워집니다. 결국 개인의 정체성이 직함과 실적 안에 갇힙니다. 강요한 사람도 없고, 보이지도 않고, 본인이 선택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저항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스스로의 덫에 걸려드는 겁니다

마담 보바리 - 구스타브 플로베르

이 구조가 낯설지 않습니다.

'보바리즘'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보바리즘(Bovarysme) : 자신의 현실을 만족 못 하고, 끊임없는 욕망과 헛된 상상 속에서 화려한 삶을 꿈꾸며 그 이미지로 살아가려는 병적인 심리 상태.

개인의 결함을 비판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 환상에 빠진 사람, 스스로 자초한 불행한 사람으로 말입니다.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 - 영화, 2015년

그런데 이 정의에는 처음부터 빠진 것이 있습니다.

그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프랑스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1856년에 발표한 소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에마 보바리'는 불륜과 사치에 빠져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에마의 허영심과 욕망이 비극적 결말을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 - 영화, 2015년

하지만 소설 속 인물의 고민이 곧 시대의 고민입니다. 에마의 고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플로베르도 말했습니다. "마담 보바리는 나다" 에마는 비판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 시대 안에서 살다가 부서진 사람이었습니다.


'보바리즘'은 개인의 결함이 아닙니다.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현상입니다.

1인가구수 - KOSIS (국가데이터처, 인구총조사)

한국 사회는 지금 빠르게 혼자 사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개인의 선택으로만 본다면 절반밖에 못 본 겁니다. 1인 가구의 증가와 비혼과 저출산도 같은 맥락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피곤해지고 그게 계속 반복되면 고립이 되는 겁니다.


기업은 이 지점도 놓치지 않습니다. 개인의 정체성을 조직 안에 가두고, 삶의 욕구를 직함과 실적에서 찾게 만듭니다. 그럴수록 고립된 삶에서 빠져나오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 - 영화, 2015년

보바리즘을 개인의 욕망과 허영심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마음들은 스스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담 보바리>에서는 욕망을 심어준 사회 구조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에마는 혼자 감당합니다. 비극적인 선택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도, 그걸 이용하는 것도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에마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봅니다.

플로베르는 그 순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 - 영화, 2015년
그녀는 자기를 이토록 끔찍한 상태에 몰아넣은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즉 돈문제였음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 플로베르는 에마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비난한 건 주인공 에마를 죽게 만든 그 시대였습니다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 - 영화, 2015년


"그녀는 무슨 일에서나 뭔가 개인적인 이득 같은 것을 얻어 내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감정적 욕구를 당장에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나 다 무용한 것이라 하여 물리쳤다. 예술적이기보다는 감상적인 기질로 풍경 감상이 아니라 뭉클한 감동을 찾는 편이기 때문이었다"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에 묘사한 에마의 성격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에마는 문제 있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에마의 성격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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