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 '괴물' 속 주인공 일까
적고 있습니다.
누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덤덤히.
내가 느낀 직장과 청춘에 대해서.
그것이 때론 불편한 이야기 일지라도.
몇 시나 됐을까
밤 12시를 넘어가고 있는 시각이다.
어둡고 인기척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사무실. 허리나 한번 펴자 하고 일어나 스트레칭을 해본다.
고개를 들어 8층 사무실을 쓱 둘러보니, 군데군데 몇 명의 사무실 귀신(매일 야근을 하는 직장인들의 별칭) 머리 위를 사무실 등불이 비춰주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은 마치 연극 무대 위 주인공을 핀 조명이 외롭게 쏘아붙이고 있는 듯했다. 그래.
그 들은 회사에선 주인공이 되지 못하더라도, 자기 인생에선 모두가 주인공 이리라.
오늘도 새벽 퇴근이다.
며칠, 아니 몇 주 째인지 감도 안 오네. 회사 수면실에서도 여러 밤을 보냈지만, 단 4시간을 자고 다시 나오더라도, 오늘은 이 닭장 같은 회사에서 벗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나온다.
어제였나?
전 날 밤도 회사 수면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 오늘도 알을 낳기 위해 닭장 속 내 자리로 위치했는데, 어머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 (첫마디부터 어머니의 목소리는 하이톤이다)
“응, 엄마”
“이번 달 월급이 왜 이렇게 많이 들어왔대~~? 아들 오늘도 파이팅~!”
응, 그거 다 집을 못 들어가는 아들의 땀과 눈물이야 엄마~ㅎㅎ
별 시답잖은 농담으로 맞받아치며 통화를 끝냈다.
역시 나 생각해주는 건 가족밖에 없지 라는 따스함과 더불어, 힘들어 죽겠다고 어리광을 피우지 못하는 현실에 씁쓸한 기분이 밀려왔다. 닭장에 앉아 멍하니 내 책상을 바라만 보았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회사.
새벽 퇴근 길거리는 삭막하기만 하다. 한참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신호등 들은 비상 점멸을 하며, 별 다른 신호 통제를 하지 않는데. 오늘 하루도 고생했으니 빨리 집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라는 서울시의 배려일까?
하지만 서울시의 배려를 무시하고, 나는 집이 아닌 여의도 한강 공원으로 향한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새벽 퇴근에도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는 날이 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올림픽대로를 달리기도 하고,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한 3바퀴쯤 돌다 집에 들어간 날도 있었다. 회사 집 회사 집 회사 회사 회사 집. 이렇게 반복되는 공식 속에 조금이라도 다른 변수를 대입하고 싶었다.
여의도 공원까지 7km 남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
허나 되려 집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한강 공원은 가까워지는데, 집에서는 멀어지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정상적인 건가? 어디까지가 7km 남았다는 걸까. 네비 저놈의 자식은 목적지와 상관없이 거리가 줄고 있다는 사실이나 신경 쓰겠지. 고개를 갸우뚱해보지만, 그런 생각 따위 금방 치워버리기로 한다.
도착한 한강 공원은 고요하다.
일단 편의점에 들려 커피 우유를 사 오고(맥주를 마시고 싶지만 운전을 해야 하니) 가수 윤종신 님의 이별택시를 크게 튼다. 소위 말하는 감성 발라드 랄까? 내 앞에 노트북이나 상사가 아닌,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아닌 물이 있다니. 연일 반복되는 닭장을 벗어나, 지겹도록 보는 내 사무실 데스크가 아닌 다른 뷰가 펼쳐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기분이다.
힐링이 뭐 별 거 있나?
주말에 산으로 바다로 나들이도 가고 싶지만, 이번 주말도 출근해야 하니까. 이게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지. 암 그렇고 말고. 나를 위한 자그마한 사치랄까? 나 스스로 연신 위로와 다짐을 하다 보니 어느새 줄담배를 3대나 폈다.
가만히 앉아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 보면, 강물이 나를 부르는 것 같다.
마통아 이리와~
이제 집에 갈 때가 됐나 보다.
가만있어보자. 지금 총알같이 집에 가서 대충 씻고 자도 한 4시간 잘 테고, 그럼 다시 일어나서 다시 출근해야 되네? 내일 안으로 끝내야 하는 업무가 뭐뭐 있었더라? OO건은 내일 아침에 팀장님께 보고 드려야겠고.
방금 힐링한 기분이 타 들어가는 담배연기처럼 공중에 날아가는 느낌이다. 이 힐링이 없어지기 전에 얼른 집에 가서,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잠을 청하는 것이 상책. 다 타고 남은 힐링 꽁초라도 꼭 껴안고 잠들어야겠다.
“안녕 잘 있어 한강아~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