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마통 Apr 02. 2018

7년 경력의 ‘총무’ 김대리

상무님, 회식 안 보고 드리겠습니다

적고 있습니다. 

누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덤덤히.

내가 느낀 직장과 청춘에 대해서.

그것이 때론 불편한 이야기 일지라도.





상무님, 회식 안 보고 드리겠습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입사와 동시에 총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대학교 시절 행사 MC를 뛰었던 탓에, 회사에서 이런저런 행사 진행을 하였고, 그런 외향적 성향은 회사에서 ‘총무’라는 타이틀을 넘겨버리기에 매우 적합하였다. 그렇게 7년 5개월의 회사생활 중 대부분을 총무로 활동하였고, 정말 막말로 드러운 꼴 많이 봤다. 


총무에게는 다양한 업무가 주어지지만, 그중 꽃은 당연 회식과 워크숍이다.  

회식 뭐 근처 맛집 가서 그냥 술 마시면 되는 것 아니냐고? 


정말 몰라도 한참 모르신다.  



1. 메뉴 결정 

- 상위자의 취향 파악 

- 개인별 못 먹는 음식은 없는지 

- 예상 비용 산출을 통한 회식 예산 검토 

- 식당 이동 경로 및 동선 파악 


2. 참석자 인원 파악, 자리 배치 

- 상위자는 모두가 보이는 센터로 배정 

- 테이블 별로 남녀 성비 및 직급을 적당히 섞을 것 

- 도착 시간을 고려, 메뉴와 주류 세팅 


3. 진행 

- 식순 및 프로그램 짜기 

- 사전 준비물 세팅 (‘OO처럼’ 소주 라벨 부착 등) 

- 적절한 진행 시간 배분 

- 돌아가며 건배 제의시키기 

- 분위기 업 시킬 것 

- 로테이션을 통한 상위자 옆자리 채우기 


4. 기타  

- 중간 정산을 통한 비용 확인 

- 추가로 2차로 갈만한 맥주집 준비 

- 상위자의 성향에 따라 3차 노래방까지 확보 

- 시작 및 종료 후 상위자 귀가 의전 


단순히 생각해도 이 정도의 체크리스트가 나온다. 


1박 2일 워크숍이라면 뭐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중요한 것은 총무에겐 결정권이 없다는 것

식당 장소부터 대략 3~5가지 정도의 후보 안을 만들어, 각 안 별로 문서를 제작 후 보고를 드린다. 

이 것이 회사의 중대 사안이며, 미래 먹거리를 위한 결정이며, 엄청난 흑자를 낼 수 있는 거래처럼 말이다. 더욱 황당할 때는 애써 준비한 5가지의 안이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결국 상위자의 입맛에 따라 결정이 될 때. 나는 정말 무엇을 위해 이 보고를 해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해당 식당이 정말 음식을 잘 하는지 먼저 가서 맛을 보고 오기도 하는가 하면, 2차 이동 시 빛의 속도로 뛰어가 사전 세팅을 해놓은 후 손님들을 맞이 한다. 


소주병에 ‘OO처럼’ 라벨 붙이는 날엔 소주병들 물에 불려서 가내 수공업 하느라 참.. 


회식 때 나는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온통 신경이 곤 두 서있는 채. 

1박 2일 워크숍을 위해 다른 업무는 미뤄놓고, 팀을 꾸려 며칠 동안 임시 Task를 한 적도 있다. 준비를 하며 받은 갈굼, 스트레스는 뭐 부지기수이고. 


상사들께선 종종 


“김대리, 내가 총무일 땐 이렇게 까지 했는데 자넨 왜 못 하나?” 


하며, 총무일 때 작성하셨다는 그 워크숍 보고 장표를 보여주신다. 




그래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그래. 서울시에 많은 맛집을 알게 되었다. 

회사 근처(가산)에 음식 좀 한다는 가게는 전부 가보았고, 서울 근교 펜션 및 별장은 자신 있게 ‘해당 인원이 가기엔 이 곳이 최고다!’라고 추천할 수 있을 만한, 나 만의 여행 지도가 수립되었다. 건배 제의 스킬은 뭐 국민 MC 유재석 씨 뺨 칠 정도고. 



그럼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이 외에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 것이 과연 회사 생활을 통한 참된 배움 중 하나인가? 


이 것은 회식의 취지와 참석한 구성원들의 기쁨을 위한, 필수 불가결의 희생인가? 



적폐 청산이다 뭐다 해서 정치적으로 시끌시끌한 시대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에 따른 사회적인 가치관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뭐 말할 필요도 없겠고. 

직장이라는 조직문화 역시 이 변화에 어느 정도 발맞춰 가고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회사엔 아직도 구시대적 관습이 남아 있진 않은지? 

지금까지의 회사 구석구석을 곰곰이 뜯어보고, 이 것이 꼭 필요한 일인지. 구성원들의 업무 효율 향상을 위해서 어떤 점들이 수정, 보완되어야 하는지. 예를 들어 보고를 위한 보고는 없는지, 아직도 단 방향의 수직적 Comm. 이 팽배해 있지는 않는지 등. 그러한 고민들이 있었다면, 

이러한 ‘김총무’ 는 없어지지 않았을까? 



옛날엔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옛날에 그랬다고 지금도 그렇게 해야만 할까?





작가의 이전글 직장인의 한강 고수 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