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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Apr 17. 2018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이진욱에 빠지다

fresh review

Intro

고현정의 연기를 기대하며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관람했다. 예상대로 고현정의 연기는 좋았지만 나에게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이진욱을 재발견한 영화로 남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진욱은 잘생긴 외모를 가진, 그럭저럭 한 명 몫은 하는 연기자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서 만난 이진욱은 꼬일 대로 꼬인 인생의 무게를 온전히 표현해내는 진짜 배우였다. 어느 날 여자친구에게 통보도 받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한 남자, 집도 없고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방황하는 경유를 연기하는 이진욱은 단순히 힘든 표정, 힘없는 어깨를 보여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관객들의 마음을 지긋이 누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107분의 러닝타임 동안 사실상 원탑주연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진욱은 쉼 없이 등장하는 롱테이크 대화신과 거의 움직임이 없는 화면 속에서 홀로 서성이며 영화의 메시지 그 자체가 된다. 영화 속 배우의 연기를 보며 이 배우가 아니면 누구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배우, 적어도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서 발견한 이진욱은 그런 배우였다.

이진욱


이진욱의 뛰어난 연기가 영화의 견고한 기둥이 되어준 것은 사실이지만 기둥 위에 얹을 멋진 지붕과 벽이 없다면 아름다운 집은 완성되지 못하는 법이다. 다행히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는 고현정이라는 아름다운 벽이 있어 기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잘 서있는 벽과 기둥에 비해 집 전체를 덮어줘야 할 서사는 에피소드만 듬뿍 던져줄 뿐 목표점을 잃은 느낌이다. 과거에 내렸던 결정들에 대한 후회, 현재의 각박한 삶을 살아내는 순간들의 고통, 막막한 미래를 향한 연약한 발걸음 등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많은 것들을 말하려고 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헷갈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에게 아쉬웠던 것은 결말이 맺어지는 과정과 뜬금없는 연출이었는데, 영화의 메시지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중구난방이었던 것은 둘째 치더라도 굳이 결말을 영화 전체의 톤 앤 매너를 와장창 깨뜨리면서까지 그런 식으로 지어야 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아쉬움


결론적으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이진욱의 중심 잡힌 연기와 고현정의 훌륭한 서포트, 그리고 이런저런 작금의 현실 반영이 어우러진 준수한 드라마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의 프레임이 중요한 콘텐츠이기에 다양한 에피소드 모음집 형태의 서사 전개, 기승전결과 크게 유관하지 않은 당황스러운 결말의 연출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을 한 편의 훌륭한 영화로서 여기기에는 주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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