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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Sep 23. 2015

마스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people column.

한국에서의 기억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2006년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때 사실상 한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후  그의 블럭버스터 데뷔작 이라고 볼 수 있는 미션임파서블3에 그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한국에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를 더 알리고 싶어도 알리기 힘들게 되었다. 슬프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너무 부족해서 슬프도록 그는 2014년 2월 우리 곁을 떠났다.

만날 수 없는,


태생 그리고 학업

1967년 뉴욕태생인 호프만은 변호사 어머니와 제록스 직원인 아버지를 두었다. 그의 부모님은 호프만이 9살일때 이혼하셨는데 미국에서는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만 이런 자잘한 기억들은 분명 그의 깊이있는 연기에 밑거름이 되었을 듯 싶다. 특히 그는 카포티로 아카데미를 수상하며 자신을 합쳐 4명의 자녀를 혼자 키우신 어머니에게 찬사를 보냈던 적이 있다. 이미 수많은 헐리우드의 별들을 배출한 뉴욕 티쉬스쿨( New York University’s Tisch School of the Arts, 이하 NYU) 을 졸업한 그가 시네도키, 뉴욕(2010)에서 공연연출가로 등장하는 것이 기묘하다면 오바일까?

시네도키 뉴욕에서,


첫작품 그리고 임팩트

아마도 많은 한국분들이 호프만을 첫번째로 기억하는 작품이라면 여인의 향기(1992)에서의 단역 학생으로서의 호프만일 듯. 그의 장편 첫 작품은 트리플 보기 온 파 파이브(1991) 였지만 배우로서의 호프만의 진정한 출발을 알린 작품은 확실히 여인의 향기라고 할 만하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훌륭한 연기였다고 말하긴 힘든 아역 배우중 한명으로 등장했던 호프만이었지만 이 작품이 그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던 것 만은 확실하다. 그는 후일 인터뷰에서 여인의 향기에 자신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거라고 말하며 이 영화가 마치 도미노 효과와도 같았다(효과의 시작과도 같았다)고 말한 것만 봐도 이 영화가 그에게 가지는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여인의 향기에서의 앳된 호프만


카포티 그리고 변곡점

이후 조연과 단역을 전전하던 호프만이 주연다운 주연을 맡게 된 영화는 놀랍게도 그의 영화인생의 변곡점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카포티(2005)였다. 한국에서는 생소할 수 있는 인물인 카포티의 전기영화라는 한계와 다분히 미국적인 드라마 장르를 태생적으로 가진 카포티는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제대로 개봉도 해보지 못한채 전국관객 7000명이라는 말도 안되는 성적으로 막을 내렸고, 당연히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인생작품인 카포티는 한국인들에게는 처음 듣는 영화로 남아버렸다.(사실 필자도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만약 누군가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을 추억한다면 카포티 없이는 그가 설명될 수 없다. 옆집 아저씨 같은 푸짐한 체구에 걸걸한 목소리를 가졌던 호프만은(우리에게 기억되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그렇다) 카포티를 준비하며 엄청난 몸무게 감량은 물론 실존 인물 카포티의 소년 같은 목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실제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끊어질 때 까지 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찌감치 게이로 커밍아웃했던 카포티의 행동과 말투를 연기하는 호프만은 소름돋을 정도.


엄청난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고 그는 2006년 오스카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된다.

제 7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제 59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제 40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남우주연상)
제 12회 미국 배우 조합상 (영화부문 남우주연상)
제 6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남우주연상-드라마)
제 11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남우주연상)
제 18회 시카고 비평가 협회상 (남우주연상)
제 31회 LA 비평가 협회상 (남우주연상)  

- 그가 카포티로 수상한 상들

오스카를 수상한 호프만은 그 해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화려하게 비상한다. 그가 카포티로 받은 상은 무려 23개이며 트로피 만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수많은 명예와 스포트라이트가 호프만에게 쏟아졌다. 그에게 카포티는 절정의 순간이자 새로운 시작의 순간이었다.

카포티에서,


이어지는 작품들과 만개한 연기력

카포티를 통해 헐리웃에서 가장 뜨거운 배우가 된 호프만은 주연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후 출연작들 중 찰리 윌슨의 전쟁(2007), 세비지스(2007) 등이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지만 개인적으로 호프만은 시네도키,뉴욕(2007)에서 연기의 어느 수준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카포티와 비슷하게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난해한 영화는 어느 공연 연출가가 자신만의 어마어마한 연극을 만들며 20년이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2시간의 꽉찬 러닝시간동안 스크린의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호프만을 보다보면 어느 순간 헛웃음이 나오기까지 한다. ‘아 정말 이렇게 연기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이미 2005년 미션임파서블에 출연했던 호프만은 2013년에는 예의 그 헝거게임(2013)에 출연하며 그가 블럭버스터에서도 막강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렸다.

이후 다우트(2008)에서 메릴 스트립과 불꽃 튀기는 연기대결을 보여준 호프만은 락앤롤 보트(2009)에선 힘뺀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머니볼(2011)과 킹메이커(2011)에서는 존재감 확실한 조연으로서의 역할도 여전히 보여준다.

헝거게임에서,


또 한번의 정점

이렇듯 넓은 영역에서 그만의 존재감을 다지고 있던 호프만은 2012년 마스터(2012)라는 영화로 다시 한번 배우로서의 정점을 찍는다. 높은 권위가 인정되는 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이었던 폴 토마스 앤더슨은 이 영화로 은사자상을,(김기덕이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탓던 해다!) 호프먼과 호아킨 피닉스가 나란히 볼피컵 남우주연상을 들어올렸다. 마스터라는 영화에서 사실 미쳐 날뛰었던 배우는 호아킨 피닉스였다. 하지만 한가지 명확한 사실은 사이비 교주역의 호프만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완성될 수 없는 작품이었다는 점. 그는 마스터를 통해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 연기의 마스터로 다시 한번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마스터에서,


마지막 작품들

이후 이어지는 그의 작품, 마지막4중주(2012)는 개인적으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호프만의 모습이 담긴 영화이다. 주변과의 관계, 고뇌하는 개인, 그리고 때로는 폭발하는 한 사람의 감정이 마지막4중주의 호프만에게 모두 담겨있다. 호프만 연기의 어느 지점을 확인하고 싶다면 카포티를 권하겠지만 가장 그 다운 연기를 보고싶은 사람에게 필자는 마지막4중주를 권하고 싶다. 그 뒤로 그가 촬영을 마친 마지막 영화로 남은 모스트 원티드 맨(2014)에서 그는 차갑고 현실적인 스파이를 연기한다.  소설 원작을 가지고 있는 모스트 원티드 맨에서 호프만은 마지막 미션을 허무하게 실패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홀로 차를 타고 떠난다. 마치 홀로 먼 길을 떠나게 될 그의 미래를 예견하듯,

마지막 4중주에서,


이제 우리에게는 그가 생전에 촬영을 마치지 못한 몇편의 영화가 남아있다. 갓즈 포켓(2014)과 헝거게임(2015)이 그것들인데 감상할 기회가 있다면 감회가 새로울 듯 하다.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나머지

2014년 그의 죽음은 실로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67년생의 연기 마스터, 한창 빛을 발하던 호프만은 자신의 팔에 주사를 꽂은채 자신이 태어났던 그리고 스크린에서, 현실에서 끝없이 누볐던 뉴욕의 한복판 맨하탄에서, 그렇게 허무히, 아련히 우리곁을 떠났다. 이전에도 약물 중독을 겪었던 그였기에 누구보다 약물의 위험성을 알았을 그 였겠지만 무엇이 그를 정녕 죽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배우로서만 63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97번의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74번 노미네이트 되는 영광을 맛봤던 이 베테랑 배우의 죽음이 영화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를 슬프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는 사실인 것 같다.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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